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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Y Mar 21. 2024

생명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월요일 퇴근 즈음에 사장님으로부터 내일 회장님이 병원에서 심장 조영술을 하게 될 건데 보호자로 동반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입원까지만 돕고 오면 된다고 했고, 직계 가족은 아니지만 대신하여 상황을 전할 정도로는 가까운 사이이기도 해서 동행하기로 결정했다.


오전 10시. 입원 수속을 마치고 병원 6층의 당일입원센터에 올라갔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사전 검사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이제 가도 되냐고 물으니 검사할 때에도, 그 후에도 4시간 정도 경과를 지켜볼 때도 함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예정된 검사가 1시에만 시작해도 5~6시에는 무리 없이 퇴근이 가능할 거 같아 일단 알겠다고 했다.


그러나 1층에서 동의서를 작성하며 들어보니 검사시간은 10~15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시급하게 시술이 필요한 경우에 즉시 시술한다는 내용과 함께 대기자가 많아 1~5시 사이에 검사를 하게 될 거라고 했다. 기초 검사는 끝났고, 회장님도 쉬셔야 해서 나는 근처 카페에 가서 일을 하며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1시, 2시, 3시.

기나긴 기다림이 이어졌다. 검사시간을 기준으로 4시간을 더하면 나는 언제 퇴근할 수 있을까. 아이들도 돌봐야 하고, 두 번째 직장으로의 출근 시간도 임박해 오는데 괜찮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이 평온한 시간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이었다.


마침 과부하 걸린 생각주머니를 덜어내는 방법으로 틈틈이 일기를 쓰고, 책을 읽는 중이었는데 정말 오래도록 바랬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조급하지 않게 이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그리고 오후 4시. 비로소 호출이 왔다. 우리 앞 순서였던 환자가 무슨 이상이 있었는지 1시간 넘게 검사를 하느라 지연되었는데 다행이었다. 어차피 4시간을 더 대기해도 퇴원이 불가능한 밤이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1박을 하게 되었고, 그러면 사장님이나 누군가 와서 대신 자리를 지켜줄 수 있게 될 거라 생각했다.


함께 4층으로 내려갔다. 중환자실과 시술실이 함께 있는 층이었는데 10여 분 동안 중환자실 입구 밖에서 대기를 하게 되었다. 그 사이 제1, 2, 3 중환자실 모니터에 떠 있는 사람들의 이름과 나이를 살펴보았다. 평균 6~70대. 많게는 90세가 되신 분도 계셨는데 호흡기과가 제일 많았다. 대다수 심장이나 폐에 문제가 생길 나이라 자연스럽게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셨구나 싶었다.


함께 대기하는 한 팀은 어딘가 분주히 전화를 걸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몇 시간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아마도 요양원에 계시다가 이송되어 오셔서 병원에서 사망 선고를 받으셨나 보다. 가족들은 집 근처의 장례식장을 알아보고, 상조회사에 연락하고, 친척들에게도 전화를 돌렸다. 손녀들은 직장을 다니고 있어 언제 언제 상을 지킬 수 있다는 것과 함께 할머니의 영정 사진은 무엇으로 할지 등을 나누고 있었다.


누군가 돌아가시면 장례식장에 조문을 간 적은 있어도 이렇게 가깝게 죽음 후에 절차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대화를 듣는 건 처음이라 낯설면서도 나도 겪게 될 일이라는 게 실감 났다. 지난주에 77세이신 시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다. 외국에 계시기에 직접 뵈러 갈 수는 없었는데 간이 좋지 않아 조직검사를 해야 하고, 지역 병원보다 큰 곳으로 이송을 해야 한다는 의사 소견이 있었나 보다. 그러나 어머니는 본인의 나이를 고려하더라도 수술은 무리일 거 같다며 입원보다는 집으로 가기를 원한다고 하셨단다.


어머니의 상황을 전하는 남편은 덤덤했지만 나도 그렇고, 그도 그렇고. 언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듣고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할지 모르는 그날은 아무리 미루고 미뤄도 오게 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가 되면 나는 저들처럼 저렇게 우왕좌왕하면서 장례 절차를 준비하게 되겠구나. 그리고 이 혼란스러움이 가시고 나면 비로소 나의 부모가 더 이상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겠지. 그때 밀려오는 여러 감정을 잘 받아들이고 해소시킬 수 있을까. 문득 그런 고민이 스쳐갔다.


이런 고민을 하는 사이, 회장님의 보호자를 찾는 간호사의 부름에 들어가니 관계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왔다. 1층 접수 때도, 6층 당일입원센터에서도 '친척'이라고 얼버무렸는데 그때마다 왠지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았기에 이번엔 솔직해졌다. '직원이에요.'라고 했더니 '우와'라며 간호사가 신기해했다.


직원이면 어떻고 친척이면 어떠랴. 한 생명이 죽을지, 살지를 판가름하는 이 시간, 그의 곁을 지켜줄 수 있다는 게 영광이지. 안 그런가? 교수님의 부름을 받고 들어가니 검은 화면에 희끗희끗 거리는 실 같은 물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심장이었다. 우심실, 좌심실, 동맥 등등. 사실 단어만 들어봤지 실제 이렇게 마주하기는 처음이다. 굵게 뻗어가던 핏줄이 어느 시점에 좁아져 있었다. 교수님은 바로 스탠트 시술을 하여 확장을 시켰다고 한다.


다음 영상을 보니 확실히 일자로 곧게 뻗은 혈관이 보였다. 오전에 심전도 검사를 받고 나와 딸에게 온 전화를 받으며 '아직 내 심장은 쓸 만 하대.'라고 하셨던 회장님의 말이 떠올랐다. 다행이다. 딸들이 무척 걱정했을 텐데 '거봐. 나 아직 건강해.'라고 당당히 말하실 수 있겠구나. 참 다행이다.


보통 이런 시술을 받고 나면 바로 중환자실로 이송해 상태를 살핀 후, 호전되면 다음 날 퇴원을 하게 된다고 하였다. 중환자실은 원래 면회가 어려운 곳이니 입구에서 헤어져 회장님의 짐을 챙겨 와 간호사에게 전달하고 퇴근을 했다.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잘 끝났다고 전해주니 '수고했다.'라고 하신다. 본인이나 딸들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주어 고맙다는 말을 '수고했다.'는 말로 대신했지만 누구보다 그녀의 마음을 알기에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어 나 또한 기뻤다. 덕분에 나는 복잡했던 내 생각들을 정리하고 쉼을 얻었으니 손해 본 건 없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오늘. 건강하게 퇴원하여 집에 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시술비 또한 국가에서 지원하여 예상보다 큰 비용이 나왔지만 아주 아주 저렴하게 잘 처리되었다는 소식도 함께 받았다. 사장님은 '늙어서 그런가.'라며 특유의 감상평을 남기셨지만 이래저래 감사하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고. 인생이라는 게 태어난 순서대로 죽는 건 아니지만 이제 나는 탄생과 죽음을 함께 자주 목격하게 될 40이 되었다. 이미 친구들은 결혼하여 나와 같이 다복하게 자녀들을 여럿 낳아 키우고 있으니 우리에겐 몇십 년 후에나 손자, 손녀라는 이름의 새 생명을 보게 되기까지. 당분간 우리는 서로의 부모의 건강과 안위와 죽음을 함께 목격하고 위로하게 될 날도 오겠지. 그러나 우리.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도 우리가 살아온 인생이 후회되지 않게. 오늘 하루하루를 건강하고 보람 되게 보내보자.


그리고 우리는 중환자실. 시술. 이런 단어들로부터 아주 아주 멀리 떨어진 삶을 살아보자. 병원. 가보니 너무 아픈 사람이 많더라. 우리는 아프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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