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국수 2부.
생일잔치가 끝난 후, 중수에게서 순애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요양원에서 생일을 맞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순애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오늘 있었던 일은 끝내 말하지 않았다.
저녁 식사 시간은 유난히 조용했다. 말순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꿈쩍도 하지 않았고, 복희는 낮의 소란에 놀랐는지 점심 먹은 게 체했다며 소화제를 먹고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 시간, 순애만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노크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은혜가 서 있었다. 방 안 분위기를 눈치챈 은혜는 조용히 다가와 순애 곁에 앉았다.
"너무 놀라셨죠? 진작 사과드렸어야 하는데 정신이 없었네요. 죄송해요."
은혜는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순애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은혜의 손을 꼭 잡았다.
"죄송하긴요. 이렇게 생일잔치 해주신 것만 해도 고맙죠."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아, 이거요."
은혜는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순애에게 내밀었다.
"이게 뭔가요?"
순애가 묻자 은혜는 주위를 살폈다. 말순이 곁에서 자고 있는 게 신경 쓰이는 듯,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물이요."
요양원에서 받은 선물은 이미 있었으니, 중수가 준 거라는 걸 순애는 눈치챘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은혜는 미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어머니, 맛있게 식사하세요."
은혜가 나가고 식사를 정리한 뒤, 순애는 상자를 무릎에 올려놓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사는 게 바빠 생일다운 생일을 챙겨본 적이 없었다. 중수와 시장 골목을 거닐다 피순대나 어묵 꼬치 하나 사 먹고 돌아오는 게 전부였다. 중수가 몇 번 생일을 챙기려 했지만, 순애는 민망하다며 일부러 피하곤 했다.
필요한 것도, 좋아하는 것도 없었다. 아니, 없었다기보다 '모른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사는 게 바빠 잊고 지낸 것들. 좋아하는 것도, 원하는 것도.
상자를 열자 은빛이 도는 립스틱이 들어 있었다.
"아…."
중수가 이걸 고르느라 얼마나 애썼을까. 뚜껑을 열자 낯익은 분홍빛이 눈에 들어왔다. 화장할 일이 없어서 민낯으로 다녔지만, 어쩌다 한번 샀던 립스틱을 오래도록 아껴 썼던 기억이 떠올랐다.
립스틱이 닳고 달아 더는 쓸 수 없게 되었을 때, 화장품 도매점에 들러 같은 제품이 있는지 물었던 적이 있다. 유명한 브랜드도 아니고 언제 어디서 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물었더니, 주인이 제품 코드를 찾아 서랍을 뒤져 같은 제품을 꺼내줬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때 이야기를 중수에게 했었는데, 혹시 기억하고 있었던 걸까? 그 오래전 립스틱을 찾으려고 얼마나 애썼을까. 고맙고, 또 고마웠다.
순애는 중수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고맙다, 중수야.'
말이 길 필요는 없었다. 이 한마디면 충분했다. 괜스레 낯간지럽기도 했고. 잠시 뒤, 중수에게서 하트 아이콘이 날아왔다. 중수다운 반응이었다. 립스틱은 지금 바로 발라볼까 하다 말았다. 중수와 외출하는 날에 바르기로 하고, 상자를 다시 닫아 베개 밑에 살며시 넣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