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국수 2부.
생일잔치 이후로 말순은 식사 시간이 되면 묵묵히 숟가락을 들었다. 평소처럼 국이 싱겁다느니, 밥이 질다느니 하는 불평도 없었다. 순애와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돌려버렸다. 대장방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늘 말순이 중심이 되어 이끌던 그 특유의 활기 대신 어색한 정적이 자주 흘렀다. 복희도 몇 번 말을 걸어보려 했지만, 말순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내 포기했다. 아침이든 오후든 말순은 텃밭에서 흙을 만졌다. 잡초를 뽑고, 흙을 고르고 또 고르고. 그녀가 심은 채소는 아직 싹도 트지 않았지만, 마치 흙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듯 보였다.
봄비 내리는 아침이었다. 말순은 테라스에 앉아 빗방울이 흙 위로 떨어지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곁에 순애가 조심스레 앉았다. 조금 거리를 둔 자리였다. 순애가 혼잣말처럼 말을 꺼냈다.
"국수를 삶다 보면요. 오래 끓이면 풀어져버리고, 너무 일찍 건지면 딱딱하고. 사람들이 국수 삶는 거 제일 쉽다는데… 저는 50년을 삶아도 어렵더라고요."
빗줄기가 흙 위에 퍼지는 모습이 꼭 국수 가락 같았다. 순애는 조용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겨울에 손님이 많이 몰려서 정신없이 면을 삶았거든요. 그런데 그날따라 국수가 다 퍼져버렸어요. 부엌에서 불어버린 면을 버리면서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 그런데 어떤 손님이 그러더라고요. 퍼진 국수도 좋다고."
그제야 말순이 대꾸했다.
"거참 시끄럽네. 그래서 퍼진 국수가 뭐 어쩌다꼬."
반응이 있어서인지, 순애의 눈가가 살짝 휘어졌다.
"안 듣고 계신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요. 그게 그냥… 내가 실수했다고 속상해한 것도 누군가에겐 괜찮을 수 있다는 거죠."
말순이 투박하게 쏘아붙였다.
"참나. 그게 뭐 대단하다고. 그리 장황하게 떠드노."
순애는 웃었다.
"국수도 삶다 보면 덜 익을까 싶어 화장실도 못 가고 불 앞에 서 있잖아요. 그러다 실수로 퍼져버리면 또 그걸 버리기 아까워 먹다가 체하기도 하고. 자식 키우는 것도 그런 거 같아서요."
말순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엉뚱한 소리 잘도 한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말순이 물었다.
"니는 후회 안 하나?"
"뭘요?"
"니 인생 다 받쳐서 자식 키운 거 말이다."
순애는 조용히 대답했다.
"후회하지요. 왜 그렇게밖에 못 키웠을까… 그런 후회는 늘 있어요. 대장님은요?"
말순이 허허 웃었다.
"내도 후회하지. 그렇게 공들여 박사 만들어놔도 부모 분야는 바보더라."
"박사라도 자식이지요."
말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도 부모 노릇 하면서도 정작 지 부모 마음은 모르더라."
"그게 자식이니 어쩌겠어요. 부모는 그냥 끝까지 부모 노릇 해주는 거죠."
말순은 빗물이 고인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럼… 퍼진 국수도 괜찮은 거가."
순애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때에 따라 전 퍼진 국수도 좋다고 생각해요."
순애는 손에 들고 있던 립스틱을 건넸다.
"이거요."
말순이 힐끔 바라보았다.
"뭔데?"
"고명."
말순이 피식 웃었다.
"고명? 국수에 고명 올라가면 좀 낫더라고요. 보기에는 그렇지만 맛은 그대로지만."
말순은 한동안 립스틱을 내려다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이거 바르면 내가 국수 위 고명이 되는 기가?"
"한번 발라보셔요. 퍼진 국수라도 고명이 살리는 법. 대장님 기분도 좀 나아질지 모르잖아요."
말순은 코웃음을 치면서도 립스틱을 슬그머니 주머니에 넣었다. 비가 그치면 한번 발라볼까. 그런 생각이 살며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