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퍼진 국수와 고명

바람난 국수 2부.

by SAY

생일잔치 이후로 말순은 식사 시간이 되면 묵묵히 숟가락을 들었다. 평소처럼 국이 싱겁다느니, 밥이 질다느니 하는 불평도 없었다. 순애와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돌려버렸다. 대장방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늘 말순이 중심이 되어 이끌던 그 특유의 활기 대신 어색한 정적이 자주 흘렀다. 복희도 몇 번 말을 걸어보려 했지만, 말순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내 포기했다. 아침이든 오후든 말순은 텃밭에서 흙을 만졌다. 잡초를 뽑고, 흙을 고르고 또 고르고. 그녀가 심은 채소는 아직 싹도 트지 않았지만, 마치 흙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듯 보였다.


봄비 내리는 아침이었다. 말순은 테라스에 앉아 빗방울이 흙 위로 떨어지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곁에 순애가 조심스레 앉았다. 조금 거리를 둔 자리였다. 순애가 혼잣말처럼 말을 꺼냈다.

"국수를 삶다 보면요. 오래 끓이면 풀어져버리고, 너무 일찍 건지면 딱딱하고. 사람들이 국수 삶는 거 제일 쉽다는데… 저는 50년을 삶아도 어렵더라고요."

빗줄기가 흙 위에 퍼지는 모습이 꼭 국수 가락 같았다. 순애는 조용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겨울에 손님이 많이 몰려서 정신없이 면을 삶았거든요. 그런데 그날따라 국수가 다 퍼져버렸어요. 부엌에서 불어버린 면을 버리면서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 그런데 어떤 손님이 그러더라고요. 퍼진 국수도 좋다고."

그제야 말순이 대꾸했다.

"거참 시끄럽네. 그래서 퍼진 국수가 뭐 어쩌다꼬."

반응이 있어서인지, 순애의 눈가가 살짝 휘어졌다.

"안 듣고 계신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요. 그게 그냥… 내가 실수했다고 속상해한 것도 누군가에겐 괜찮을 수 있다는 거죠."

말순이 투박하게 쏘아붙였다.

"참나. 그게 뭐 대단하다고. 그리 장황하게 떠드노."

순애는 웃었다.

"국수도 삶다 보면 덜 익을까 싶어 화장실도 못 가고 불 앞에 서 있잖아요. 그러다 실수로 퍼져버리면 또 그걸 버리기 아까워 먹다가 체하기도 하고. 자식 키우는 것도 그런 거 같아서요."

말순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엉뚱한 소리 잘도 한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말순이 물었다.

"니는 후회 안 하나?"

"뭘요?"

"니 인생 다 받쳐서 자식 키운 거 말이다."

순애는 조용히 대답했다.

"후회하지요. 왜 그렇게밖에 못 키웠을까… 그런 후회는 늘 있어요. 대장님은요?"

말순이 허허 웃었다.

"내도 후회하지. 그렇게 공들여 박사 만들어놔도 부모 분야는 바보더라."

"박사라도 자식이지요."

말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도 부모 노릇 하면서도 정작 지 부모 마음은 모르더라."

"그게 자식이니 어쩌겠어요. 부모는 그냥 끝까지 부모 노릇 해주는 거죠."

말순은 빗물이 고인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럼… 퍼진 국수도 괜찮은 거가."

순애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때에 따라 전 퍼진 국수도 좋다고 생각해요."

순애는 손에 들고 있던 립스틱을 건넸다.

"이거요."

말순이 힐끔 바라보았다.

"뭔데?"

"고명."

말순이 피식 웃었다.

"고명? 국수에 고명 올라가면 좀 낫더라고요. 보기에는 그렇지만 맛은 그대로지만."

말순은 한동안 립스틱을 내려다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이거 바르면 내가 국수 위 고명이 되는 기가?"

"한번 발라보셔요. 퍼진 국수라도 고명이 살리는 법. 대장님 기분도 좀 나아질지 모르잖아요."

말순은 코웃음을 치면서도 립스틱을 슬그머니 주머니에 넣었다. 비가 그치면 한번 발라볼까. 그런 생각이 살며시 들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4. 립스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