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조되고 반복되는 소리는 강아지뿐만 아니라 공무원도 불안하게 한다구요.
도시공원을 관리하는 팀에서 6개월간 일했던 적이 있었다. 팀원 중에 도시공원 업무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사업을 시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담당자는 팀장님과 주무관 2명으로 총 3명이었다. 팀으로 걸려 오는 민원전화와 업무 협의 전화는 어림잡아 평균 50통 이상이었고, 감독을 해야 하는 사업은 20건이 넘었기에 시공업체에서 걸려 오는 전화와 문자 그리고 단체 카톡방에서 수시로 울려대는 메시지를 알려주느라 주인을 잘못 만난 핸드폰은 늘 업무 과중에 시달려야만 했다.
민원 처리를 위해 민원인을 만나고, 현장에서 사업감독을 하기 위해 오전에 출장을 나가기라도 하면 퇴근 시간 무렵 복귀하는 일이 허다했다. 무거워진 몸을 의자에 내던진 후엔 검은 모니터 위로 빼곡히 붙어있는 ‘꼭 전화 주세요’라는 포스트잇을 하나하나 떼어내며 컴퓨터를 켜기 위한 1차 관문을 어렵사리 통과해야만 했다. 컴퓨터를 켜고 메신저가 자동 로그인되면 왜 이제 왔냐고 타박하기라도 하듯 쌓여있던 메시지가 물밀듯 쏟아지는 바람에 작업표시줄은 쪽지와 대화창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민원 처리를 하기 위해 현장을 나가면 공무원이 자리에 없다고 욕을 먹고, 내업을 처리하느라 사무실을 지키면 현장도 안 나가보고 펜대나 굴리는 공무원이라고 욕을 먹었다. 먼지털이기가 없어 불편하다고 해서 먼지털이기를 설치해 주면 먼지털이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한 두 시민들이 화를 내기 시작했고, 중재를 위해 현장을 나가면 설치를 요구했던 시민과 반대하는 시민들의 싸움을 말려야 하는 일이 생겼다. 낡은 벤치와 파고라를 교체하면 아직 쓸만한데 교체했다, 예산이 남아도냐는 볼멘소리에 누구한테 하는 사과인지도 모른 채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라고 허공에 대고 사과를 하기도 했다.
공원을 관리하는 일은 마치 살림과 비슷해서 설거지, 청소, 빨래를 하루라도 쉬면 집이 엉망진창이 되듯 하루라도 화장실의 쓰레기통을 비우지 않거나, 풀을 뽑아주지 않으면 공원을 이용하는 시민의 불편은 즉시 체감되는 것이었다. 시민들은 몰랐겠지. 이 방대한 양의 살림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지 기획하고, 결재하는 주무관이 단 두 명뿐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 해내야 하는 업무량은 나의 키를 훌쩍 넘어 한 발로 뛰는 줄넘기처럼 기우뚱하며 언제 넘어져도 이상하지 않으리만큼의 속도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처음에 업무를 맡았을 땐 선제적인 대응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웬걸, 선제적은커녕 민원 접수되고 나서 일주일 안에만 처리해도 다행일 정도인 업무량이었다. 아주 견고하게 짜여 이미 돌아가고 있던 시스템 안에서 다람쥐 쳇바퀴를 돌리는 일조차 버거운 나에게 이 시스템을 바꿀 힘과 권한은 처음부터 주어진 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공원을 이용하는 시민들 간의 분쟁을 조정해 주는 일도 종종 발생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민원 처리는 ‘공원에서 오토바이가 다니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민원이었다. 아파트단지와 바로 인접한 대형 수변공원인 지리적 특성상 택배나 배달을 시키면 지름길인 공원을 이용했기 때문에 전속력으로 내지르는 오토바이로 공원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소음과 사고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현수막을 게시해 공원에서는 이륜차를 이용할 수 없음을 홍보하고, 국민신문고 앱을 통해 공원에 진입한 오토바이를 신고해 달라는 집중 단속기간을 운영하기도 했었다. 집중 단속기간 동안 몇 차례의 신고가 접수되었고, 오토바이 운행자를 찾아 사실 확인 여부와 벌금에 대해 안내했었다. 안내 끝에 되돌아오는 건 ‘왜 나만 단속에 걸렸느냐, 내가 입구에 서서 오토바이 다 찍어서 올릴 테니 한 건도 빼지 말고 벌금 부과해라’는 식의 공갈 협박이었다.
그러다 문득 ‘공원에서는 이륜차 진입 금지이오니 모두의 안전을 위해 진입을 금하여 주세요.’라며 위반한 사람을 붙잡고 호소하는 건,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뀔 때 건너셔야 합니다.’와 같은 당연한 사실을 부탁하는 것만큼이나 부질없이 느껴졌다. 애초에 몇 마디의 도덕적인 말로 누군가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내 자만과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이후 가장 튼튼하고 두꺼워 보이는 볼라드를 주문해 공원 입구마다 휠체어와 유모차만 겨우 진입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 폭만 남겨놓고 이중, 삼중으로 막아버렸다. 그러자 어땠냐고? 그 이후엔 휠체어, 유모차 이용자들의 민원을 처리해야 하는 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불편하게 공원 입구에 장애물을 떡하니 설치하면 어쩌냐며 진정 이게 공원 행정이 맞냐는 욕과 원망 섞인 불평 민원에 한동안 시달려야만 했다. 그래도 볼라드를 설치한 나의 판단엔 후회 없다. 꼬인 실타래를 푸는 데에는 아주 잘 드는 칼로 썰어버리는 편이 최고의 방법인 듯하다. 그 이후로는 공원에 오토바이 소리가 잠잠해졌으니 말이다. 그리고 걸음이 느려 손주의 손을 놓치기라도 하면 전력 질주하는 오토바이가 손주를 칠 것만 같아 무섭다는 한 시민의 안전을 확실하게 지켜준 것만 같아 마음이 홀가분하다.
“선생님! 공원으로 들어오기 쉬우면 쉬울수록 오토바이도 진입이 쉬워지고, 들어오기 어려워질수록 오토바이도 같이 어려워집니다. 들어오는 5초 남짓 동안의 불편만 감수하신다면, 오토바이 없는 공원에서 긴~ 시간 편안하게 이용하실 수 있답니다.”라고 앵무새처럼 반복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눈가에 맺힌 이슬을 스윽 닦아본다.(훌쩍)
공공적인 기반 시설이 조성되면 불법적으로 이용하며 반사적인 이익을 누리는 사람들도 생기기 마련이다.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모든 세상사 일이 큰 틀에서 놓고 보면 다 해당하는 사안이겠지만, 공원처럼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공간은 특히 그런 현상들이 더 선명하게 보이곤 한다. 공공적인 장소에서 당연하게 누려야 할 모든 이들의 권리를 어느 정도 확보한 채로 적정한 선에서 합의점을 제시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민원인들 간에 다툼을 들여다보면 결국 각자에게 정해진 답이 있고, 그 입장을 관철시키는 것이 곧 본인 입장에서는 정의이니까.
6년 같았던 6개월간의 공원 관리 업무를 떠나보낸 지 어언 1개월 차. 나보다 훨씬 유능하고 맷집 좋은 후임자가 도시공원을 잘 지켜주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작은 위안을 삼으며, 그간의 민원 업무에 대한 소회를 길게 늘여보았다. 언젠간 돌고 돌아 민원 폭탄을 떠안는 업무를 맡게 되겠지? 그리고 강조되고 반복되는 소리를 들으며 불안에 떨겠지? 다시 마주하기 언짢은 날을 맞이할 그 순간을 위해 잠시나마 귀에 앉은 피딱지를 제거하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무기여 잘 있거라. 애증 했던 공원도 무사히 잘 있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