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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oyager Aug 29. 2020

출장지 감상문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해외 출장지

좋게 표현하면 “신흥국”,
직설적으로 쓰면 “후진국”으로
출장을 다닌 편이다.
 
처음에는 화교권을 건드리다가,
동남아까지 커버하게 되고,
그러다가 신흥국 전체로 일을 맡게 되어서.
 
요즘은 가끔씩 출장이 그립기도 하다.
지금처럼 '이동 불가' 시기에는 더 그렇다.
 
출장 시에는
반드시 운동화 내지는 로퍼를 챙겨간다.
 
거리를 산보하면서 도시의 분위기를 느끼고,
시장에 들어가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길거리의 로컬 식당에서 먹어 보아야
조금이나마 그 나라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the Good

우크라이나 키예프 – 영화 속의 장면들

 
키예프의 중심가는 정말 예뻤다.

‘독립광장’에서 호텔로 가는 중간의
exotic 한 돌길, 아기자기한 건물들,
키 큰 가로수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
햇살에 비치는 금발의 행인들은
정말 매치가 잘된다고 느꼈다.
 
그냥 자연스럽게
세련된 멋이 흘러나오는 도시 분위기.
 
유럽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유럽의 끝자락만 가서도 감동했다.
 
키예프라는 영화 세트장에는
영화배우도 빠질 수 없다.
 
키예프에 도착했을 때
공항에서 영화 찍고 있는 줄 알았다.
무전기 들고 다니는 항공사 직원,
입국 심사 보안요원,
심지어 픽업 나온 리무진 기사까지
모두 영화배우였다.
 
여기저기 미팅 다니면서,
중간중간 시간이 나면 야외 카페에 앉아
행인들 구경했다.
 

같이 출장 간 사람과 카페에서 한 게임은
지나가는 사람과 비슷한 영화배우 이름 맞추기.
 

미팅 때 만난,
유쾌한 젊은 프랑스 지사장
“여기 오기 전에 결혼한 걸 후회한다.
이곳은 정말 남자가 지내기 힘든 곳이다.”
 
2차 대전 때,
주축국 일원으로 참전한 이태리 군인들,
소 전쟁에 참전했다가 집단 탈영해서
우크라이나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해할만하다.
 
귀국 길에,
모스크바 공항에서 환승하려 앉아 있는데,
사람들이 몰려왔다.
참 밋밋하게 생겼다고 느꼈는데,
대한항공 승무원들이었다.


키예프 거리를 보고 있으면 이 노래가 생각이 났었다. 

금발들을 보면서.

가사는 의미가 다르지만.

 Fields of Gold, Eva Cassidy


the Bad,

홍콩 – 非情城市


출장을 가장 많이 간 지역 중의 하나이지만,
정이 붙지가 않는다.
 
대만이 역사적 질곡으로 “悲情城市”라면,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영화처럼,
홍콩은 “非情城市”라고 느낀다.
 
사람들이 비정한 것이 아니라,
환경이 사람들을 빡빡하고, 여유 없게 만들어서
삶을 즐기지 못하게 하는 삭막한 도시.
 
고층건물 사이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멋없는 건물들과 간판,
좁은 도로, 길거리의 너무 많은 사람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얘기하면
그들의 함 내지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비즈니스 자리라도,

같이 밥 먹 재미있는 얘기하고 농담하면서 웃는
그런 여유들이 대부분 없다.
 
출장 중에 주말이 끼어서
유명하다는 리펄스 베이에 갔었다.
옛날 군대 면회 갔던,
해안초소가 있는 삼척의
이름 없는 해수욕장 크기도 안 되는
조그만 해변에 바글바글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고 나서는 연민을 느꼈다.
 
홍콩은 쇼핑과 맛집의 천국이며,
빡빡하게 사는 건

땅 좁고 인구 많은 지역의 공통점이기는 하다.
한국도 살아가기 힘든 건 마찬가지고.
 
그러나,
여유러움을 높이 평가하는 나로서는
조금만 걸어 나가면 한강 있고 산도 많은 서울이
훨씬 인간답게 사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the Ugly,

인도의 도시들 – 철학이 필요해


얘기를 듣고 가기는 했지만,
인도 도시들을 다녀 보고 충격을 받았다.
“사람이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라는.
 
차 안에서 들여다 보이는
집안의 모습에 경악했는데,
그에 비하면 군대 내무반은 7성급,
전방 야간 매복 참호는 5성급 호텔이다.
 
차가 멈추기만 하면 달라붙는 거지들,
무리 지어 다니는 개, 어슬렁 거리는 소,

인도 개나 소는 자기를 사람이라고 여긴다고 한다.
식당 옆에 무리 지어 쪼그려 앉아 있는 눈이 퀭한 사람들,
누가 식당에 적선을 하면 순서대로 먹는다고 한다.
 
그런 모습에 익숙해지면 괜찮겠지만,
긴 출장 기간 내내 나는 적응이 안 돼서
거리를 걸으며 구경하기는커녕,
밥도 호텔에서만 먹었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내주던
밀크티에 맛 들여 지금도 내가 만들어 마신다.
 
역설적이게도, 빈부격차의 산물이겠지만,
지금껏 가장 인상 깊었던 호텔은 뉴델리에 있었다.
 
캄캄한 밤에 포터가 횃불 들고
야외 리셉션까지 안내해서 분위기가 exotic 하다.
“아침에 눈뜨면 룸이 물 위에 떠있다”는 아니고,
타지마할 수로를 본 딴 수로 바로 옆 1층에
방을 배치해 놓아 그런 느낌이 든다.
 
인도를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인도인이 종교적, 철학적인가?
 
IIT 붙으면 MIT 합격해도 안 간다는,
전 세계의 우수한 두뇌들이 많은 나라에서
우수한 인력들 해외로 유출시키고,
인적자원을 활용 못해서 경제대국을
만들지 못한 것은 사회 시스템 문제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빈민 많고, 빈부격차 크고,
인프라가 엉망이라서
전국적 차원의 자원배분이 비효율적인 나라에서
그들이 자랑하는 민주주의가,
지방자치제가 무슨 소용이 있는지.
 
출장 때 만났던 인도인이 그랬다.
자기들이 종교적, 철학적인 것이 아니고,
사는 게 힘들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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