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의 함정?"
마이클 샌델은 ‘능력주의의 함정’이란 개념을 세상에 내놨다. 소위 말하는 ‘능력주의’란 단어의 잔혹성을 노출한 일이다. 삶은 능력과 노력만으로 구조화할 수 없는, 수많은 요소의 결합이란 사실의 증명이었다.
사실 삶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 중 하나가 환경과 흐름이다. 태생적으로 주어진 출발선, 급작스레 닥친 환경 변화,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의 잔상. 인간으로서 어찌할 도리 없는 영역이기에, 사람들은 종종 좌절하고 괴로워한다.
레이첼 카슨의 삶도 예측하지 못한 환경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무거웠던 건 ‘생계의 무게’라는 짐이었다. 대중적으로 그녀는 현대 생태학의 어머니라 불리지만, 위대한 성취 이면에는 한 여성의 고단한 일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 레이첼의 청춘은 화사했다. 펜실베이니아 여자대학을 거쳐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해양 생물학 석사까지 취득했을 때, 그녀의 발걸음은 늘 연구자를 향해 있었다. 갑작스럽게 살던 세상이 변하기 전까지.
1930년 대공황은 강력했다. 그녀의 가계도 영향권을 벗어날 수 없었다. 집안 형편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갑작스레 아버지가 사망했다. 가난이 그녀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화사했던 청춘에 서늘한 바람이 느껴졌다.
서른 살의 레이첼에게 남겨진 건 박사 과정이 아닌 가장의 책임이었다. 그녀는 학업을 포기했다. 아니, 어쩌면 포기보다 교환이 어울릴지 모른다. 그녀는 공부할 권리를 가족의 생존과 맞바꿨다.
생계를 위해 무엇이든 해야겠다 마음먹은 레이첼은 일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학문적 멘토였던 메리 스킨커의 추천으로 당시 미국 어업국에 입사했다. 원하는 일을 하리란 기대도 하지 않았다. 레이첼에게 주어진 일은 7분가량 진행되는 라디오 원고를 쓰는 일이었다.
그런데 석사과정에서 배운 내용이 업무에 도움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당시 레이첼이 써야 했던 원고는 바다 생태계를 소개하는 글이었다. 그녀는 어려운 과학 지식을 자신의 언어로 대중의 눈높이에 맞췄다. 지루한 내용에 ‘재미’라는 요소가 붙기 시작했다. 짧은 라디오가 대중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유였다.
레이첼의 능력을 알아본 상사는 그녀에게 미국 어업국에 정식 입사할 것을 권유했다. 이후 미국 어업국의 시험에 통과하고, 역대 두 번째 여성 공무원이 된다.
사실 공무원의 삶도 그녀가 꿈꾸던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꿈으로부터 유리된 표류의 시간처럼 보였다. 그녀의 시간은 늘 정부의 정책 홍보물을 만드는 한편 보고서를 다듬는 행정 업무에 매몰됐다. 젊은 시절 꿈꾸던 해양 생물학자라는 이름은 점차 삶에서 멀어져 갔다.
하지만 일을 해 나가는 과정에 접한 생태 조사 자료가 끝없이 그녀의 마음을 건드렸다. 자연의 붕괴와 그에 따른 비극에 마음이 아팠다. 문제의식이 생기던 순간이었다. 점점 커지는 문제의식이, 사회를 향한 목소리에 대한 갈망으로 자리 잡았다.
1941년, 레이첼은 <어틀랜틱 먼슬리> 잡지에 기고했던 내용을 엮어 『바닷바람을 맞으며』라는 책을 집필했다. 그녀가 전문 지식으로 세상의 문을 두드린 첫 번째 도전이었다. 첫 발걸음이었기에 큰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의미는 깊었다.
1951년, 레이첼은 『우리 주변의 바다』라는 두 번째 저서를 발간했다. 첫 번째 책과는 반응이 달랐다. 사람들은 몰랐던 사실에 열광했다. 책은 무려 86주 동안 베스트셀러에 머물렀다. 논픽션 서적으로는 유례없는 대성공이었다.
자신감이 붙은 레이첼은 새로운 도전을 결심한다. 바로 공직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데뷔하기로 했던 것. 어린 시절 꿈꿨던 ‘과학자’로서의 삶을 작가라는 직업을 통해 이루는 순간이었다. 세상은 그녀의 황금빛 미래를 예측하고 있었다.
그러나 운명은 다시 한번 그녀를 시험대에 올린다. 유방암이 그녀의 몸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병세는 생각보다 빨랐다. 암세포가 뼈로 전이되고,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이 찾아왔다. 꿈을 찾으니 죽음이 삶을 먹어 치울 기세였다.
레이첼은 멈추지 않았다. 꺾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직감했기에, 그녀는 남은 삶을 문제의식의 해결에 쓰기로 결심한다. 자연에 대한 진실을 알리고 세상에 경고장을 날리자는 다짐이었다.
아픈 와중에도 레이첼은 『아이에게 경이로움을 느끼도록 돕는 법』, 『끊임없이 변하는 해변』 등 자연을 담은 저서를 지속적으로 출간했다. 그녀의 메시지는 늘 동일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에 불과하고, 인간의 특별함은 자연을 대할 수 있는 자율성에 있다는 것.
이러한 메시지는 1962년 출간된 『침묵의 봄』에서 폭발한다. 그녀는 책에서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으로 파괴되는 야생생물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대중들의 반응도 뜨거웠지만, 거대 화학 기업들의 대응도 강렬했다. 그들은 막대한 자본을 동원해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았고, 그녀의 성과를 폄훼하려 노력했다. 자신들의 만행을 숨기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레이첼 카슨은 굴하지 않았다. 초췌한 몸으로 의회 청문회에 나가 단호히 진실을 고발하는 그녀의 모습은 세상에 반향을 일으켰다. 정부는 조사를 시작했고, 시민 사이에서 사회 운동이 촉발됐다. 훗날 미국 대통령 앨 고어가 이 책의 출간일을 현대 환경운동의 시작일이라 일컬을 정도였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DDT 사용이 금지됐고, 환경 보호청(EPA)이 설립되었으며, 지구의 날이 제정되었다. 한 사람이 세상에 둔 문제의식이, 세상을 바꾸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그녀의 말이 거대한 물결을 만들던 어느 날. 레이첼은 57세를 일기로 숨을 거둔다. 오랜 기간 앓던 유방암이 원인이었다. 환경에 무지했던 세상을 비춘 촛불 하나가 바람의 뒤안길로 사라진 순간이었다. 생명의 촛불은 끝났지만, 그녀는 환경운동이란 이름으로 영원히 남았다.
그녀의 메시지가 아직도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인간과 다른 동물의 구별은 자연에 대한 자율성에 있다는 말. 그러니 인간은 마땅히 자연을 살리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경고다.
레이첼의 삶을 돌아보면, 마이클 샌델이 주창한 ‘능력주의의 함정’을 반추하게 된다. 삶에 ‘노력과 능력’에 대비되는 ‘운과 출발선’이 있기에 우리는 좌절한다. 마이클 샌델은 정확히 이 지점을 짚었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 쉽게 ‘늦었고’ ‘안 된다’고 말한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젊은 레이첼 카슨’들이 꿈을 미루고 현실을 살아가는 이유다. 출발선이 다르고 운이 작용하는 게 삶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자위한다. 다만 레이첼 레이첼은 당신이 견디는 현실의 고단함이 헛되지 않음을 조언한다.
그녀는 정확히 능력주의의 함정을 딛고 일어섰다. 어떤 삶의 장애도 그녀의 행보를 막을 수 없었다. 오히려 고난을 자양분으로 삼았을 뿐이다. 그녀가 세상을 바꾼 건 쉰을 넘긴 나이였고, 변화의 동력은 20대와 30대를 관통하던 생존의 시간에서 나왔다.
그럼에도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삶의 기회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한 이에게 주어진다는 것. 레이첼 카슨은 고난 속에도 늘 문제의식과 진정성을 가슴에 담았다. 꿈을 포기한 직후 대면한 업무에서도, 격무에 시달리던 공무원 시절에도, 그리고 암 투병에 지치던 시간에도. 어떤 순간도 그녀의 삶은 문제의식과 진정성을 담고 흘러갔다.
삶에 지치고 피로할 때, 이러한 말들을 가슴에 담아 보자.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가. 나의 종착점에 현재의 삶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종착점을 위해 현실을 충실히 살아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