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힘을 기르는 것은 고뇌다
마르셀 푸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행복은 몸에 좋지만, 마음의 힘을 기르는 것은 고뇌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맞는 말이다. 우리는 때로 고뇌와 번민의 끝자락에서 삶의 의미를 더듬는다. 의미를 찾아야 비로소 태도가 형성되는 까닭이다. 빅터 프랭클이 인간의 삶에서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흥미로운 점은 타인의 태도를 조망하는 일도 하나의 통찰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번뇌에 대응하는 그들의 모습은 고통이 인류 공통의 과제임을 보여주고, 삶이 어떻게든 이어진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한다.
그런 면에서 미국 18대 대통령, 율리시스 S. 그랜트의 삶은 많은 통찰을 안겨준다. 남북전쟁의 영웅과 미국 대통령이란 화려한 수사 뒤에 인간적 고뇌와 실패의 시간이 깊게 스며 있기 때문이다.
흔히 율리시스 S. 그랜트를 군인으로 기억한다. 그의 기질을 몰라서 하는 행위다. 그의 성정은 오히려 군인과 거리가 멀었다. 어린 시절부터 말을 다루는 데 천부적 재능을 보였지만, 도살장에서 흐르는 피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만큼 예민하고 섬세한 성정의 소유자였다.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진학 역시 그의 선택이 아니었다. 가정 형편과 아버지의 권유가 만든 불가피한 길이었다. 아이러니한 건 그의 재능이었다. 군인이란 직업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 늘 훈련이 묵묵하고 성실하게 임했고, 멕시코 전쟁에서도 공을 세운다.
문제는 그의 내면이었다. 군인의 삶은 그에게 명예보다 고독을 남겼다. 전쟁이 끝난 뒤 서부 개척지의 외딴 초소로 발령받았을 때 그의 좌절은 극에 달했다. 동부에 남겨둔 가족에 대한 그리움, 상관과의 갈등, 설명하기 어려운 자괴감이 그를 서서히 잠식했다.
결국 율리시스 S. 그랜트는 군복을 벗는다.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 퇴역 사유서에는 담아내기 힘든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 그의 나이 서른두 살. 사람들이 사회적 기반을 쌓기 시작할 나이에 그는 실업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 이후의 삶은 한동안 안갯속이었다. 장인이 빌려준 땅에 나무릴 베어 오두막을 짓고 농사를 시작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가뭄과 병충해, 군인 출신이었던 그의 서툰 사업 감각이 겹치며 삶은 점점 벼랑 끝으로 밀려났다.
농사를 포기한 뒤 시작한 부동산 임대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수료 한 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무른 성격 때문에 사업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생계를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다. 그랜트는 길거리에서 땔감을 파는 한편, 아버지의 가족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했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점점 차가워졌다. 서른 중반의 그랜트는 그저 실패한 전직 군인이자 무능한 인간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의 삶이 방향을 틀기 시작한 건 1861년이었다. 남북전쟁이 미국 전역을 휩쓸었다. 그의 나이는 마흔을 바라보고 있었다.
국가적 위기를 바라보던 그의 마음에 한 가지 자각이 떠올랐다. 비록 불명예스럽게 군을 떠났지만 자신은 국가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교육한 웨스트포인트 출신 장교였다. 사회에서는 가죽을 나르는 실패자에 불과했지만, 전장에서는 여전히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깨달음이 그의 몸을 움직였다. 그는 서슴지 않고 군대에 다시 자원입대했다.
그랜트는 높은 지휘권이나 화려한 자리를 기대하지 않았다. 자신이 배운 군사 지식을 연방을 위해 쓰겠다는 담백한 책임감 하나로 다시 군에 자원했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자원병을 훈련시키는 간소한 업무에 배치됐지만 그는 늘 성실히 임했다.
시간이 흐르니 상황이 달라졌다. 군 경험이 있던 그에게 점차 더 중요한 임무가 맡겨졌다. 그는 전장에 투입되었고, 병력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다시 입은 군복 위로 그랜트 특유의 묵직한 뚝심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의 강점은 복잡한 전술이 아니었다. 묵묵히 전진하는 끈질김이었다. 화려한 전략도, 정치적 책략도 없었다. 그저 단 하나의 목표에 집중했다. 승리였다.
전쟁 속에서 그는 ‘무조건적이고 즉각적인 항복’을 요구하는 지휘관으로 유명해졌다. 사람들은 그를 ‘무조건적 항복(Unconditional Surrender)’ 그랜트라고 불렀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율리시스 S. 그랜트를 주목했다. 수많은 비판과 정치적 공격에도 링컨은 그를 북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한다.
링컨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랜트는 연이어 승리를 거두었고, 마침내 애퍼매턱스 코트하우스에서 남군의 총사령관 로버트 E.리 장군의 항복을 받아냈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 중 하나였다.
이 정도의 승리를 거둔 인물이라면 쉽게 오만해지기 마련이다. 그랜트는 달랐다. 그는 승리의 쾌감보다 국가의 미래를 먼저 생각했다.
패배한 남군 병사들 역시 같은 미국인이었다. 그랜트는 그들이 자신의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피를 보지 못하던 여린 소년의 마음이 장군의 가슴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의 관용은 전쟁으로 갈라진 미국을 다시 묶어 세우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랜트는 단순한 군인이 아닌 국민적 영웅으로 추대되었다. 국가적으로 관심을 받고나니 정치가들이 가만 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치의 중심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사실 그랜트는 정치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전후에도 육군 총사령관으로 남아 군에 봉사하기를 희망했다. 다만 시대의 요구가 그의 희망과 다르게 흘렀다. 링컨 암살 이후 대통령이 된 앤드루 존슨과 의회 사이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다. 정치권은 중립적이고 신뢰받는 인물을 필요로 했다. 그랜트가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결국 그는 정계로 들어갔다. 남북의 갈등을 봉합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고, 1868년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미국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그의 어깨는 무거워 보였다. 정작 그랜트는 별 신경쓰지 않았다. 늘 그래왔듯 담담하게 임무를 수행할 뿐이었다. 그는 공권력을 동원해 KKK단을 무력화했고, 흑인에게 투표권을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15조를 시행했다. 그의 뚝심과 신념이 역사 속에 분명한 흔적을 남겼다.
다만 그의 정직함과 별개로 행정부는 측근들의 부정부패와 뇌물 사건으로 얼룩졌다. 그랜트 자신은 부정과 거리가 멀었지만, 사람을 지나치게 믿은 탓에 인사에 서툰 지도자라는 평가가 따라다녔다.
평온할 것 같던 퇴임 이후의 삶 역시 쉽지 않았다. 아들과 금융업자 퍼디낸드에게 전재산을 투자한 일이 화근이었다. 전직 대통령이었던 그가 하루아침에 무일푼의 파산자가 되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말기 후두암 진단까지 내려졌다. 죽음이 가까워졌지만 그가 가장 두려워 한 건 빚더미에 앉게 될 가족의 미래였다. 그때 그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있었다. 평소 각별히 지내던 작가 마크 트웨인이었다. 트웨인은 그랜트의 정직함을 믿었고, 회고록 집필을 권했다. 집필과 출판, 재정 문제는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그랜트의 집필 과정은 처절했다. 음식조차 제대로 삼킬 수 없는 상황에서도 모르핀 주사를 맞아가며 원고를 완성해 나갔다. 그의 문장은 놀라울 정도로 담백했다. 과장된 영웅담보다 실패와 좌절의 순간을 돌아보는 기록이 종이에 채워졌다.
1885년 5월, 그는 마침내 원고의 마지막 문장을 완성했다. 그리고 며칠 뒤,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랜트의 눈은 영원히 감겼다.
사후에 출간된 그의 회고록은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담담한 문체와 정직한 고백은 독자들을 깊이 울렸고, 그의 책은 지금도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뛰어난 회고록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평생 실패와 싸워 온 인간이 죽음의 문턱에 남긴 마지막 승리였다.
돌이켜보면 그랜트는 분명 영웅이었다. 그런데 삶을 자세히 들여보면 영웅담보다 실패의 연대기에 가깝다. 군에서 쫓겨났고, 사업에 실패했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배신당했고, 사기를 당해 파산했다. 마지막에는 암에 걸린 채 생을 마감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현실을 원망하거나 회피하지 않았다. 가죽 가게의 점원이었을 때도, 북군의 총사령관이었을 때도, 대통령이었을 때도, 죽음을 앞둔 병자가 되었을 때도 그는 늘 자신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수행했다.
우리가 그에게서 보아야 할 것은 어쩌면 화려한 승전보가 아니라 고독한 뚝심일지도 모른다.
벼랑 끝에 몰려 숨이 막힐 때만 그랜트를 떠올릴 것만 같다. 누군가의 승리가 실패 없이 정상에 오르는 영웅담이 아니라, 끝없이 붕괴하는 삶 속에서도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었음을 그가 몸으로 증명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책임을 다하는 평범한 의지가 역사를 움직인다는 사실을 보여준 인물이 아닌가. 어쩌면 인생의 승리는 가장 처참한 벼랑 끝에서 완성되기도 하나보다.
그래서 우리는 벼랑 끝에 서 있을지라도 발끝을 세우고 자신의 위치를 살피며 묵묵히 숨을 고른다. 다시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