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김창호

사선(斜線)을 그리는 힘

by 이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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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란 무엇일까.


누구나 갈망하지만 아무도 쉽게 정의할 수 없는 어떠한 것인가. 성공 담론은 화려한데 정작 실체는 흐릿하다. 시야가 흐릿하니 나는 마음을 돌볼 틈도 없이 세상의 기준에 흔들리고 만다. 높이와 속도, 숫자와 명성으로 측정되는 삶. 그 속에서 나는 질문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 내가 쫓고 있는 일이 과연 나의 궤적인지, 아니면 타인의 기준이 그려놓은 그림판인지.

2018년 10월, 네팔 돌라기리 산군 구르자히말 남벽 베이스캠프. 해발 3,500미터의 얇은 공기 속에 한 남자의 숨이 굳건했다. 텐트 안은 고요했으나 그의 내면에 오랜 질문이 떠올랐다.


왜 이 길이어야 하며, 왜 저 길은 아닌가.

수많은 기록을 넘어온 후에도 그는 여전히 미지의 벽을 두드렸다. 누구의 발자국도 없는 곳, 아무도 선을 긋지 않은 공간. 불투명한 길 위에 자신의 선을 그으려는 시도는 단순히 도전이란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건 그가 살아온 방식이자 스스로에게 부과한 과제였다.

그에게는 또 하나의 원칙이 있었다. ‘집에서 집으로 [From home to house].’ 그는 새로운 길을 찾되 무모함을 경계했다. 등반은 귀환을 포함해야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삶에는 인간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 예측할 수 없었던 그날의 눈폭풍과 산사태가 그 사실을 증명한다. 굉음과 함께 쏟아진 눈과 바위가 순식간에 텐트를 덮쳤다. 49년 간 한 방향으로 밀어온 인간의 궤적이 그 자리에 굳어졌다. 산악인 김창호. 그의 이름이 눈 위에 전설로 남는 날이었다.


그의 삶은 언제나 질문으로 출발했다.


1988년, 서울시립대학교 무역학과에 입학한 청년은 강의실보다 산악부실에 더 오래 머물렀다. 산에 오를 땐 선배들이 닦아놓은 등산로 앞에서 늘 물었다.


“왜 꼭 이 길로 가야 합니까?”


그 질문은 반항이 아니었다. 주어진 경로를 의심하는 인간의 태도이자 자신이 감당할 길은 스스로 선택하겠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청년 김창호는 정답을 찾기보다 질문이 열어젖힌 방향에 몸을 맡겼다. 방향은 늘 하나의 선으로 이어졌다. 남들이 보지 못한 시선, 그리고 지도에 없는 길.


그 선택으로, 김창호의 20대와 30대 시간은 빛으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대부분의 산악인들이 8,000미터급 고봉에 도전하며 대중의 시선을 받던 시기, 그는 카라코람의 깊숙한 골짜기로 들어갔다. 골짜기에 펼쳐진 건 이름 없는 5,000-6,000미터의 봉우리들. 지도는 불완전했고 정보는 없었으며 누구도 그곳을 주목하지 않았다. 김창호는 홀로 길을 찾고 벽을 올랐다. 산을 마주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물론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수행하는 삶이 풍족할 리 없었다.


후원은 부족했고 장비는 낡았으며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조차 많지 않았다. 선택은 대개 이런 방식으로 대가를 요구했다.


김창호는 멈추지 않았다. 결핍을 견디는 법을 배우지 못한 자가 산과 오래 대면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환경을 탓하기보다 자신을 조율했다. 몸을 단련하고, 호흡을 다듬으며, 한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감각을 길러냈다.


겉으로 드러나는 과정은 아니었지만 경험은 지난하게 축적되었다.


사람들은 훗날 그의 성취를 두고 ‘혜성처럼 등장했다’고 말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혜성처럼 나타난 적이 없었다. 다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길을 구축해 왔을 뿐이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지하에서, 그는 기초를 다지며 단단해지고 있었다.


2013년, 그는 ‘0 to 8848’ 프로젝트를 완수하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해수면에서 출발해 카약과 자전거, 자신의 두 발로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도달하는 여정이었다. 놀라운 건 산소통 없이 폐호흡만으로 정상에 도달했다는 사실이었다.


세계 산악계는 경악했지만, 그는 담담했다. 정상은 반환점에 불과했고, 그가 응시했던 건 점이 아니라 점을 향한 선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멈추지 않은 이유였다.


대기록을 달성한 후에도 그는 여전히 미지의 벽으로 향했다. 그리고 항상 그랬듯 증명된 길을 반복하기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찾아 ‘한국인의 길 [Korean Way]’ 이란 족적을 남겼다.


다시 구르자히말.


산사태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그의 숨결이 요원했다. 다만 그가 걸어온 궤적은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마지막까지 그는 자신이 선택한 길 위에 서 있었던 까닭이다.

그의 삶을 돌아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곤 했다.


왜 이 길이어야 하는가.


뒤이어 더 중요한 질문이 뒤따랐다.


지금 걷고 있는 길은, 과연 나의 길인가.


성공은 외부에서 내려지는 판결이 아니다. 남이 붙여주는 이름이라기보다 자신이 끝내 포기하지 않았어야 할 기준의 표현이다. 김창호가 집으로 돌아오진 못했지만 그의 삶이 실패로 규정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기준을 한 번도 내려놓지 않았고, 기준에 따라 삶을 밀어붙였다. 그 점에서 김창호의 삶은 이미 완결된 문장에 가깝다.


종종 타인의 언어를 빌려 삶을 서술하려던 나의 태도를 반성한다. 기준을 외부에 둔 채 타인과 비교하던 삶의 도처에서 타율적 태도의 회한을 발견했다. 나의 목소리가 사라지던 순간들이다.


어쩌면 삶은 자신의 목소리로 끄적여야 할 에세이가 아닐까. 방향은 설정하기 나름이고, 자신이 설정해야 자신의 길이 놓인다. 완전한 등정보다 완성된 방식을 택했던 김창호처럼. 뚝심 있게 밀어붙인 선택이 있어야 삶이 단단한 구조로 축적되는 건 아닐까.


글을 쓰던 와중에 나는 또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당신이 붙든 성공이란 누구의 언어로 쓰이고 있는가.


세상이 하나의 잣대를 들이밀수록 우리는 집요하게 자신의 기준에 천착해야 한다. 성공이란 남보다 높이 오르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믿은 길을 자신의 발로 걸어 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조명은 언제든 타인이 끌 수 있지만, 자신의 빛은 자신만이 조절할 수 있다.


나의 길은 누구의 빛으로 점철되어 있는가. 글을 쓰던 새벽, 질문 하나로 시간이 가득 메워졌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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