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나문희

푹 익힌 시간의 성과

by 이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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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 앉아 있는데 문득 옆 사람의 휴대폰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나문희가 익숙한 모습으로 이마를 찌푸리고 있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기시감이 든다. 브로콜리 머리에 보라색 옷을 본 누구나 떠올릴 것이다. 그녀가 “호박고구마!”를 외치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으리란 사실을. 기억은 소리 없이도 자연스레 재생되곤 한다.


사람들은 흔히 성공을 보며 재능을 말한다. 운과 기회가 따랐으리라 추측하기도 한다. 맞다. 이 모든 건 삶의 구성요소다. 다만 필자는 나문희의 인생을 떠올리며 하나의 단어를 더 생각한다. ‘숙성’이다. 장독대에 익어가는 장(醬)처럼, 겉으로 조용하지만 속에서 끝없이 변하고 깊어지는 시간. 햇볕과 바람, 비와 한기를 수없이 견딘 후에야 비로소 향을 내는 과정. 그녀의 연기는 그렇게 익어 왔다.


1961년, 스무 살의 나문희는 MBC 라디오 성우 공채 1기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아직 매체가 많지 않던 시절. 그녀는 외화 더빙에서 단단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히 마릴린 먼로의 전담 성우로 활약하며 대중의 귀에 자신을 새겼다. 화면 속 인물의 입 모양과 호흡에 맞춰 감정을 불어넣는 작업은 치밀하고도 고된 노동이었다.


훗날 그녀는 성우 시절을 두고 “그때 배운 정확한 발음과 감정 실린 호흡이 연기 인생의 가장 단단한 기초가 되었다”고 회상한다. 보이지 않던 시간이 훗날의 뿌리가 된 셈이다.

시간이 흐르며 성우의 정점에 섰지만, 그녀의 마음에 다른 결이 남아 있었다. 마이크가 아닌 카메라 앞에서 숨 쉬고 싶다는 열망, 직접 몸을 쓰고 눈빛을 흔들며 감정을 전하고 싶다는 갈망이었다. 나문희가 배우로 전업하게 된 계기였다.


바라던 배우가 되었는데 현실이 냉혹했다. 1960-70년대의 여배우는 특정한 프레임 안에서 소비됐다. 가녀리고, 보호받아야 할 듯하고, 슬픔을 아름답게 흘려야 했다. 나문희와 어울리지 않는 수사였다. 그녀의 체격은 듬직했고, 존재감이 묵직했다. 감독들은 연신 그녀를 “주인공 감이 아니다”라며 폄하했다.


덕분에 나문희에게 주어지는 역할은 늘 억척스러운 어머니, 생활력 강한 이웃과 같이 곁가지 인물이었다. 동료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한 주연으로 이름을 알리는 순간에도 그녀는 조연에 불과했다.


시간이 흐르고 남들은 이제 늦었다며 포기를 종용했다. 배우 생명에 대한 타율적 진단. 좌절했을 법한데, 나문희는 몰입을 선택했다. 대사가 적어도, 등장 장면이 짧아도, 작품 전체의 결을 읽으려 애썼다. 구석의 자신이 흐트러지면 장면이 망가지리라 생각했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붙들었을까.


솔직히 사람은 타인의 배경이 되는 순간을 오래 견디기 어렵다. 비교가 마음을 갉아먹고, 조급함이 시간을 원망한다. 훗날 나문희는 연기에 대한 지독한 짝사랑이 자신을 지탱했다고 고백한다. 비중이 작아도 현장에 나가는 일이 즐거웠다고.


생각하면 즐거움이 기준이 됐을 때 속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리의 크기도 중요하지 않다. 남는 건 즐거움을 수행하기 위한 노력 뿐이다.


나문희는 대본이 해어질 때까지 읽었다. 말 한마디를 붙잡고 수십 번 호흡을 고쳤다. 그녀는 늘 그저 다음 장면을 준비하는 자세로 살아냈다. 시간을 재촉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을 축적하며 지냈을 뿐이다.


1995년, 그녀는 쉰넷의 나이가 됐다. 많은 이들이 삶의 정점을 지나 정리의 계절을 마주할 무렵. 그녀의 봄은 비로소 시작됐다.


나문희는 드라마 <바람을 불어도>로 데뷔 34년 만에 첫 연기대상을 받았다. 시상식 무대 위에서 트로피를 든 모습에서 화려한 스타의 환희보다 긴 세월을 묵묵히 견딘 사람의 담담한 미소가 드러났다. 대중은 그 모습에 열광했다. 지워지지 않고 버텨온 존재의 성과였다.


이후 ‘나문희’라는 이름은 더 이상 누군가의 어머니, 곁의 이웃으로만 머물지 않았다. 주변에 있던 자리가 중심으로 이동했다. 그녀는 어떤 모습으로든 존재했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호박고구마를 외치며 신드롬을 만들었다. 점잖은 중견 배우의 망가진 모습에서 사람들은 자유를 만끽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또 한 번의 도전이었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 단독 주연을 맡아,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을 절제된 감정으로 그려냈다. 과장도, 비명도 없었지만 오래된 슬픔을 수묵화처럼 그려냈다. 그해 그녀가 청룡영화상 등 주요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휩쓸던 장면은 지나간 세월이 퇴보와 동의어가 아님을 증명한 모습이었다.


나문희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자신의 시간을 재고 있는가. 타인의 속도인가, 사회의 기준인가, 아니면 스스로의 즐거움인가.


나문희는 시간을 원망하지 않았다. 대신 시간을 숙성했다. 조연의 세월을 허비된 구간으로 치부하지 않고 즐거움의 순간으로 치환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전성기는 번쩍이는 순간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서서히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녀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작품 목록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의 일을 사랑하고, 사랑한 일을 끝내 포기하지 않은 태도일 것이다.


비교와 조급함으로 지쳐가는 우리에게 나문희의 궤적은 조용히 속삭인다. 속도는 각자의 일이라고. 늦게 피는 꽃은 서두르지 않고 뿌리내리는 데 집중한다고.


우리 역시 늘 기약할 수 없는 봄을 향해 살아간다.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익어 가는 중일 뿐. 설사 제대로 피지 못하면 어떠랴. 그 또한 우리의 삶이며, 즐거움의 일부라면. 미래에 대한 걱정을 접어두고 현재의 즐거움에 집중해 보는 건 어떨까.


나문희의 시간을 떠올리며 필자 역시 운동화 끈을 조였다. 누군가의 박수보다 오늘의 즐거움에 집중하는 삶을 위함이다. 나의 계절도 지금 어딘가에서 조용히 익어가고 있을 테니. 오늘도 한 걸음, 그저 내디딜 뿐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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