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티 Sep 23. 2023

이별은 헬싱키 기차 플랫폼에서

오전에 그녀가 차려 준 핀란드식 오트밀과 케일 주스를 한 잔 마신 후 나설 채비를 한다. 핀란드식 오트밀은 더욱이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 진한 케일의 향을 들이 마시니 숲과 함께 하는 이곳에서 더욱 건강해진 느낌이다. 오늘부터는 핀란드의 바깥세상에 본격적으로 나간다. 헬싱키에 도착하자마자 친구집과 숲에서만 머문 터라 핀란드의 도시를 맞이할 생각을 하니 떨려온다. 많이 변해있을까. 아니면 익숙한 느낌일까.


제법 가을 날씨가 느껴진다.


단순한 아침 식사만큼이나 우리의 대화도 단순했다. 더 깊이 있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짧은 만남의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한번 이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 교환학생을 했던 투르크를 떠나기 마지막 밤 그녀의 집에 머물렀다. 새벽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그녀의 아파트가 마켓스퀘어가 위치한 센터에 있었기 때문. 소리 한 점 없는 새벽녘, 큰 마켓스퀘어를 가로지르며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던 그날. 그녀는 나와 함께 걸었다.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마켓스퀘어에서 담담하게 나를 배웅하던 20대 초반의 그녀의 모습이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녀가 핀란드에 눌러앉을 거라곤 생각을 못했던 터라, 베트남에 돌아오게 되면 꽤 자주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우린 11년 만에 만났고, 오늘 다시 굿바이 인사를 해야 한다. 이른 아침 Porvoo에 가는 버스를 예약해 놓은 터라 아침을 즐길 여유도 없이 급히 준비를 한다. 어제 나를 데리러 헬싱키 공항까지 와주었는데 오늘은 나를 보내려 근처 기차역까지 데려다준다. 기차역 플랫폼에 내려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고, 그녀의 남편과 딸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우린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앞으로의 여생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직접 만나 이야기할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11년 전과 마찬가지로 기약 없는 만남을 기대하며 인사를 한다. 한국에 오면 꼭 연락하겠다고 하지만, 이제는 안다. 생각보다 우리가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또 정신없이 살다 보면 십 년이 훌쩍 지나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젠 그때처럼 울지 않는다. 담담하게 우리는 서로를 꼭 안아줄 뿐이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우정의 모양 또한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그녀와 나와의 관계에선 잦은 만남을 기대할 순 없으니, 각자의 자리에서 건강히 생을 꾸려가는 것이 우정의 한 모양일 터이다. 기차는 늦지 않게 금방 도착했고, 창 밖에서 손을 흔드는 그녀를 마지막으로 보았다. 마음속으로 인사를 건넨. 더 멋진 사람이 되어 만나자.



이전 05화 쌀국수와 함께 한 핀란드의 저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