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에서 출발하는 포르보(Porvoo)행 버스를 탔다. 이 아침에 누가 포르보를 갈까 했는데 중간중간 서는 정거장에 내리는 사람도 꽤 많았다. 드디어 제대로 핀란드를 마주한 느낌이다. 포르보는 핀란드에서 투르쿠(Turku)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도시이다. 핀란드에 있는 6개의 중세 마을 중 하나기도 하다. 엽서에 나올 법한 붉은 목조 가옥들이 이곳의 시그니처. 여름의 햇빛을 받으면 더욱 붉게 빛나, 핀란드의 여름 마을이라 불리기도 한다. 한 시간 정도 달렸을까. 포르보강과 함께 붉은 가옥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기자기한 동화 속에 들어온 느낌이다.
헬싱키에서 투박하고 심심할 수 있는 핀란드를 경험했다면 포르보를 추천한다. 아기자기한 소품숍들을 하나하나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올드타운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소품샵도 예쁜데 그릇, 캔들, 크리스마스 장식, 뜨게 옷 등 가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소품들은 더욱 귀엽다.
이곳저곳 구경하다가 집 앞에 달려있는 노오란 풍선들을 발견했다. 아니 이건 십여 년 전 투르크의 한 마을에서 열린 플리마켓에서 봤던 풍선 아닌가. 대문에 이 풍선이 달려있으면 지금 중고 물품을 팔고 있다는 의미이다. 집 마당을 들어가 보니 정말 플리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마주한 광경에 심장이 떨렸다. 특히 동화 같은 포르보의 주택에서 이뤄지고 있는 플리마켓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플리마켓은 어딜 가나 구경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다. 한 집 앞에선 어린아이가 함께 돕고 있다. 그의 셀링 상품은 음료. 1유로를 내면 음료를 담은 종이컵을 내민다. 어린아이와 대비되는 덩치가 큰 아저씨가 그 음료를 건네받는다. 어린아이의 표정은 뿌듯해 보인다. 이내 큰소리로 또 손님을 모객 한다. 핀란드의 플리마켓에선 이렇게 가족들과 함께 중고물품을 파는 어린아이들이 종종 보인다. 작은 꼬마 숙녀들은 엄마 품 안에서 구경 오는 손님들을 멀끔 멀끔 쳐다보곤 한다. 워낙 플리마켓 구경을 좋아하는지라 포르보에서의 대부분의 시간은 중고물품들을 구경하는 데에 보냈다. 반팔티 하나도 2유로에 획득했다. 이 사랑스러운 광경에서 발을 떼기가 너무 힘들었다. 구경했던 집을 가고 또 가고. 두 번을 돈 것 같다.
포르보의 붉은 가옥을 구경하기 위해 강 건너편으로 넘어갔다. 이 동화 같은 풍경에 괜히 포즈를 취해보고 싶어 지나가는 핀란드인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흔쾌히 사진을 찍어 준 그녀는 나에게 한국말로 한국에서 왔냐고 묻는다. 보통 동양인을 보면 중국인 또는 일본인이냐고 묻는데, 어떻게 한국인인 줄 알았냐고 깜짝 놀라 물었다. 핸드폰의 어플들이 한국어로 되어 있는 것을 보고 한국인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녀 또한 약 6년 전 한국에서 2년간 공부했었다고 한다. 한국에 친구들이 있는지라 2년에 한 번씩 한국에도 간다고. 나 또한 10여 년 전 핀란드에 잠시 머물렀다고 하니 신기해한다. 서로 찰나의 인연을 아쉬워하면 작별 인사를 했다. 그녀가 찍어준 사진이 마음에 든다.
포르보는 반나절이면 구경하기에 충분하다고 많은 여행기에서 말하곤 하지만 나에겐 그렇지 않았다. 아마 이 날 열린 플리마켓도 한몫을 했으리라. 나중에 다시 이곳에 올 수 있게 된다면 하루 정도는 머물며 목가적인 이곳의 풍경을 오래오래 눈에 담아 두고 싶다. 이럴 땐 참 손재주가 너무나도 없는 것이 안타깝다. 이런 풍경을 볼 때마다 그림을 스르륵 그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다. 이제 막 모으기 시작한 마그넷을 사는 것으로 헛헛한 마음을 대신한다. 이젠 친구들을 만나러 헬싱키로 다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