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탈주, 게임의 문법으로 꺾이기를 꿈꾼 청춘 담기
게임의 문법을 닮은 영화.
분단의 현실을 생각하게 한다기보다는
탈주하는 이와 그를 잡으려는 이의 추격이
보이지 않는 손의 버튼 조작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게임 스토리텔링을 위해 분단을 차용한 것 같기도 하다.
(일부러 그런 것인진 모르겠지만)
탈주자 규남이 귀순하는 이유와 감정선을
정확히 보여주지 않은게 영화의 독창성을 마련했다는 생각이 든다.
속을 보여주지 않으며 도망치기를
끝까지 멈추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던 이유는 보위부 소좌 동지
구교환 배우가 주는 에너지가 참 좋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는 분노하고, 미치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이리뛰다가도 조용히 분석하며 규남을 쫓는다.
규남이 쥐새끼처럼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조용히 말안듣는 캐릭터이기에 불같은 현상의 캐릭터와 만나며 시너지를 낼 수 있었다.
욕심부리지 않고 꿋꿋하게 하얀 도화지같은 연기를 해내는 이제훈 배우의 매끄러움이 탈주의 도로를 잘 만들어낸 것 같다. 욕심냈으면 뻔했을지 모르는 이야기가 덕분에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통통튀는 게임의 서사로 창조적으로 완성할 수 있었던 것 같다.
10년동안 의무적으로 군생활을 해야했던 규남에게
청춘은 실패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시간이었다.
깎이는 시간은 숨 쉬는 틈이 생기기도 한다.
그가 잃어버린 초록의 시간은 귀순이라는 새로운 인생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대가 잃어버린 초록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는 분노도 사라지고, 희망하기를 포기하고, 신을 향한 기대도 없는 교만하지만 누추한 인생에 지금 나의 나뭇잎은 마지막 잎새만 덜렁거리며 끊어지길 기다리고 있다.
이미 충분히 실패하는 권리를 누렸는데, 이런 찌질한 권리를 갖고 싶어서 여기까지 목숨을 걸고 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해 아름답다 칭찬할 수 있는 일인가.
그렇다. 충분히 박수받고 칭찬받아야 한다.
자유를 누리며 마음껏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신 분들께도 감사하고, 그것을 찾아 오는
생명의 힘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또한 잃어버린 초록, 초록을 잃어버렸다는 것에 슬픔조차 느껴지지 않는 이 땅의 깊은 흉흉함을
생각하여 본다.
어디에선가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저런 인생을 산다며 비난 받을 누군가의 누추함을, 그럼에도 꾸준히 살아가는 용기를, 어떤 모습으로든 떨어진 잎이건, 붙어있는 잎이건, 수고하는 인생을 향해 빛은 누구에게나 발산하고 있는 것이라고.
당신의 길을 걸어가라고 시원한 한잔의 물을 마시는
웃음과 이야기를 위해 나는 걸어가겠다. 조악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