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bby Writers Club 시즌 1 마치기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나갈 수가 없었다. 전날 저녁에 독감 확진을 받은 참이었다. 뉴스에서나 보던 플루 환자가 될 줄이야. 의사 선생님은 상냥한 어투로 누구와도 겸상하지 말라고 하시며 타미플루를 처방해주셨다. 꼬박 5일을 집안에만 있어야 했다.
이참에 한 해 정리나 해볼까 하고 일 년간 쓴 노트들을 쌓아두고 넘겨봤다. 글 쓰고 거기에 맞는 삽화도 직접 그려봐야지-라는 다짐이 잊을만하면 한 번씩 써져 있었다. 연말까지 이어진 새해 다짐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정말로 쓴 글은 없었다.
핑계는 많았다. 일이 바빴고,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날들도 많았다. 휴일에는 말 그대로 휴식을 취해야 했다. 그런 식으로 매해 이월된 새해 목표들이 참 여럿이다.
지금이라도 쓰자, 그러면 나는 올해 글 한 개라도 쓴 거니까 목표를 이뤘어- 하는 (도둑놈 심보 같은) 마음으로 격리 조치를 받은 김에 빨랫대에 널어둔 양말을 보며 그림을 그리고, 그걸로 글을 썼다.
그리고 새해가 됐다. 동료와 새해 목표에 대해 얘기하다가 글쓰기를 말했다.
"새해에는 글을 좀 써보려고요."
"오 저도요."
"오 그럼 같이 해보실래요?"
'써보려고요'와 '쓰고 있어요'는 다르다. 아주 다르다. 얼마나 많은 나의 '해보려고요'가 연말까지 이어지다가 사라지고 말았던가... 마침 글 하나를 '썼어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된 참이었고, 글쓰기에 관심 있는 동료가 옆에 있었으니 새해뽕이 사라지기 전에 시작해버려야 했다. 또다시 크리스마스 때까지 하나의 결심도 실천하지 못할 순 없었다. 나는 다짜고짜 글쓰기 클럽을 제안했다. 이름도 멋지구리하게 지었다, Hobby Writers Club.
글쓰기 클럽의 규칙은 딱 2개였다.
1 쓰고 싶은 것을 쓴다.
2 꼭 발행한다, 마음에 완전히 들지 않더라도.
그렇게 일주일에 글 한 개씩. 딱 10주를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플루약을 먹으며 쓴 양말 글 이후로 지금 이 글까지 딱 10개를 채웠다. 생각보다 정말 술술 썼던 글도 있고, 짜내듯이 써서 발행해버리고는 다시 보지도 않은 글도 있다. 마음에 드는 글도 있고, 이게 뭔가 싶은 글도 있다. 매주 월요일에 칼같이 발행한 때도 있고, 다음 글쓰기 클럽 모임 전날 새벽까지 겨우 써서 발행을 누른 글도 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10주가 지난 오늘부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 관심이 가는 것들에 대해서 쓴 10편의 글을 가지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 관심 있는 것에 대해 글을 쓰다 보면 결국 나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다.
하루키의 '굴튀김 이론'이 딱 이런 내용이다. '굴튀김 이론'은 하루키가 취직 시험에서 받은 원고지 4매로 자기 자신을 설명하라는 문제에 답할 수 없었다는 독자의 편지에 보낸 답장에 나오는 이야기다.
원고지 4매 이내로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 다만 자기 자신에 관해 쓰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예를 들어 굴튀김에 관해 원고지 4매 이내로 쓰는 일은 가능하겠죠. 그렇다면 굴튀김에 관해 써보시는 건 어떨까요. 당신이 굴튀김에 관한 글을 쓰면, 당신과 굴튀김의 상관관계나 거리감이 자동적으로 표현되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끝까지 파고들면 당신 자신에 관해 쓰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이른바 나의 '굴튀김 이론'입니다.
<잡문집> '자기란 무엇인가_혹은 맛있는 굴튀김 먹는 법' 중에서
연말에 왜 양말을 사는지, 어쩌다가 언제부터 밀크티를 이토록 마시고 있는 건지, 친구와 같이 사는 일은 어땠는지 계속 쓰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한 편을 다 쓰고 나면 내 스스로도 나를 한 조각씩 정리할 수 있었다. 글의 완성도와 관계 없이 글이 쌓이는 것을 보면 쓰는 일도 조금씩 더 좋아졌다.
글쓰기 클럽에서는 월요일마다 저녁을 먹고 만나 8시에서 10시까지 글을 썼다. 하지만 처음 몇 개를 써보니 그 시간 내에 글 한편을 처음부터 다 써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백지에서 바로 완성된 글을 한번에 뽑아내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시간을 내고 작정하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주 큰 착각이었다. 잘 써지지도 않았고 시간도 부족했다.
그 뒤론 주말마다 미리 초안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주말 전에도 한 주동안 다음 글에 쓸 이야기들을 조금씩 모아두었다. 일상적인 시간에서 조각조각 쓰는 습관이 필요했던 것인데 이걸 잘 못한 주에는 어김없이 글이 밀렸다. 여러 편을 써서 그래도 글쓰기 좀 익숙해졌다 싶어 졌을 때에도 하얀 화면에서부터 한번에 글을 다 쓸 수는 없었다. 진짜 인생 쉽게 살아지는 게 없다. 모든 일이 조금씩 꾸준히구나 한번에 되는 게 없네.
후반부에는 잘 쓰고 싶은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를 못살게 굴기도 했다. 이것 때문에 한동안 글을 완성해내지 못했었다. 조금 익숙해졌다 싶으니 더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스멀스멀 나오면서 내 글이 자꾸 못나보이는 것이다.
좋아하는 이유가 너무 넘칠 때는 오히려 정리가 되지 않아 산만한 글이 됐다. 가장 좋아하는 것이라 가장 잘 쓰고 싶은 마음이 글을 가장 어지럽게 했고,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자꾸 늘려 퇴고할 시간을 줄어들게 만들었다.
그 와중에 마감이 있어 다행이다. 아무리 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나는 어쨌든 클럽원님과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발행 버튼을 눌러야 했기 때문에. 마감님이 글을 쓰신다는 건 역시나 진리다.
'납품 원고'를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난 마감을 탓했다. 하루만 더 있었으면 더 잘 쓸 수 있었을 거라며 아쉬워했다. 요즘엔 마감이 고맙다. 원고 마감 기한이 없었으면 지지부진한 글에 종지부를 찍지 못했으리란 걸 안다. 어르신들의 레토릭, '내가 죽어야 이 고생이 끝나지' 하는 말과 비슷하다. 마감 전에는 안 끝난다. 글쓰기란 생각의 과정을 담는 일이다. 생각을 완성하는 게 아니라 중지하는 것이다. 글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이 필요하다.
<쓰기의 말들> "작품을 완성할 수는 없다. 단지 어느 시점에서 포기하는 것뿐이다." 중
뜬금없이 제안한 글쓰기 클럽이지만, 내가 동료로 끌어들인 나의 클럽원은 마감 당일에 여행을 다녀와서도 칼같이 글을 발행하는 사람이었다. 점점 마감일을 미루던 나와 다르게 꾸준히 꾸준하던 클럽원님 덕분에 나도 조금씩 늦게라도(...면목없는 클럽장...) 마감을 지킬 수 있었다. 혼자 썼다면 아마 5개 정도 썼을 즈음에 다시 그 많은 핑계들 사이로 미뤄두었을지 모른다.
내 글에서 내가 드러나는 만큼, 다른 사람의 글에서는 그 사람이 드러난다. 내가 알고 있는 상대방의 모습을 더 잘 알게 되는 것, 혹은 모르던 모습을 새로 알게 되는 것. 그 사람의 글을 읽으면 어느 쪽으로든 그 사람을 조금 더 알 수 있다. 그래서 아는 사람의 글을 읽는 건 더 재밌다.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생각만큼 안 써질 때는 안 써진다고 하소연하기도 하고, 서로 독자가 되어주고, 글감을 같이 고민하기도 하고, 응원도 했다. 내가 읽고 있는 글을 쓴 사람이 바로 앞에 있는 것도 재밌었다. 같이 가는 사람이 있으면 역시나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구나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전에 없던 꾸준함을 장착하고-물론 중간중간 좀 후리해졌지만- 읽기만 하던 내가 다시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준 새해맞이 Hobby Writers Club.
계속 쓸 수 있게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클럽원님.
계속 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길. 하지만 시즌 1 마무리니까 일단 좀 쉬고 이어서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