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가 지났을 무렵부터, 나는 사랑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오매불망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런데 도무지 오질 않았다. 올 기미는 보였는데도 아쉽게 안 온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안 왔다. 하필 나한테만 안 왔다. 왜인지는 몰랐다. 너무 오랫동안 안 왔다.
그래서 고민했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남들과 상담도 해봤지만 영 답이 안 나왔다. 그러다가 서른이 넘었을 때결심했다. 찾아오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찾아가기로. 그때부터는 발바닥에 땀이 나게 찾아다녔다. 소개팅이 들어오면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다. 2년 동안 50번의 소개팅에 나갔다. 갈 수 있는 모임이란 모임은 전부 다 가봤다. 많을 때는 일주일에 6개의 모임에 다니기도 했다.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이면 전부 다 다녀봤다. 그래도 내 인연은 만날 수 없었다.
좌절했다. 슬펐다. 힘들었다. 절망했다. 왜 나만 못 만날까? 사실 나 자신만 몰랐었다. 사람이 목적을 숨기고 다른 사람을 만나면 자신만의 매력을 잃는다는 것을. 상대를 속여먹으려는 사기꾼이 아닌 이상, 속으로 딴 생각을 먹은 사람이 남에게 매력적으로 보일리가 없다. 그 사실을 그때에는 깨닫지 못했다. 대신 엉뚱한 걸 깨달아버리고 말았다. 바로 무소유의 정신을.
어느 순간부터 사랑이란 게 덧없고 부질없다고 느꼈다.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을 그렇게 갈망한 것 자체가 문제였던 게 아닐까? 사람은 애초에 자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소유욕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 그 맛을 알고 나면 욕구를 억누르기가 힘든 것이다. 소련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아는가? 원래 소련에는 언론의 자유가 없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글라스노스트 정책으로 방송 검열을 멈추기 전까지는. 자유가 없는 게 당연했었던 소련 인민들은 정부에 반발할 생각을 못 했었다. 하지만 정보 개방 이후 그들은 깨달아버리고 말았다. 전 세계에서 자기들만 뒤처져 있었다는 걸. 인민들은 마음의 평화를 잃었고, 5년 뒤에 소비에트 연합은붕괴되었다.
나 또한 깨달았다. 사랑이란 녀석은 영원히 내게 찾아오지 않을 거란 것을. 처음부터 나와 인연이 없는 걸 갈망한 게 잘못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아직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내 연인을 찾기를 그만두었고, 그제서야 비로소 내면의 평화가 찾아왔다. 마침내 도를 깨우친 것이다. 누가 내게 도를 아십니까?라고 물어본다면 네, 압니다. 바로 제 마음속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여유를 갖게 되었다. 나는 청춘을 바친 끝에 광명을 얻었다.
그 후로는 오로지 내면의 즐거움만을 위해 사람들을 만났다. 독서 모임, 토론 모임, 발표 스터디에 다니면서 새로운 지식과 교류로만 충족되는 자아의 기쁨을 추구했다. 나머지 시간에는 일도 열심히 하고, 게임도 열심히 하며 최대한 바쁘게 살았다. 하지만 종종 마음 한구석에서는 사랑의 빈자리가 저릿하게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마음을 스스로 다독여주었다. 가여운 중생아, 아직도 네 것이 아닌 걸 좇고 있구나. 슬프냐. 슬픕니다. 그래도 견딜만하느냐. 견딜 만은 합니다. 그럼 됐다, 잘하자. 이제 연애 말고 다른 데서 재미를 좀 찾아보려무나. 요새 피파 신작이 새로 나왔다던데.
그렇게 독신으로 조용히 늙어 죽을 삶을 준비하던 어느 날, 사랑이 나에게 불쑥 찾아왔다. 엥? 아니? 이렇게 갑자기? 아니 무슨 신호라도 좀 주시지, 이렇게 훅 들어온다고요? 아, 그동안 신호를 6개월 동안이나 주셨는데 제가 전혀 못 알아챘다고요?... 죄송합니다.
평생 동안 그렇게 열심히 찾아다녀도 못 찾았던 내 짝꿍은, 역설적으로 사랑을 포기하고 있을 때에 제 발로 내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내게 고백했다. 모든 남자들이 그녀에게 성적인 호기심으로 접근해 왔을 때 오직 나만이 그녀와의 즐거운 대화에 진심을 보였다고. 교양 있는 언행과 꾸미지 않은 자신감, 그리고 모든 것에 초연한 듯한 태도가 멋져 보였다고 했다. 이듬해에 우리는 결혼했다. 지금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그래서 내 이야기의 결론은 이렇다. 당신이 무엇을 기다리든, 그건 올 것이다. 다만 각자의 때와 방식이 있는 법이다. 그대가 쓸데없는 짓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사랑이든, 명예든, 성공이든 간에 언제 어떻게 당신에게 다가올지 모른다. 그러므로 조급해하지 말고, 내려놓아라. 초연해져라. 그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사랑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조심하세요. 그 사람은 사랑에 미친 사람입니다."
FEARLESS는 격월로 발간되며, 연남동과 성산동, 합정동 등 홍대 부근의 일부 서점 및 북카페에서 무료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