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겨울.
살을 에는듯한 칼바람이 불던 날이었다.
10개월을 잘도 버틴 한 아기가 태어났다.
쩌렁쩌렁 울음소리 한 번 컸다.
훗날 남몰래 숨죽여 울기만 했으니
그때 실컷 울어두길 잘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다.
어느덧 80이 훌쩍 넘는 '연세'가 되었다.
영하 20도를 웃도는 추운 날씨에 옷을 겹겹이 껴입었다.
집에서 나오는 길에 갓 대학을 졸업했을 것 같은 청년 하나가 그녀에게 따뜻한 꿀물차를 건넸다.
"힘내세요 할머니."
오늘도 일본 대사관 앞에 섰다.
오늘따라 유난히 사람들이 많다.
바로 앞쪽에는 그녀의 손자 손녀보다도 어린 초등학생들이 앉아있다. 노란 나비가 그려진 피켓을 손에 꼭 쥐고 이리저리 흔들고 있다. 그 뒤편에는 그들의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들도 앉아있다. 아침부터 아이들 데리고 나갈 채비하랴 바빴을 그 수고가 참 고맙다.
함께 해주는 이들에게 미안하다.
끝나지 않는 싸움을
지금까지
질
질
질
끌고 올 수 밖에 없었기에 미안하다.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님을 알고있다.
그녀를 위해
노래 부르는 사람들이 있고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있고
글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 그래도 희망은 있는거야.
하고 생각하다가도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염치없게 잘도 살아가는
그들을 볼 때면
숨이 턱턱 막힌다.
쉽게 눈 감을 수 없다.
싸움이 이토록 길어질 줄 몰랐다.
그런데, 앞으로 더 길어질 것 같다.
대체 언제 끝날까. 이 지긋지긋한 싸움은.
얼마 남지않은 그녀와 같은 이들이
이 세상에 단 한명도 남지 않게 될 때,
그땐 어떻게 될까.
그녀는 잊혀지는 게 두렵다.
대한민국만큼은 그녀의 편일 것이라고 꽤 오랜시간 믿어왔던 자신에게 화가났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그녀는 어느나라의 국민일까.
그녀가 살게 될 삶이
그렇게 우울하고 억울할 줄 미리 알았더라면,
그녀는 태어나지 않기를 선택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