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하 Feb 28. 2016

궁금해죽겠다는 표정으로

한 떨기 스물셋 좀
아가씨 태가 나네
다 큰 척해도 적당히 믿어줘요

얄미운 스물셋
아직 한참 멀었다 얘
덜 자란 척해도
대충 속아줘요     


아이유 <스물셋> 中   


누군가와 대화할 때면, 간혹 이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 사람, 나를 꿰뚫고 있구나.  


단순히 나와 친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촉’이 민감한 경우에 그렇다. 내 머릿속이 읽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가끔은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기도 한다. 털어놓기 곤란한 이야기를 해야만 할 때가 있다. 그리고 최대한 덜 곤란해지기 위해 돌리고 돌려서 말해야 할 때가 있다. 그렇게 힘겹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듣는 도중에 너무 많은 걸 계산하고 판단하고 짐작하는 표정이 읽힐 때면 더 이상 눈을 마주보기가 어려워진다.     


문득, 어제 본 무한도전이 생각났다.     


어제자 무한도전은 ‘고민상담’을 주제로 하는 특집이었다. 5명의 멘토들이 고민상담을 위한 팁을 무한도전 멤버들에게 전수해주는 자리에서 어떤 멘토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담자의)이야기를 다 알아듣지 못 하더라도-이해의 측면   


끝까지 진심으로 들어준다면 그 진심은 (내담자에게)전해질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상담이 될 수 있습니다.-공감의 측면"


그렇다. 어려운 어휘가 많아서 혹은 추상적인 이야기여서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했듯 충분한 공감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내가 가끔 느낀다는 그 감정, 내 입을 다물게 하는 그 기분을 느끼게 하는 상황들이 있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100% 이해하는 것이 온전히 공감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며 100% 공감하는 것이 꼭 터놓고 말할 수 있는 환경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제일 좋은 건,     


나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동시에     


내 표정을 읽더라도 적당히 모른 척, 적당히 속아주는 사람.

내 표정보다 내 말을 믿어주는 사람.

내가 다음에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해죽겠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

작가의 이전글 거절은 거절하는게 아닙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