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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하 May 23. 2016

연대 앞 정류장 풍경

희노애락이 공존하는 곳


여기는 연대 앞 버스정류장. 눈앞에 있는 커플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남자 분은 방금 전 잠깐 스치듯 본 사람 같은데, 지금 막 여자친구를 만났나보다. 표정이 좀 안 좋다 싶었는데 그렇고 그런 일이 있었나보다 하고 짐작해본다. 내가 있는 곳까지는 들리지 않지만, 뭐라 뭐라 말이 오고 간다. 보아하니 여자는 남자에게 화가 난 것 같다. 여자를 어르고 달래는 노력이 가상하다. 멋쩍은 표정으로 입을 떼는 여자를 유심히 쳐다보던 남자가 그녀의 허리를 슬쩍 감싸 안는다.     


밤 10시에서 11시 사이. 연대 앞 정류장은 커플들이 내뿜는 열기에 가까운 온기로 가득 메워진다. 진한 키스를 나누는 이들, 원망에 찬 얼굴로 언성을 높이거나 눈물을 글썽이는 이들도 있다. 어쩔 땐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게 민망할 정도이다. 열렬한 사랑의 역사 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는 기분. 그 불꽃들 사이사이로 그들을 애써 못 본 척 하려는, 홀로 된 자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 어쩐지 씁쓸해 보인다. 괜찮아요. 토닥토닥.


우리도 한땐 저렇게 뜨거웠잖아.   


연대 앞 정류장. 내 감정을 뒤죽박죽하게 만들어 놓는 곳. 거의 매일 들르다시피하는, 현재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추억의 공간이기도 하다. 나도 한때는 누군가의 연인이었고 수 백 번 쯤은 그곳에 서 있었다.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10분 20분이라도 더 보겠다며 집에 가는 버스를 서너대씩 보낸 기억이 있다. 까만 하늘과 달, 그리고 가로수조명이 만들어내는 뽀샵효과(?) 덕분에 밤이 되면 눈앞의 애인이 더 멋져 보였다. 시원해진 밤공기와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이 만들어내는 바람이 느껴질 때면 영화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런 날이 있는가 하면 또 어느날엔, 이대로 집에 가면 앞으로 다시는 그를 안보거나 못 볼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에 버스를 네 다섯 대 보내기도 했다. 어떻게 해서든 지금 당장 풀고 가야 오늘 밤 편하게 잠 들 수 있을 것 같았던 날들. 내 옆에 있는 커플들은 서로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몰라하는데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이런 저런 날들이 내게도 있었다.   



낙엽이 뒹굴고 있는 정류장 앞에

희미하게 일렁이는 까치발 들고

내 얼굴 찾아 헤매는

내가 사준 옷을 또 입고 온 그댈 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댈 안고서 그냥 눈물만 흘러

자꾸 눈물이 흘러

이대로 영원히 있을 수만 있다면

오 그대여 그대여서 고마워요


 버스커버스커 <정류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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