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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하 Jul 07. 2016

같이 있어달란 말

집에 사촌동생이 놀러와 있다. 한국나이로 12살, 귀여운 꼬마다. 함께 지낸지 벌써 2주가 되어가는데, 둘만 함께 있었던 시간이 많지 않다.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그 아이가 한국에 있는 시간이라곤 학교 방학기간, 3주 정도가 고작인데 함께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 같아 그게 참 미안하다.      


어제 밤, 방에서 혼자 이것저것 할 일을 하고 있는데 내 방에 들어온 꼬마가 하는 말.


“언니, 내일 (아침에) 몇 시에 나가?”     


엄마(나에게는 외숙모이다.)랑만 시간 보내는게 지겨우니 이제는 나랑 놀고 싶은건가. 그렇지만 나는 내일도 어김없이 10시면 집을 나올 것이고.      


이것 참 어떻게 대답해야하나. 내가 이뻐라 하는, 귀여워하는 사촌동생이 집에 있을 날도 이제 일주일 남은건데. 함께 시간 좀 보내고 싶고 보내야 하는데 약속을 좀 조정해볼 수는 없을까    

  

라고 생각하는 짧은 찰나에 꼬마가 하는 말.


“음..아니 나 내일 (집에) 혼자있는데...”    

 

내일은 외숙모도, 삼촌도, 우리 부모님도 아무도 안 계시고 혼자 있어야하니 같이 있어 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돌려서, 어쩌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같이 있어달라는 말'을 말이다.    



                 (네잎클로버를 찾아 헤매는 꼬마)




누군가와 꼭 같이 있고 싶은 날. 나에겐 생일이 그런 날이다. 자취하는 누군가는 주위의 친한 지인들을 불러 파티를 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근사한 술집에서 음주가무를 즐기기도 한다. 꽤 많은 사람들은 사랑하는 연인과 하루종일 함께 보내기도 한다.     



어릴 때, 그러니까 친구들에게 생일파티 초대장을 돌릴 적에는 그런 고민을 해 본적이 없다. 1년에 한번 뿐인 내 생일을 누구와 함께 보내야 할지. 중고등학교 때부터는 조금씩 고민하기 시작했지만 큰 고민은 아니었다. 내 생일을 기억해주는 몇몇 친구들이 있었고 방과후엔 서프라이즈 파티를 해주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러다 대학에 오니 내 생일을 나만큼이나 의미있게 기억해줄만한 사람들을 손에 꼽게 되었다. 사람마다 ‘의미있게 기억하는’ 기준은 다르겠지만 내게 ‘의미있음’의 척도는 같이 있어주는 것이다. 밥을 먹든 차를 마시든 그냥 수다를 떨든, 뭐든 간에 함께.




며칠 전은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의 생일이었다. 생일 며칠 전, 그녀에게 그날 같이 밥이나 먹자며 약속을 잡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암묵적으로, 나는 그녀의 생일날 함께 시간을 보낼 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닌 함께 있을 다른 누군가가 있지는 않을까’, 혹은 ‘생일날 함께 있을만한, 우리가 그 정도로 친한 사이인가’ 하는 고민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나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가령, 우리의 관계를 내가 오버해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오지랖인건 아닐지. 뭐 그런 생각들.


몇 년 전, 하루 종일 혼자 보내야했던 생일이 떠올랐다. 물론, 생일 날짜가 늘 명절 날짜와 겹치는 운명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느 날엔 가족마저 집에 거의 없어 혼자 있어야 했던 그런 날이 있었다. 정말 외로워했는데, 왜 나는 친구들에게 같이 있어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을까.          


 

오늘, 사촌 동생의 말을 듣고

같이 있어달라는 말을 내가 먼저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일 날 울면 정말 슬프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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