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재화인 집이 언제부턴가 투자수단화 되면서 비극의 서막은 시작되었다
'서울 집값 너무 비싸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평균 6억정도 되는데 이 집이 수익이 나려면 보증금 5000만원에 월 230만원을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에 월세 200만원 이상 낼 사람이 어디있나?'
'서울 집값 너무 비싸다. 우리나라 평균 가구소득이 4676만원인데 그 절반을 저축한다해도 1년에 살수 있는건 아파트 한평 밖에 안된다. 30평 아파트 사려면 이렇게 30년을 모아야 하는데 이게 말이 되나?'
술자리가 무르 익으면서 곧잘 튀어나오는 집 얘기, 누군가는 풀어놓는 푸념섞인 안주꺼리다. 그런데 여기다 대고 '그게 싫으면 사지마라. 비싸면 안사면 되지 (밥없으면 빵먹으면 되지)' 라고 한다면 어떨까? 우리는 왜 집 문제에서 자유로울수 없는지 다음과 같이 집의 수요를 살펴보면서 얘기해보면 좋을듯 하다.
집은 누구나 알듯이 의식주의 근간이며 국민의 필수재 최우선순위에 그 이름을 올려 놓아야 할 재화이다. 의복을 갖추고 배를 채운 다음에는 머리를 바닥에 누이고 쉴 수 있는 공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런데 집에 대한 실수요를 예측하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은거 않다. 예전에는 집에 대한 실수요라는 것이 가족구성원 숫자에 적당한 필요 평수를 곱하면 됐고 2인가구, 4인가구 정도로 국민주택을 나눠놓으면 다들 FM대로 혼기차면 결혼하고 때가 되면 순풍순풍 애기들을 한둘씩 낳아줬기에.. 우리나라에 대충 집이 얼마나 필요할지는 쌀집 계산기 몇번 두드리면 알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면서 결혼이 늦어지는건 다반사가 됐고, 출산은 줄고, 이혼은 늘면서 점점 FM가정 (제때 결혼, 제때 출산)이 줄어들고 있고 집의 기준standard도 단지 양적인 수요가 아닌 질적인 수요로 변해오면서 과거의 셈법은 수명이 다돼 간다고 생각한다. 경제성장과 함께 삶의 질이 올라가면서 주거에 대한 수요는 다양하게 나타났고 좋은 환경과 여건에서 자녀들을 키우고자 하는 교육수요, 동질 경제사회집단 socio-economic status의 비슷한 수준의 사람끼리 모여서 정보교류도 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어하는 커뮤니티 수요, 강이나 산옆에 살고자 하는 웰빙의 수요, 직주근접의 세컨홈에 대한 수요등 다양한 수요가 "집"이라고 하는 한 단어로 뭉뚱그려져 표현되면서 집에 대한 다양하고 계층화, 분화된 실수요들이 드러났다 생각한다. 그들의 다양한 입맛을 하나씩 다 살펴 볼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 결과로 나타난 현상을 들자면 집에 대한 실수요가 특정지역에 쏠려 나타난다는 정도로 얘기할수 있을듯하다.
집에 대한 신규 수요는 개인이 대학이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독립을 하고 결혼을 하면서 분가를 하고, 또 반대로 다시 싱글?로 돌아가는 일련의 생애주기에 따라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국가 핵심기능과 부의 80%,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의 84%, 대학평가 상위 20개중 16개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 가뜩이나 좁은 대한민국에서, 특히 젊은 사람들이 선택할수 있는 선택의 범위는 그리 넓지가 않다. 만약, 예산의 제약이 없다면 많은 신규 수요는 서울의 몇몇 지역으로 더 몰리겠지만 다행히? 각 개인별 예산에 맞춰 사람들은 알아서 현실과 타협하여 수급의 평형을 이룬다.
처음 생각했던 지역에서 지하철로 한칸 한칸 멀어지면서 점차 I seoul you는 I miss you (서울아, 그리울거야)로 바뀌어 가는데 아직 아기가 없거나 어린 젊은 부부들은 그나마 상황이 나을지 몰라도 나하나 희생하면 우리 가족 모두가 더 넓고 쾌적한 생활공간에서 생활할수 있다고 가장이 희생하기 시작하면 그 범위는 매우 넓어진다. 오늘도 이땅의 많은 가장들은 하루 두세시간, 심한경우 네시간 이상을 지하철과 버스에 몸을 싣고 매일같이 곰두마리를? 어깨에 얹고 새벽이슬과 밤하늘을 보며 출퇴근을 하고 있다. 출근 시간은 직장인의 행복지수 (클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이들은 로또만 걸린다면 제일 먼저 돈을 싸들고 가서 보란듯이 인서울(in Seoul)에 집을 사버릴 것이다. 매의 눈으로 경기도에서 호시탐탐 서울로 입성 기회를 노리고 있는 대기 수요는 서울에 대한 잠재적 실수요임에 분명하다. 이들은 잠만 경기도에서 잘 뿐, 눈뜨고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내기 때문에 박원순(서울시장)은 알아도 남경필(경기도지사)은 누군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지역적 쏠림이 두드러지게 가시화된 사례로는 10여년전 학원이 밀집한 대치동을 중심으로 일어난 집값폭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요즘들어서는 누그러든 느낌이지만, 당시 부모 입장에서는 배정받는 학교의 수준, 진학률을 주식시세 파헤치듯 철저히 조사하지 않을 수 없었고, 같은 아파트라도 동과 동 사이에 학교 배정률이 틀려진다면 전세값이나 집값을 얼마를 더 주고서라도 헌신된? 선택을 하려고 했었다. 이에 시껍한 정부는 그 이후 좋은 학교를 서울시내 및 수도권 곳곳에 분산해서 만들어 교육수요를 분산시키려 노력하였지만, 강남에 대한, 오리지날에 대한 맹목적 추종은 명품에 대한 충성심 만큼이나 어쩔수 없는 부분으로 남아 있는듯 하다.
그런데, 집을 사는 사람중에는 이런 실수요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집에 투자하여 돈을 벌려고 하는 투자 수요 혹은 당장에 집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몇 년후에 필요할수도 있어 집을 미리 사놓고 임대를 놓으려는예비수요도 있다. 한국의 주거시장에서는 이러한 집을 사기위한 가수요가 살기위한 실수요를 견인해 가는 것처럼 성장해왔고, 전국민이 하나된 마음으로 내집마련과 집값상승을 통한 부의 축적을 염원해 왔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자기집을 갖고 있는 자가비율이 절반(55%)밖에 안된다는 말은 실수요자들의 상당수가 내집마련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고 그 빈자리는 이러한 투자수요가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투자수요, 가수요를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돈이 충분히 많아서 여유 자산을 주택에 투자했다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전세와 대출로 자기돈은 절반도 안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실수요자들이라고 해서 집을 사서 돈벌 욕심이 없는 것도 아니니 일단, 기본적으로 집에 대한 수요는 그 원천적인 출발점needs이 무엇이든간에 계산기를 두드릴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일단은 모두 투자수요의 측면에서 보는것이 좋을듯하다.
투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부동산의 수익은 임대수익Rental Income과 자본수익Capital Gain(시세차익)으로 나뉜다. 사람들은 그동안 폭풍성장 시대에는 몇푼되지도 않는? 임대수익은 까이꺼? 좀 포기하더라도 자본수익만 보고도 충분히 투자를 해왔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강남 전세가비율은25%에 불과했고 전반적인 전세가는 매매가의 절반이었지 않나. 그말은 나머지 금액은 집주인이 집값이 오를걸예상하고 투자한 투자금이다. 4억짜리 집을 2억에 전세를 놓고 몇년후5억에 팔았다고 하면 실제 투자금은 2억이지만 집값이 1억 올라 50%를 벌었다고 얘기하는것이다 (실제 수익은여기서 세금과 이자를 제해야 한다). 하지만 이 자본 수익은 전적으로 매매가격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집앞에 지하철이 생기는등의 실질적인 가치 창출(added value)이 없는 이상, 근본적으로 타이밍의 싸움, 기회투자 opportunistic investment의 결과물일 뿐이다. 미국에서는 금융위기 직후 발빠른 투자자들이 서브프라임 사태로 경매시장에 쏟아져 나온 집들을 몇천채씩 벌크bulk로 샀는데 지금쯤은 경기회복 이후에 아마 돈방석에 앉았을 것이다.
얘기가 자연스럽게 이만큼 흘러가고 있기는 하지만 잠깐, 우리는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기는 하지만, 과연 집은 투자수단이어야할까?
불변의 가치인 금이나 사치재를 투자 수단으로 삼는다는데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여기서 사치재는 경제학적 용어로 불경기에는 가격이 폭락하고 호경기에는 가격이 폭등하기 때문에 타이밍만 잘 맞추면 짭짤하게 돈을 벌수 있는 상품을 얘기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예술품이다. 피카소의 수백억짜리 작품을 구입하는 것을 두고 소수 갑부들의 고매한 예술가적 취향의 돈X랄로 보는 사람은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보통 이런 초고가 작품들은 감상은 커녕 완벽한 항온항습의 지하 수장고에 고이 모셔지게 된다고 한다 (필요하면 모조품을 걸어놓는다고 한다). 이 경우, 시간이 흐르면서 그 본질적intrinsic가치가 상승했다기 보다는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작품에 대한 교환가치가 바뀌면서 작품 소유주는 잭팟(예술품의 경제학, 클릭)이 터지곤 한다. 하지만 해당 작품이 없다고 해서 찬란한 인류 문명의 번영과 영달에 지장을 초래하는것도 아니고 미술사가 발칵 뒤집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걸 가지고 투자를 한다해서 부작용은 크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비싸면 안사면 되고 그거 없다고 죽는것 아니니. (예술에 대한 무식의 소치라고 비난한다면 아임쏘리)
하지만, 꼭 필요한 생필품, 필수재가 투자수단화 된다면.. 허생전에서 본것처럼 그 피해는 일반인들에게 돌아갈수 밖에 없다. 밥때가 되면 전국민의 입에는 뭔가 먹을게 물려져 있어야 하고 해가지면 누구에게나 머리를 누이고 씻을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최소한의 인권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그게 뭔 소리여?'라고 들릴 수 있지만 주요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집은 자동차와 같은 소비의 대상이지 투자의 대상이 아니다. 더욱이 집을 통해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생빚을 내 집에 투자하는 현상은 매우 기이할뿐 아니라 여러모로 바람직하지도 않다. 집을 사놓고 집값이 두배가 되기를 정말 간절히 원한 나머지 우주가 나서서 도와주기라도 한다면, 정말 그 집을 필요로 하지만 우주에서? 도와주지 않은 실수요자들은 반대로 등골이 휠수 밖에 없다. 최근에 미국서 화제를 모았던 모 제약사 대표가 환자들에게 유일한 희귀치료제의 가격을 하루만에 몇십배 인상시켜 공분을 산것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기본적인 매커니즘은 비슷하다.
그리고 잊지말아야할 중요한 것은, 집값이 오른다고 하더라도 내집만 올라야지 다른집도 올라버리면 어차피 원점이라는 것이다. 집 하나는 깔고 살아야 하는데 밑돌을 빼서 윗돌로 옮기는 것이라면 집 하나 있는 사람은 실질적으로 얻는게 없다. 이 경우 실질적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두채 이상의 집을 가진 사람들이고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은 이제 스타팅 포인트에 서서 돈 모아서 집을 사야 하는 실수요자들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나라 가구의 45%는 집이 없다) 필수재화인 집이 투자상품화 되면서 이제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가정을 이루려고 하는 이땅의 젊은 세대들에게 내집마련의 높은 벽은 이제 애당초 불가능한 미션이 되어버렸고 이제는 전세값마저 도저히 쫓아갈수 없는 속도로 튀어나가 버리면서 그냥 정신없이 뛰기만 한다. 어디를 향해 왜 뛰어야 하는지는 일단 제쳐놓고 '왜 뛰냐건 웃지요'라면서 살고 있는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