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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양수 Jan 14. 2018

여자친구의 아버지를 만난다는 것

우리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끌린다

만남이란 놀라운 사건이다. 너와 나의 만남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넘어선다. 그것은 차라리 세계와 세계의 충돌에 가깝다. 너를 안는다는 것은 나의 둥근 원 안으로 너의 원이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감내하는 것이며, 너의 세계의 파도가 내 세계의 해안을 잠식하는 것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 채사장 -






“그래. 결혼하고 나서 살 집은 준비되었나?”

“아니 서울에 아파트 한 채 못 구하면서 결혼할 생각을 했단 말이야?”  

“자네 그렇게 항상 야근을 한다며. 뭐?! 주말에도 종종 나간다고? 그러고선 우리 딸을 데려가려고?”



“아… 아닙니다 아버님. 그게 아니에요. 잠깐만요. 잠깐만 제 말을 들어보세요~~”



아, 깜빡 잠든 것 같은데 그 사이에 악몽을 꿨다. 오늘은 여자친구 부모님을 만나는 날. 평소와는 다르게 멋짐을 장착해야 하겠는데 뭐가 좋을지 몰라 일단 미용실에 갔다. 그렇게 누군가 내 머리를 만지자 나는 영락없이 잠이 들었고 말이다. 여자친구에겐 하나도 걱정이 안 된다고 했는데. 내가 원래 호감형이라 어머님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라고 큰소리 뻥뻥 쳤는데 역시나 허세였나 보다. 은근히 걱정하고 있던 부분이 꿈이라는 실체로 등장하는 걸 보면 말이다.


“아니, 뭘 그렇게 걱정해. 걱정 안 해도 된다니까.”


여자친구가 긴장한 나를 다독이며 말한다. “너는!!” 너희 엄마 아빠니까 걱정 안 해도 되겠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가 들어간다. 못난 마음이 괜스레 뾰족 해진다. 내가 준비가 덜 된 사람처럼 보일까 봐 조바심이 나서였을까.


대학 동기 H는 여자친구 부모님을 만났을 때, 준비해 간 PPT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고 말했다. 집은 어떻게 구할 거고 자금융통을 어떻게 하겠다며, 그렇게 앞으로의 청사진을 포함시켜서 말이다. “와, 너 무슨 스티브 잡스도 아니고! 너무 오버하는 거 아냐?” 입을 헤 벌리고 듣다가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어 면박을 줬는데. 벌써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 하필 지금 떠오르는 건 왜일까.


“아, 나도 PPT로 준비할걸 그랬나. 내가 아주 PPT 기가 맥히게 만드는데...”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그래도 뭐 형식보다는 역시 콘텐츠가 중요하니까. 알찬 대답이나 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이렇게 걱정이 앞서는 건 어젯밤도 매 한 가지. 잠자리에 누워 몇몇 예상 질문을 뽑은 이유였다. 부모님은 뭐하시는지, 형제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회사는 어디에 있고 무슨 일을 하는지 등등 디테일한 신상은 물론 앞으로의 건설적인 미래까지! 그중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딱히 뾰족한 방법이 보이지 않으면서 결고 피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집'. 앞으로 어디에 살 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푸하하. 그걸 왜 오빠 혼자 고민해. 고민하면 답 나와? 나이 서른씩이나 넘어서 부모님 도움받는 게 더 창피한 거지. 걱정 말아!”


걱정 말라는 여자친구가 실은 자기 통장에 십억 정도 있다며 윙크를 해준다면 진짜 걱정 안 할 텐데. 나도 잘 알고 있다. 현실에서 그런 일은 결코 없다는 걸 말이다. “오빠. 우리가 모아둔 돈은 적지만 그래도 우리 둘 다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데, 어디 우리 둘이 구겨져서 잠잘 곳 하나 못 구하겠어? 안되면 그냥 월세 살지 뭐. 하하. 1년에 한 번씩 동네 바꾸면 재밌을 것 같아!”


우리가 살 집은 어디에


여자친구가 심플하게 말하는 걸 들으니 정말 그래도 될 것 같아 어쩐지 마음이 가벼워진다. 내가 여자친구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런 것 때문 아닐까. 가만히 보면, 그녀와 나는 조금 다르게 세상을 바라본다. 이를테면 내가 예측 불가능한 것에 대해 불안해할 때, 여자친구는 뭐가 나타날지 모르는 궁금증에 흥미로워한다. 내가 피할 수 없는 커다란 문제에 집착하며 어떻게든 답을 찾기 위해 매달리는 스타일이라면 여자친구는 일단 쉬운 문제부터 하나씩 훌훌 털어버리는 스타일이고 말이다.  


당연하게도 여자친구와 나는 결혼을 준비하는 방식도 서로 달랐다. 집을 마련하는 것은 결혼 준비에 있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였다. 게다가 부모님 도움 없이 우리끼리 알아서 마련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현실적인 대책이 꼭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 문제 때문에 실은 요 며칠 상당히 골치 아픈 날들을 보내고 있던 차였다.


그러던 차에 여자친구의 쿨한 대답은 오히려 통쾌하게 들리기까지 했다. 매년 월세로 새로운 동네에서 살면, 그것 또한 살면서 누릴 수 있는 호사스러운 행복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니. 현재에 충실한 여자친구다운 해결 책이었다. 키득 거리며 같이 얘기하고 있자니 뭘 또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했나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도 그렇게 쿨가이 다운 얘기를 여자친구 부모님에게 까지 할 수 없으니 조금만 더 현실적인 대책을 준비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서울시 평균 전세금이 얼마인지 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모은 돈에 여자친구가 모은 돈을 합쳐, 회사 대출, 신용대출, 전세대출. 그러니까 각각 이율을 계산해 보면 어떻게 자금 포트폴리오를 그려야 할지 대략 알 수 있지 않을까.


그 모든 것을 디테일하게 말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큰소리만 뻥뻥 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뒤죽박죽 거리며 자기들끼리 내 머릿속에서 엉켰다. 결혼을 하겠다고 호기롭게 포문은 열었는데 막상 어디로 쏴야 할지 몰라 온종일 두리번거리는 느낌이었달까. 그렇게 미용실에서 나와 엉킹 실타래 같은 마음을 들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저 쪽이다!"


만남의 장소는 강동의 한 일식집. 좁디좁은 입구가 매력적인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주차를 하기 위해 애쓰는 중이었다. 뒷 차가 조금만 더 물러나 주면 좋으련만. 왜 이렇게 바짝 붙어 있지 라고 생각하는 찰나 여자친구가 소리친다. “엇, 뒤에 엄빠다!” "응?” 그러니까 내가 주차를 하고 있는 데, 내 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차의 주인공들은 다름 아닌 여자친구의 부모님이었던 게다.


도로 위에서 함부로 싸우지 말라고 한 옛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 나는 엉거주춤 차에서 내려 총알처럼 튀어가 인사를 드렸다. 내가 한 발만 늦게 도착했어도 좋으련만. 운명의 신은 나를 골탕 먹이고 어디선가 낄낄거리고 웃고 있을게 분명하다! 그렇게 나는 의도치 않게 예비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주차를 위해 앞뒤로 10번씩 뺐다 들어갔다 하는 장면을 시전 했다. "주차를 못해서 귀여운 사윗감이라고 생각하시진 않겠지?" 여자친구가 깔깔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여자친구 부모님을 만난 다는 건 이런 것 아닐까



“미리 주문 해 뒀으니 어서 먹게. 시장할 텐데.”


첫마디가 '주차 연습 좀 해라'가 아니라서 천만다행이지만, 음식이 깔리고 문이 닫히자 컥 하고 가슴이 막히는 것 같다. 이제 정말 물러날 곳이 없다. “네. 감사합니다.” 이렇게 불편한 자리가 또 있었나. 군 시절에 대대장님이랑 같이 밥 먹었던 일. 회사에서 사장님이랑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던 일이 상상 속에 강제 소환된다. 가슴이 쿵쾅거리며 답답해지지만 오늘은 좋은 날이니 그런 긴장되는 날과 비교하지 말자며 허벅지를 꼬집어 본다.


“그래. 우리 경진이랑 결혼하겠다고?”


아버님이 경상도 분이라고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처음부터 돌직구를 날리시는 것 같다. “네. 그렇습니다.” 신중하지만 결단력 있게. 여기까지는 준비한 대답을 잘 한 것 같다. 여자친구가 이 상황이 어색하면서도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킥킥거린다. 


“음. 그래. 서로 행복하면 그만이지.”

“당신은 무슨 질문이 그래요. 다들 배고플 텐데 음식부터 들면서 얘기 나눠요.”


어머님이 분위기를 더 풀어 주셨다. 그렇게 음식을 먹으며 얼마간의 대화를 나눴을까. 자연히 나를 편하게 해 주시려고 노력하고 계신 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 자리는 인터뷰 자리도 아니고 비즈니스 협상 테이블도 아닌, 한 가족을 맞이 하기 위한 자리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 간단한 사실 하나를 알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고민하고 걱정하고 보냈나 싶다. 


“어머님. 경진이 매일 퇴근 늦어서 걱정 많으시죠?”


대화가 급물살을 탄 건 의외의 소재에서 시작되었다. 밤늦게 퇴근하는 일이 많은 여자친구는 당연히 부모님의 걱정거리였다. 물론 내 걱정거리이기도 했다. 적당히 있다가 얼른 칼퇴하면 좋으련만. 여자친구는 내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정색하며 싫어했다.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데 생각해 보면 내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건 맞다.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


바로 이 부분에 부모님들은 격하게 공감해 주셨다. 어머님은 여자친구가 늦게 들어오는 날엔 종종 지하철 역 앞에까지 나가서 기다리셨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들은 말인데, 여자친구의 늦은 퇴근에 부모님과 내가 한편이 되어 흥분했던 부분을 부모님이 특히 좋게 보셨다고 한다. 원래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면 나머지 사람들끼리는 똘똘 뭉치는 법인데, 그래서 그런가. 생각해 보면 여자친구가 적은 아닌데. “진짜 좋아하신 것 맞지?” 내 물음에 여자친구는 고개를 격렬하게 끄덕였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한 거네. 부족한 면을 보고 실망하는 게 아니라 서로 채워 줄 수 있어야 부부인 거고. 그런 마음가짐이 있어야 결혼도 할 수 있는 거네."


음식이 모두 나가고 후식이 들어왔을 즈음 아버님이 말씀하셨다. 송곳 질문이 있기보다는 오히려 이런저런 얘기를 해 주시면서 분위기를 편하게 해주셨다. 이런 게 연륜이라는 건가. 걱정했던 '집'에 대한 얘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셨다. 아마도 여자친구가 걱정하는 내 모습을 보고 뭔가 수를 쓴 게 틀림없다. 아니면, 당신의 딸을 믿고 애초에 그렇것들 보다는 더 중요한 것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으셨는지도. 너무도 당연한 것이지만 소홀히 넘길 수 있는 중요한 것. 바로 그 사람 자체의 모습에 대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긴장되는 여자친구의 부모님과 만나는 자리는 별 탈없이 무사히 지나갔다.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난처한 질문도 없었고, 대답하지 못했던 말도 없었다. “아 이거 뭐 별거 없네. 하하하.” 이렇게 허세를 부릴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실제로도 그랬고! 시원한 봄바람을 맞으며 여자친구가 살던 동네를 몇 바퀴를 돌았다. “오빠 왜 이렇게 자꾸 돌자 그래? 혹시 체했어?” “아, 어 음.” 과도한 긴장은 소화기 계통을 불편하게 만든다나. 한 때 간호사였던 여자친구는 등짝을 퍽퍽 후려치며 낄낄거렸다. 시원한 바람을 타고 등짝 스매싱의 소리가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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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준비하는 나만의 축제가 되길 바라며


자신 있게 추천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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