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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루 Jan 06. 2018

Day 66 수원 - 삼성의 도시

삼성의 도시라 할 수 있는 수원에서 경기도 봉송이 시작되었다. 오늘 CP인 수원 월드컵 경기장으로 가면서 이번 성화봉송 기간 동안 들렀던 월드컵 경기장들을 떠올려본다. 제주, 광주, 대전, 또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서울에서까지 들르면 뭔가 컬렉션을 만드는 느낌인데 아쉽게도 서울 CP는 마포구청과 국립극장이다.


발로 차 사커

운 좋게도 경기장 관중석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열려 있어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경기장만 보면 기분이 좋다.


보통 001번 슬랏은 조직위가 프리젠팅 파트너사에게 내주질 않는다. 조직위 또는 지자체 주자들이 뛰어야한다는 주장이다 (납득할만한 이유는 듣지 못했다). 그 도시에서의 첫 봉송이니 지자체에서 그 도시를 대표할 수 있는 주자를 선발해 뛰게 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이런 간단한 설명도 조직위로부터 들은 바는 없다. 그냥 내 생각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수원의 001번 슬랏은 우리가 가져오게 되었다. 조직위로서도 삼성이 수원을 대표한다는 데에 별다른 반대를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삼성전자를 대표할 모범적인 임직원으로 선발된 임직원 지원자가 첫번째로 뛰었다. 이어 전자 내 사회공헌센터와 총무팀에서 추천한 분들이 오전 주자로 뛰었다.


오후에는 역시나 스포츠단 소속 선수들이 왔다. 수원삼성 염기훈!!!!! TV에서 보던 것보다 큰 키에 영락없이 축구선수 같은 얼굴의(??) 염기훈이 저벅저벅 CP로 들어왔다. 마침 신분증을 안 가지고 왔다길래 “얼굴이 신분증이죠!”라고 농담을 던지며 신원 조회를 도와줬다. 줄 서있다 셀카 한 방 (나는 셀고다...)


염기훈 선수와 함께


어려서부터 수원삼성 팬이었던 동생에게 자랑했더니 염기훈 유니폼을 들고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팬이라고 이야기 좀 해달라고 ㅋㅋㅋ 나중에 봉송을 마치고 돌아온 염기훈 선수에게 큰 소리로 말해줬다. “제 동생 송xx가 팬이라고 꼭 말해달래요!” 별 의미 없는 외침 ㅋㅋㅋ


수원삼성 팬인 내 동생


그리고 우리 주자 운영팀 스탭들이 목 빠져라 기다리던 또 한 명의 운동 선수가 있었다. 바로 야구선수 황재균! 야구선수답지 않은(?) 다소 곱상한 얼굴에 듬직한 체격이 돋보였다. 주자 교육 시작하기 전 얼른 셀카 한 장을 건졌다.


황재균 선수와 함께


역시 수원인만큼 봉송로에도 시민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왔다고 한다. 나는 봉송로에 나가지 않고 CP에 상주했기 때문에, 사진으로 받아보았다. 염기훈 선수의 슬랏은 수원 월드컵 경기장 근처였고, 경기장 광장에서 플레임 스탑 - 잠시 봉송을 멈추고 프리젠팅 파트너가 진행하는 간단한 행사 - 이 진행되었다. 그래서인지 꼬마 팬들이 염기훈을 따라서 CP까지 왔다. 염기훈에게 주자 증서 증정과 기념사진 촬영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뒤에서 꼬마 팬들이 속닥거리며 다가오길 망설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축구팬 친구들 같이 사진 찍을까요?” 했더니 아주 좋아하면서 염기훈 옆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고이 챙겨온 새 축구공에 염기훈 싸인까지 받고, 개인 셀카도 찍고 신이 나서 돌아갔다. 귀여운 초딩들이었다.


봉송로에서의 염기훈

스포츠단 외에는, 중국 거물의 딸들이라는 VIP 손님들도 왔다. 부모님 없이 한국에 놀러온 중국 10대 소녀 2명이었는데, 대체 얼마나 부자이길래 딸들만 한국에 보내면서 삼성의 접대를 받게 하는지 궁금했다. 나중에 이메일 도메인을 검색해보니 중국 본토와 홍콩을 통틀어 특정 분야의 1위 기업이란다.


주자 셔틀에는 보통 장애인 동행인 또는 영어 외의 외국어 통역사만 사전 등록 후에 탈 수 있는데, 갑자기 이 중국 소녀들과 함께 온 젊은 여자가 자기는 무조건 이 소녀들과 함께 타야 한다고 우기는 것이었다. 일반 동행들은 셔틀에 절대 탈 수 없고, 탈 수 있다 해도 사전 등록을 안 했기 때문에 태워줄 수 없다고 했더니 자기는 이 소녀들의 24시간 수행비서란다. 순정만화에서나 보던 24시간 수행비서를 내가 직접 보다니!


그리고 중-한 통역을 맡은 사람도 한 명 따라왔는데, 한국어로 진행되는 주자 교육을 중국어로 통역을 하면 된다고 안내했더니 한국어에 자신이 없는지 나보고 영어로 주자 교육을 따로 해달라는 것이었다. 제가요? 영어로요? 갑자기요? 일단 같은 구간 내의 모든 주자는 다함께 조직위의 주자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했더니 그럼 미리 영어로 설명을 해달란다. 난감했다. 한숨 한번 쉬고 대충 영어로 주자 동선과 주의사항을 소녀들에게 설명해줬다. 그걸 또 중국 삼성 직원들은 사진을 찍어갔다 하 ㅡ.ㅡ


봉송을 마치고 돌아온 소녀들에게 재밌었냐고 물어보니 활짝 웃으며 really good이었단다. 짜식들. VIP님들 만족하셨으면 됐습니다 니예 니예.


그리고 오늘은 우리가 성화봉 선물을 주지 않는 삼성 주자들이 3명 끼어있는 날이었다. 인터넷에 파다하게(??ㅋㅋ) 퍼져있는 “삼성 주자들은 삼성이 성화봉을 사준다”는 썰은 정확히 말하면 완전무결 사실은 아니다. 보통 그런 주자들은 성화봉 선물을 받는 주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귀가하거나, 본인은 못 받는 주자라는 것을 알고 오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못 받는 주자들 3명이 모두 내게 성화봉을 왜 못 받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정확한 이유를 대서 설명을 해주었더니, 한 주자는 너무 실망했는지 “이거 깜짝 선물로 주려고 숨기고 있는거 아니죠?”라길래 “몰래카메랍니다~”라고 농담으로 받아치고 - 새해 들어 드립력이 늘었다 - 웃으면서 빠이빠이했다. 사업부 직원이었던 것 같은데, 지송합니다. 저도 어쩔 수 없네요!


3시경 모든 일을 마친 뒤 오겹살집에 가서 늦은 점심을 먹고 숙소로 복귀했다. 이름은 생각이 안 나지만 수원 법원 근처의 뭐뭐식당이라는 곳이었는데 잠시나마 제주도에 갔다온 것만 같은 고기맛이었다. 숙소에 복귀해서는 세상 모르고 9시까지 낮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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