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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Sep 25. 2019

내가 어디서 왔을까?

누구게?

난 빡빡 깎은 머리에 수염을 기른 홍대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타일이다. 고향에 내려가면 친척 어른들은 자유분방한 외모로 보기도 한다. 그럼 여행을 할 때는?


#1

"쓰미마셍~ 아노... 아나따와 니혼진 데스까?" (실례합니다만 저... 일본인이세요?)


낯선 사람이 아내와 내게로 다가오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본의 최고 아이돌 그룹인 스맙의 멤버였으며 한국에서는 초난강으로 더 잘 알려진 쿠사나기 쯔요시의 팬인 아내가 일본 드라마로 익힌 일본어로 대답했다.


"이이에. 와따시 다찌와 강꼬꾸진데스." (아뇨 저희는 한국인입니다)


그러자 그 여행자가 대답했다.


"아아~! 저도요."


한국말, 부산 억양으로.


"엥? 하하, 하하하 한국 분이시구나. 안녕하세요. "


한국사람이 일본말로 한국 사람에게 일본인이냐고 묻자 한국 사람이 일본말로 한국 사람이라고 대답한 상황 되겠다.


거기는 주네팔 인도 대사관 앞이었다. 연장 신청을 한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대사관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의 한국 여행자들은 국내에서 비자를 받아오기 때문에 네팔에 있는 인도 대사관에서 한국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을 테다. 그 상황에서 빡빡 깎은 머리에 수염을 기른 나를 보고 일본인이라 생각하고 일본어로 말을 걸었을 테다.



#2

터키의 하늘에서 라면 냄새가 났다. 터키 여행 중 한국인이 운영하는 호스텔에 묵게 되었다. 한인 호스텔인 만큼 한국 여행자들이 많았다. 사장님은 한국인들에게만 특별 서비스로 라면 타임이 제공될 거라고 했다. 오래간만에 라면을 먹는다는 기대에 설레는 마음으로 숙소에서 뒹굴뒹굴하면서 스페셜 라면 타임을 기다렸다. 라면을 먹으러 오라는 전갈을 받자마자 나는 주방으로 튀어 올라갔다. 커다란 냄비에 한국 여행자들이 모여들었다. 나도 오른손에 젓가락, 왼손에는 종이컵을 들고 냄비 앞으로 일보 전진했다. 주인이 마뜩잖은 눈초리로 나를 쳐다봤다. 이상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면발이 뭉게뭉게 연기를 내며 승천하는 용처럼 솟아오르는 장관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용이 공중회전을 하다가 나의 컵에 내려앉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나의 차례가 왔다. 라면을 푸는데 주인이 혼잣말인 듯 혼잣말 아닌 말을 뱉었다.


"어허~ 원래는 일본 사람한테는 라면 안 주는데."


나를 일본인으로 본 모양이다. 못 들은 척하고 아무 말 없이 그냥 먹었다. 나를 일본 사람으로 알았다면 일본어로 말하든가 한국말로 으름장을 피운 건 왜일까? 누군가가 통역해주기라도 바랐던 걸까? 먹는 걸로 치사하게. 일본인으로 오해받는 것은 여행을 하면서 자주 겪은 일이었다. 심지어 일본인 여행자도 나보고 일본 야쿠자 분위기가 난다고 한 적이 있다. 이젠 “저 한국 사람이에요~”라고 밝히기도 귀찮았다. 라면 앞에 국적이 무슨 상관인가. 설령 내가 일본인이었다 한들 라면을 먹을 수 있는데 물러섰을까. 얼마 만에 맛보는 라면인데. 주인도 더는 나를 쫓아낸다거나 하진 않았다. 라면은 ‘모찌론’(물론) 맛있었다.

"우마이~"(맛있다~)라고 말하려다 참았다.



#3

여행 중에 나보고 일본 야쿠자 분위기가 난다고 한 여행자도 있지만 어떤 일본인은 나보고 티베탄 같다고 했다.



#4

"한국 사람이에요? 몽골 스님인 줄 알았네."

터키의 어느 유적지에서 마주친 한국인 아저씨가 날 보고 한 말이다.

여행지는 점점 서쪽으로 가는데 내 얼굴은 점점 북쪽으로 올라갔다.



#5

한국에 돌아와서 이대 앞에 아내와 놀러 갔다. 이대 안에 있는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러 갔는데 포장마차에서 꼬치도 사 먹고 이것저것 구경하며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화장품 가게들이 많았고 거리 밖으로 나와 샘플 바구니를 들고 호객하는 직원들도 많았다. 주말이라 제법 사람들이 붐볐고 직원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었다.


"찐리 미엔 칸이샤"(들어와서 보세요)


"미엔 모 따우쩌"(마스크팩 50%)


뒤에서 목소리가 나를 따라온다.


 '뭐라는 거지?'


계속 걷는데 이제 내 앞으로 와서는 길을 살짝 막은 화장품 가게 직원이 말한다.


"미엔 썅 마이 이송이"(크림 하나 사면 하나 더 드려요)


"찐리 미엔 칸이샤"(들어와서 보세요)


왜 이러지?라는 표정으로 지나쳤다가 헐...


순간 인도 바라나시 골목에서 나에게 일본어로 호객하던 장사꾼이 뇌리를 스쳐갔다.

그래. 지금 저 판촉직원은 날 중국인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자꾸 중국어를 하면서 날 따라온 것 아닌가.


일본인, 티베트인, 몽골인도 모자라 이제는 중국인으로까지 보이다니. 이제 한국에서 한국인도 나를 한국인으로 못 알아보나.


그냥 내 생김새가 국적 불명 혹은  다국적의 얼굴이다. 생각해보면 국적이란 것이 체제 안에 그려진 가상의 테두리이다. 내 유전자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거기엔 중국인 티베트인 몽골인 일본인이 모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나를 사람들은 자신이 구획한 생각의 테두리에 따라 보고 싶은 대로 본다. 홍대에선 흔남, 고향에선 자유인, 외국에선 이런저런 국적의 사람, 상점 직원에겐 물건을 팔아야 하는 중국 고객이었던, 나는 그저 존재 자체로 나.



*실제로는 거리의 판촉직원이 하는 중국어를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에 아래 링크의 기사를 인용하여 썼습니다.

https://goo.gl/jnUz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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