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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Nov 01. 2021

두통 지켜보기

아픈대로 그대로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두통이 있다. 점점 심해지는 통증을 가만히 지켜본다. 두통은 내 머리에서 흥미롭고 진절머리 나는 여행을 한다.


옆머리가 시리다. 엄지로 꾹꾹 누르고 주먹으로 톡톡 두드린다. 턱을 꽉 물었다가 푼다. 두통이 빙벽 등반으로 여행을 시작한다. 관자놀이를 아이스바일로 찍는다. 로프를 고정할 못을 박는다. 아이젠으로 찬다.


눈으로 이동한다. 난 미간을 찌푸리며 눕는다. 두통은 뉴질랜드에 갔다. 통증이 눈알에 연결된 신경 다발을 발목에 묶고 번지점프를 한다. 뉴질랜드가 아니라 가평인가 보다. 좀 약하다.


앞머리와 코로 퍼진다. 코는 찡하고 머리는 멍해진다. 누워있으니까 머리가 더 멍해지는 것 같다. 일어나 앉아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본다. 멍해진 머리가 점점 조여든다. 손오공의 머리에 금테를 씌운 삼장법사는 참 잔인한 사람이다. 두통이 인도로 가고 있나?


앞머리에서 뒤통수로 관통한다. 두통은 아프리카에서 악어 사냥을 한다. 올가미에 걸린 악어가 몸부림을 치며 진흙탕 같은 뇌를 비집고 들어온다. 생각이 탁해지고 무엇이든 다 하기 싫어진다. 다시 눕는다. 목덜미가 뻣뻣하다. 


귀를 끼고 우회전한 두통은 다시 관자놀이에서 급정거한다. 머리가 울린다. 두통이 사냥한 악어를 풀어놓자 악어는 점점 덩치가 커지더니 입을 쩍 벌린다. 악어의 목구멍이 눈앞에 보인다. 악어의 아가리가 콱 닫히고 날카로운 이빨이 관자놀이에 꽂힌다.


눈을 감고 눈알로 기지개를 켠다. 머릿속에서 모래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진통제를 찾으러 자리에서 일어난다. 머리가 핑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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