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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Jun 06. 2022

거울 속에서

정기의 인상 1

현정이 없다. 현정이 명상하는 자리 거울 속에 야쿠자가 한 명 있다.


“당신 야쿠자 같아.”

여행지에서 만난 일본 여행자가 말했다. 식당에 모여 같이 놀던 여행자들이 웃는다.

“난다 고뤠!”

영화 크로우즈 제로의 등장인물 말투로 대응해줬다. 다들 한 번 더 웃는다. 


그래. 내가 좀 불량해 보이는 인상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중학교 때 학원 마치고 집에 가는데 경찰한테 검문당했고 고등학생 때도 하굣길에 경찰이 앞을 가로막더니 내 가방을 뒤졌다. 어른이 되어서도 밤에 오렌지 주스를 먹고 싶다는 현정이의 심부름을 갔다가 오는 길. 주스 병 하나 집어넣은 에코백을 어깨에 걸치고 털레털레 아디다스 삼선 슬리퍼를 끌며 집으로 오는 골목길. 싸늘하다. 경찰차가 천천히 내 뒤를 따라온다.

“저기요.”

내 옆으로 온 경찰차에서 나를 불러 세우는 목소리가 들린다.

“네.”

‘내리지 마라 내리지 마라.’

경찰이 차에서 내렸다.

“저 저기 앞에 사는 주민이에요.”

이것저것 귀찮아지기 싫어서 먼저 말을 던진다.

“아 네. 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어요?”

“슈퍼 간다고 카드만 들고 나왔어요. 무슨 일 있어요? 웬일로 순찰을 다 합니까?”

“네, 여기 근처에서 어떤 용의자가 나왔다고 해서요. 신분증 없으시면 성함과 전화번호 좀 가르쳐 주십시오.”

가르쳐주고 목소리를 꾹꾹 눌러 말했다.

“네. 꼭! 잡으시길 바랍니다.”

다시 집을 향해 슬리퍼를 끌었다.


이런 일을 뭐 그럴 수 있는 해프닝으로 받아들이는 정도가 되었지만 무려 야쿠자 같다는 이야기를 일본인한테 직접 들으니까 좀 타격감이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넘겼지만, 겉모습만으로 내가 판단되어 버리는 것 같아 씁쓸했다. 

‘사실은 야쿠자까지는 아닐 거야. 정말 야쿠자한테 당신 야쿠자 같다고 말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달랬다.



정기의 인상 2

현정이 없다. 현정이 명상하는 자리. 거울 속에 스님이 한 명 있다.

굳이 이야기하지 않겠다.



정기의 인상 3

현정이 없다. 현정이 명상하는 자리. 거울 속에 빡빡이 삼촌이 있다.


“땀똔! 빡빡이 땀똔! 헤헤 헤헤”

명절에 조카들을 만나면 그들은 앉아있는 나에게 달려들어 목마를 타고 빡빡 깎은 내 머리를 문지른다.

그게 재미있나 보다. 나를 볼 때마다 조카들은 내 머리를 그렇게 문지르곤 했다.

조카들에게 난 그냥 빡빡이 땀똔이다. 촉감이 좋은 커다란 장난감 중 하나이다.

“땀똔……”

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뭐라도 들키면 안 되는 것처럼 슬금슬금 다가와서는 조용히 나를 부른다.

이제는 누워있는 내 배 위에 올라타서는 장난감 자동차를 내 얼굴에 올려놓고 내 수염을 만지작거리다가 당긴다.

“키득키득.”



현정의 인상

1991년 모스크바. 어느 비행장에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운집해 있다.

영화 월드워 Z의 좀비 떼 장면 같은 장관이 펼쳐지고 헬리콥터가 그 위를 가로지르고 있다

하늘을 온통 주황색으로 물들인 석양이 금속판에 부딪혀 UFO처럼 번쩍인다.

쾅! 쾅! 쾅! 쾅!

폭음이 터져 나오자 사람들이 미쳐 날뛴다.

소련군들이 목마를 타고 제복을 벗어 재끼고 머리 위로 재킷을 휘돌린다.


현정이 없다.

현정이 명상하는 모습을 찍고 싶었는데 현정이가 없다.


현정은 명상 선생님이다. ‘명상하고 앉아있네’라는 이름의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명상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화도 내지 않고 늘 평온하게 지내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선생님으로서 유리한 면도 있지만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겠나. 화를 낼 때도 있고 걱정에 휩싸여 울적할 때도 있다. 명상 또한 어느 산 깊은 곳에 들어가서 하거나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방법 중 하나로 일상에서 언제나 할 수 있는 것이다.


현정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오면 주로 명상을 하지만 어떨 땐 시끄러운 메탈 음악을 듣는다.

싱잉볼 소리가 울리는 명상 음악이나 나무에 바람이 스치는 소리와 청량한 새소리가 들리는 ‘자연의 소리 모음 30분’ 이런 것을 들을 것 같지만, 아니다. 현정이가 듣는 음악 중에 가장 즐겨 찾는 것이 1991년 러시아가 아직 소련이었을 때 모스크바에서 열린 메탈리카 라이브 공연 영상이다. 드러머 라스 울리히의 킥이 베이스 드럼을 때리는데 관중들이 가슴을 맞는다. 영상을 보는 사람도 심장이 쿵쿵 울린다.


“그래 이거지!”


영상을 보는 현정은 다리로 리듬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만족스럽게 웃음 짓는다.


명상 선생님 현정은 3개월째 드럼을 배우고 있다. 

목표는 메탈리카 METALLICA의 ‘엔터 샌드맨 Enter Sandman’ 완주다. 

현정은 명상 선생님이기도 하고 메탈 마니아기도 하다.



수정과 수진의 인상

현정에게 명상을 배우고 있는 수정과 수진은 일란성 쌍둥이다.

나 또한 처음엔 일란성 쌍둥이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뭔가 둘 사이엔 더 끈끈한 유대가 있을 것 같고 취향도 비슷할 것 같았다. 물론 둘은 아주 많이 닮았다. 친하고 끈끈하다. 게다가 쌍둥이 형제와 만나 형과 언니가 결혼하고 동생과 동생이 결혼해서 4명이 함께 살고 있다. 둘이 명상 클래스에 오기도 하고 수정 수진이 운영하는 공방에 놀러 가기도 하면서 그들을 겪을수록 둘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먼저 누가 수정이고 누가 수진인지 외모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서로 일을 대하는 방식이나 성격은 전혀 다르게 보일 정도이다.


“두 분 사진 찍으러 가도 되나요?”

“네. 오셔도 괜찮아요.”

사진을 찍히는 일이 있을 때면 종종 얼굴을 가까이 나란히 하거나 같은 포즈를 취하기를 요구받는다고 했다. 사람들은 데칼코마니 같은 대칭 구도의 모습을 원하나 보다. 하지만 둘은 서로 손잡는 것도 오글거린다고 했다.

나는 사진을 찍기 전 자매들의 초상사진을 모은 사진집을 보여주면서 마음에 드는 포즈를 골라보라고 했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포즈를 선택하였다. 


대칭 구도를 사용하면 두 사람이 다르게 생겼다는 것을 더 쉽게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얼굴을 ‘다른 그림 찾기’ 하는 것처럼 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정기의 인상 4

현정이 없다.

현정이 드럼 치러가고 없어서 현정이 명상하는 자리에 거울을 두고 비친 나의 모습을 찍는다.


내가 없다.

내 머릿속 이미지에는 실제 내 모습이 없다.

나는 나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거나 사진에 담긴 모습을 볼 수 있을 뿐 맨눈으로 나의 얼굴을 볼 수 없다. 어떤 틀 속에 담긴 나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내 머릿속 나의 이미지는 거울로 본 좌우 반전된 나의 모습과 카메라 렌즈를 통과한 나의 모습이 이리저리 얽혀서 만들어진 모습일 테다. 타인에게 보이는 실제의 나는 어떨까? 다른 사람의 머릿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나는 영원히 나를 못 볼 것이다.

거울 속 나를 찍은 사진 필름을 스캔한 파일을 모니터로 다시 본다.

익숙한 이미지가 낯설다.


나와 타인을 본다고 하지만 제대로 보기는 힘들다. 나에게 쌓인 경험의 데이터베이스가 어떤 상을 만들고 거기에 근거하여 섣불리 타인을 판단한다. 외모 성별 나이 배경 신체장애 유무 등을 보고 저 사람은 이렇겠구나 저렇겠구나! 정의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에게도 그렇다. ‘나의 이런 모습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거야.’라고 단정해 버린다.


자신이든 타인이든 여러 모습이 있다. 여러 모습 중에서 이것은 맞고 저것은 아니야 하고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모습을 잘 보고 파악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세상은 잘 보는 만큼 알게 된다. 넓어진다. 그 안에 나라고, 너라고 할 수 있는 고정된 하나는 없다.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물어본다.

내가 떠올리는 명상 선생님, 쌍둥이, 빡빡이에 대한 인상은 사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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