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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Aug 28. 2022

내 우울의 계보


아침이 가장 힘들었다. 일어나기 싫음과 일어나기 싫음을 힐난하는 마음이 엉켜 뒹굴었다. 무기력과 무가치함에 덮여 겉으로는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매일 아침 저 밑에서 얄궂은 알갱이들이 자글자글 운동하며 새어 나왔다. 입안을 까슬하게 만들고 귀를 가렵게 하고 눈을 침침하게 했다. 침대에 붙어서 눈을 겨우 뜨면 저 멀리 내 손이 보였다. 너무 멀어서 움직이라는 명령이 닿지 않을 것 같았다. 다시 침대 바닥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하나의 행성만큼이나 무거운 침대의 중력장에서 벗어나는 일. 내 우울함이 매일 아침 툭 던져 준 제일 힘든 일이었다. 쇳가루가 자석 주위에 곡선을 만들 듯 우울 알갱이가 내 몸의 입, 눈, 귀, 수많은 구멍을 관통하고 지나가 침대의 중력장에 폐곡선을 그렸다.



할아버지 덕에 휴가를 나가게 되었다. 직계존속 사망 사유로 특별 휴가를 받았다. 반년을 당신 병 수발하다가 입대한 손자의 군생활을 좀 편하게 해주고 싶으셨던 걸까? 부고가 온 타이밍이 절묘했다. 바로 유격 훈련 입소하는 날 이른 아침이었다. 나는 그 해, 할아버지의 죽음 덕에 극한 훈련의 결정판, 유격 훈련을 받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장례는 집에서 치러졌다. 할아버지가 계시던 방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병풍 뒤에 숨어 계셨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서일까. 눈물이 나지 않았다. 언제 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먼 친척들도 ‘아이고 아이고’ 잘도 곡을 하는데, 난 눈물이 나지 않았다. 좀 눈치가 보였다.


입관을 했다. 방 한가운데 요가 깔려 있었고 그 위에 할아버지의 주검이 놓여 있었다. 생전에 할아버지의 요는 늘 방 윗목에 펴져 있었는데 같은 공간 다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요가 낯설었다. 뇌졸중을 앓는 몇 년간 할아버지는 그 요를 벗어날 수 없었다. 할아버지의 두 손에 동전을 쥐여 드리고 입안에는 흰 쌀을 넣어드렸다. 저승길 노잣돈이라고 했다. 할아버지의 입술에, 입 안에 물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의 땀과 오줌으로 눅눅하던 요도 깔끔하게 바싹 말라 있었다. 염을 하는 장의사의 손을 따라 바스락거리는 하얀 천과 종이의 소리도 그랬고 나의 눈도 그랬다. 말라 있었다. 잘 우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장의사는 할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했다. 


‘할아버지 조금 있으면 그 요에서 벗어나실 수 있겠네요. 안녕히 가세요.’


마지막 기도를 하고 물었다.




‘그런데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언제부터 죽고 싶으셨던 거예요?’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대문을 열어젖히면서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했다. 아무 대답이 없었다. 이웃 친구 혁이집에 가서 새로 사 온 비디오 게임을 해야 했다. 조급했다. 마당에 신발을 벗어 던지고 단을 성큼 뛰어 올라가 마루에 올랐다. 조용했다. 안방에 불빛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계실 텐데 왜 아무 소리가 없지?’ 안방 문을 살며시 열었다. 어둑한 방 한가운데, 아랫목이 아닌 한가운데 길게 펴놓은 요 위에 할아버지는 모로 돌아누워 계셨다. 주무시나? 누워있는 할아버지의 귀밑 근육이 움찔거리는 게 보였다.


‘아드득 아드득’


무언가 씹는 소리가 났다. 주무시지 않는다면 다녀왔냐고 대답을 하실 텐데. 이상한 할아버지가 조금 무서워 가방만 던져놓고 나갔다. 얼른 게임을 하고 싶기도 했다.




날이 저물 때 까지 혁이집에서 게임을 했다.

“니 아직까지 거기서 노나? 얼른 와서 밥 무라!”

엄마의 호출을 받고 엄마의 피아노 교습소로 갔다. 형이랑 동생도 와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밥을 먹던 중에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은 엄마가 급하게 일어났다.

“밥 먹고 여기서 놀고 있어래이. 엄마 갔다 오꾸마.”


그날 저녁 할아버지는 병원으로 호송되었다. 뭘 잘못 드셨는지 위세척을 했다고 했다. 몸을 씻는 건 세수나 목욕 아닌가? 세척이라는 단어가 생소했다. 누구도 그날의 사건을 말해선 안 된다고 한 적은 없었지만 어쩐지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세척이라는 단어도 뭐가 어른들만 써야 하는 위험한 말 같았다. 그 후 안방에 있던 책장 서랍에서 농약 같은 것을 보았을 때, 할아버지의 입 속에서 아드득거렸던 소리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지만, 그것도 역시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이 이야기를 들은 상담 선생님은 할아버지도 우울이 있었을 수 있겠다고 했다. 할아버지처럼 일제강점기를 겪고 전쟁도 겪고 험한 시절까지 살아낸 사람이 독거노인도 아니고 자식들과 손자들도 있는 상황이라면 그저 남은 생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했다. 할아버지께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시려고 했다면 우울증이 아니었더라도 상당히 어떤 생각에 사로잡혔을 수도 있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할아버지만의 문제를 품고 있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아버지와 형제들 그리고 나도 그런 요소가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우울증에 유전적 요인이 있다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집안 내력이나 성향이 삶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일 수 있다고. 하지만 같은 조건을 살더라도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르니, 유전이라서 모두 우울증에 걸리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자신 안의 그런 성향을 잘 풀어내는 것이 좋다고 했다.





정리하면, 우울증이 유전적인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라는, 나의 우울증 또한 집안 내력일 수도 있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라는 뭐 그런 이야기였다. 나는 우울함이 유전적이라면 엄마를 닮아서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엄마는 음악을 하였고 예민한 신경의 소유자였다. TV를 볼 때면 늘 소리가 너무 크다고 줄이라고 하셨다. 

“너희 아빠 닮아서 셋이 다 O형인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A형인 나는 아주 예민한 성격이라서 뭐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야 하고 조금만 신경에 거슬리는 것도 싫다. 어째 셋 중에 A형은 한 명도 없고 다 O형이냐?!” 

엄마가 종종 하시는 말씀이었다. 그리고 한창 힘들었던 시절 정신과 진료를 받아 보신 적도 있다고 하셔서 난 엄마를 닮아서 우울증인가 했는데 부계의 피에 그런 유전자가 있었다니. 상담을 통해 내 우울에 대한 새로운 인식 전환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도 우울했을 수 있구나. 화를 많이 내시지도 않는 할아버지였는데, 인자함으로 보였던 할아버지의 조용함이 어쩌면 우울을 감싸고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한 번씩 할머니는 전쟁통에 겪은 이야기를 하곤 하셨다. 그 중에서도 자주 하는 이야기가 북한군이 집에 들이닥쳤을 때의 겪은 일이었다.

“어데 사람한테 총을 겨누는교? 방에는 왜 신발을 신고 올라가고 어!”

할머니가 그러자 인민군들은 ‘조그만 아줌마가 기가 세네’라면서 천진하게 웃었다고 했다. 자기들도 명령 받아서 빨리 부르면 가야하기 때문에 끈으로 묶은 군화를 벗을 수가 없다고 했단다. 파랗게 젊은 애들이었다고 했다. 쌀 없냐고 쌀을 구해 가야 한다고. 할머니는 그래도 개나 소도 아니고 사람인데 방에 신발을 신고 들어가면 되겠냐고 했단다. 그러다 한 번은 누워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시고는 할아버지가 겪으셨던 일을 이야기 해 주셨다.

“너거 할아버지도 인민군한테 붙잡혀 갔었다 아이가. 동네 좀 젊은 남자들 모아가 자기들 인민군 만들라꼬 다 잡아 갔는데 다음 날 새벽에 돌아왔는기라. 소변본다 카고 도망쳤다 카데.”

너무 오래 전 일이었는지 할머니는 그저 한번 지나갔던 일을 대하는 덤덤한 어조로 이야기하셨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후, 할아버지를 보는 마음이 더 복작거렸다. 

날이 어둑해졌다. 마을에서 반나절 이상을 걸어왔다. 인민군들은 아직 어린 청년들이었다. 심하게 굴지는 않았다. 아직은 괜찮다. 조금 더 가도 돌아갈 수 있는 곳. 인민군보다는 더 익숙한 산길이다. 기회를 엿보자. 마을 반대 방향으로 계속 줄줄이 걸었다. 해는 제 갈 길로 가서 산 너머로 완전히 숨었다. 이제는 어둠 속에 숨을 수 있다. 인민군들도 지쳤는지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이제 가야 한다.


“오줌 좀 누고 오겠니요.”


할아버지를 포함한 몇 명이 좀 떨어진 나무로 오줌을 누러 갔다. 오줌 줄기가 나무 둥치에 부서져 달빛에 반짝거린다. 반짝임을 멈추고 바지를 추스르면서 달빛이 닿지 않는 곳을 두리번 찾는다.


“뛰라!”


뛰었다. 방금 밟힌 나뭇잎의 바스락 이는 소리가 귓등에서 떨어져 나갈만큼 뛰었다. 어둠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눈앞이 캄캄했지만 계속 뛰었다. 안 뛸 수 없다. 잡히면 정말 캄캄해질 것이다. 혼인하고 8년 만에 얻은 외동아들의 앞날도 캄캄해질 것이다. 일본에 건너가 광산에서 그토록 일하고 왔더니 아비가 물려준 논 몇 마지기는 형이 장손이라고 다 가져가 버렸다. 그런 형이 이 난리 중에 동생의 새끼를 제대로 보살펴 줄 리 없다. 바로 뒤에서 쫓아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누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계속 뛰었다. 귀가 먹먹했다. 이젠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누가 옆에 있는지도 안 보인다. 다리가 몸뚱이보다 더 빨랐지만, 날뛰는 억하심정보단 느려서 계속 뛴다. 빨리 더 빠르게. 어느새 푸르스름한 기운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마을 앞 강어귀에 다다랐다. 뜨거워진 등에서 모락모락 나는 김이 물안개에 스며들었다. 새벽바람에 부딪힌 강 표면이 흔들리며 반짝였다. 두 손으로 반짝임을 퍼 올려 얼굴을 때렸다. 고개를 들어 강 너머로 향하자 젖은 눈망울에 마을이 비쳐 담겼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몇 년 후 아빠와 살던 할머니도 돌아가셨다. 아빠와 따로 살던 엄마는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또 몇 년 후, 종합검진을 받은 엄마는 A형이 아닌 0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십 년을 혈액형을 잘 못 알고 있었던 엄마. A형이라 예민한 성격이라던 엄마는 그렇게 혈액형별 성격이 과학적 근거가 없음을 몸소 입증하셨다. 몰라서 무섭다. 나는 지치고 힘들었던 나를 살펴보지 않았고 잘 몰랐고 불안했고 무서웠고 우울했다. 누워있던 할아버지의 ‘아드득’ 소리가 무엇인지 몰라서 무서웠다. 알면 덜 무섭다. 나는 의사의 진단으로 나의 상태를 알았고 그에 맞는 처방으로 대처했다.



나는 O형이다. 좀 예민한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정해 놓은 자리에 내 물건이 있어야 편하다. 하지만 나는 O형이다. 아빠도 엄마도 다 닮은 것 같다. 할아버지의 혈액형은 모른다. 유전자와 가족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힘든 생이 모조리 나 때문인 것 같을 때, 그 생각의 깔때기로 빠져들 때, 멈추고 ‘내 의지대로 태어나지도 않은 걸 어쩌겠어. 모든 게 내 탓은 아니야’라고 위안으로 삼을 정도면 족하다. 유전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나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피가, 아빠와 엄마의 유전자가 나를 우울하게 만든 날보다 쏟아지는 비가 나를 우울하게 만든 날이 더 많았으니 딱 그 정도만 엮이기로. 할아버지의 피도 쏟아지는 비도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한다.




아침이 또 왔다. 누운 채로 배가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을 느끼면서 숨을 쉰다. 들이마시고 내쉬고, 들이마시고 내쉬고. 복근에 힘을 주고 상체를 침대에서 떼어냈다. 두 발을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반은 했다.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침대에서 완전히 떨어졌다. 주방으로 갔다. 아직 눈알이 눈꺼풀에 서걱거린다. 찬장에서 약 봉투를 꺼낸다. ‘아침’이라는 글씨가 박힌 약봉지를 뜯었다. 이름 모를 독극물을 아드득 씹는 대신 코팩사엑스알서방캡슐37.5mg과 산도스설트랄린정을 물과 함께 삼켰다. 하품으로 말라 있던 눈도 적셨다. 아직 밥맛은 없다. 바나나를 하나 까서 먹었다. 커피 한 잔 사러 가보자 마음먹는다. 출근 시간 후 한산한 골목을 걸으면 기분도 좀 나아질 것이다. 이런 것들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안에 우울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 삶의 여정이 죽음으로 향해간다는 자명한 사실 앞에서 솔직히 알아도 무섭고 몰라도 무섭다. 이젠 약도 먹지 않지만 언제 다시 우울이 심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불안하다. 하지만 우울을 한 번은 만나 봤으니까, 내 우울의 계보를 엮어보았으니까 다음에는 어떻게 대해줄지 마음속에 그려볼 수 있다. 그린대로 될지는 또 모르는 일이지만 그건 그때 가서 하자. 오지 않은 시간으로 속태우지 말자. 현재에 초점을 맞추고 그을린 마음의 유리를 뽀독뽀독 닦는다. 지금의 나를 잘 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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