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실 사진 참가 후기 –
여기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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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1
홍콩에서 온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우리가 홍콩에서 만났던 게 5년 전이었다. 그사이에 수많은 다섯 손가락이 있었다. 친구와 연락을 한 후 홍콩을 특집으로 다룬 사진 잡지를 펼쳤다.
분홍으로 물든 하늘 아래, 실외기를 온몸에 붙이고 있는 빌딩 벽 사이에, 거리 위에 수많은 사람이 있다. 손바닥을 펼친 하나의 손 사진이 여러 장 있다. 주름진 다섯 손가락, 가녀린 다섯 손가락, 약간은 비틀어진 다섯 손가락이 있다. 황예지. 수많은 접착 메모지가 건물을 뒤덮고 있다. 무장한 전투경찰들이 최루가스를 겨누고 있다. 그들을 뒤로하고 한 사람이 겨드랑이에 책을 끼고 결연한 눈빛으로 서 있다. 주용성. 안전모를 쓰고 방독면을 쓰고 팔다리에 보호구를 착용한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 서 있다. 장진영.
“뉴스를 봤는데 이태원 사건 너무 무서워. RIP.”
홍콩에서 온 친구의 메시지였다. 이태원 뉴스를 보았다고 했다. 친구는 숙소가 용산역 근처라고 했지만, 홍대입구역 부근에서 만나기로 했다. 두리반에서 저녁을 먹고 공원을 거닐었다. 엄마와 함께 온 친구는 내장산에 단풍 구경을 갈 거라고 했다. ‘누구나 자기가 행복해질 자리에 갈 자유와 자격이 있다. 나이 들면 단풍놀이 가듯 젊은이들은 이태원에서 핼러윈 즐기는 것’이라는 은유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내장산에도 가고 여수에도, 제주도에도 갈 홍콩 친구와 한국을 떠나기 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 후 인스타그램에서 검은 피드를 보았다. 10.29 참사 추모 사진 행동 ‘상실 사진’.
홍콩의 사진에서 보았던 이름이 다시 보였다. 황예지, 주용성, 장진영.
참가 신청하였다.
상실 사진은
주용성 작가의 ‘애도 공식’으로 시작하였다. 죽음을 다루는 분향소나 유해 발굴장소의 작업을 하면서 그것이 하나의 연극무대처럼 보인다고 했다. 애도에도 공식이 있는 것처럼 형식에 맞추어 치르고 또 치워진다. 세월호를 비롯해 이태원까지 국가 주도의 분향소가 세워졌다가 사라졌다. 주용성 작가는 할머니의 장례에서 자유롭게 할머니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는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하면서 공식적인 애도에서 죽음에 접근하기 힘든 구조가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질의응답 시간에서 애도를 행정적으로 처리하려고 한다는 참가자의 말이 와닿았다. 권력층이 죽음과 애도를 관장하려는 것 또한 사람들의 삶을 통제하고 지배하기 위한 주요한 수단일 것이다. 여성에게 상주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것 또한 마찬가지.
퇴근 시간 지하철을 탔다. 사람들로 가득 찬 9호선 열차 칸 가운데 끼였다. 몸을 움직이기 힘들었다. 마스크에 습기가 찼다. 다음역에도 내리는 사람은 없고 타는 사람만 있다. 밀려서 더 가운데로 간다.
“조금만 더 밀면 탈 수 있을 것 같은데 밀어보죠.”
출입구 쪽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불현듯 이태원이 떠올랐고 무서웠다. 이태원 참사를 보고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냐고 놀랐지만 조금만 잘못되면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일상을 사는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하여 참가한 상실 사진 두 번째 시간, 사진작가 장진영의 ‘당신이 없다면 나는 누구인가’는 그런 일상을 더 실감하게 하였다. 노동자들이 죽은 일터를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장소는 특별한 곳이 아니었다. 길을 걷다 고개를 좀 높이 들면 볼 수 있는 아파트 공사 현장과 같은 일상의 장면들이었다. 실로 ‘죽은 노동자의 어제 위에’, 어제는 살았을 노동자의 내일에 ‘우리의 오늘이 겹쳐’져 있었다. 상실 사진 세 번째 시간 박기덕 작가의 ‘무지근한 자격’에서는 죽음이 지워진 도시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묘지와 같은 죽음의 장소, 혐오시설 등은 도시의 외곽으로 밀려나고 도시는 깔끔하게 표백된다. 지방 작가는 송전탑 반대 시위의 현장이자 자기 연고와 관련이 있는 밀양을 배회하면서 담은 사진들을 공유해주었다.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지역 공동체가 어떻게 무너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 현장을 맴돌던 자신의 작업 고민을 부끄러운 듯 보여 주었다. 상실 사진 네 번째 시간 사진작가 성재윤, 홍지영의 ‘밤의 친구들’은 이태원 속 삶의 냄새가 났다. 사진을 찍은 행위가 그들에게 힘을 더해주는 행위로 느껴졌다. 밤새 뱉어내고 엉켜 있고 널브러진 오열과 슬픔을 담은 장면이 부정이 아닌 생기가 도는 에너지로 느껴졌다. 상실 사진 다섯 번째 시간 시사IN 사진기자 신선영의 ‘3미터 추모’. 제목만 봤을 때 3미터가 이태원 현장의 도로 폭을 이야기하는 것 아닐까 했다. 실제로는 적정하다고 여겨지는 포토라인의 거리라고 했다. 찍는 대상과 물리적 심리적 거리와 균형을 어떻게 찾느냐는 질문에 항상 그 균형을 잃어버린다고 신선영 기자는 대답했다. 균형을 움켜쥐고 기계처럼 맞출 필요는 없다고, 역할의 책임감을 바탕으로 생물처럼 유기적으로 조절한다고 했다. 내게는 그 말이 언제나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고 계속 해본다는 뜻으로 들렸기에 인상 깊었다. 다른 참가자는 ‘어떤 형태로 남겨질지 기억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꾸준히 하는 마음이 귀하다’는 생각 들었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고 말하고 싶었다.
마지막 날이라 좀 더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특히 안산에서 세월호 사건으로 친구를 잃었고 이태원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참가자의 목소리가 마음을 아프고 뜨겁게 했다. 울먹거림이 젖은 불덩이를 뱉어내는 것 같았다. 젖은 불덩이가 흘러내려 밀착 인화처럼 보이는 줌 화면 칸칸을 녹이고 아픔으로 들러붙게 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을 마주할 때 성장한다. 제대로 애도하기 위해서는 마주 봐야 하겠다며 이 시간을 통해 다시 카메라를 들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고 했다. 신선영 기자는 그 세대의 사진을 보고 싶다고 하였다. 정말 그러길 바란다고.
죽음은 분명 무서운 일이다. 그러나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삶 또한 변한다. 상실 사진의 작업을 보면서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죽음으로 고통으로 아픔으로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되었다. 애도는 그 연결을 인지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 아닐까? 내가 일상 생활을 영위하기까지 연결되었던 무수히 많은 삶과 노동과 죽음을 기리며 매일을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할 때 애도가 곧 무서운 하루를 버티면서 살아가는 나를 보살피는 방법이 되기도 할 것 같다.
‘그래, 애도는 매일 해야 하는 것이구나.’
재회 2
홍콩 친구를 다시 만났다. 친구에게 홍콩을 특집으로 한 사진 잡지를 선물로 줬다. 책을 펼쳐 빼곡한 빌딩 숲이 담긴 사진을 보며 친구는 ‘하하 그래 아주 홍콩스럽네’라고 한다. 또 책장을 넘기자 고글과 방독면과 보호장구를 착용한 초상이 나온다.
“아 이때구나!”
사진을 보는 친구의 눈이 커진다.
다시 상실 사진으로 돌아가 보면,
1일차 주용성 작가는 사진 한 장의 힘이 약하다고
2일차 장진영 작가도 사진이 왜소하다 하였고
3일차 박기덕 작가 또한 저는 비겁해서라는 말을 하였고
5일차 신선영 기자는 무력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무를 가지고 간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사진 하나의 힘은 너무 약하다는, 사진이 왜소하다고 말한 사람들이 찍은 사진을 보고 저 멀리 홍콩에서 온 친구는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한다.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사진이 그렇게 하고 있다.
약하다는, 왜소하다는, 비겁하다는 말. 말로는 그렇지만 사진이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황예지 작가의 말처럼 부끄러움이 발판이 되어서 작업은 계속되리라는 것을 기대하게 한다. 왜소하고 힘이 약한 사진이라지만, 죽음이 너무 가까이 있는데 애도는 가까이 둘 수 없는 사회에서 어느 누군가가 그 사진을 보고 있을 것이고 무언가를 기억하고 반추하며 연결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거대 담론, 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세계에서 오히려 하나의 사진, 왜소한 사진이 개인적인 서사와 공동체의 연대와 연결의 접점을 찾아가고, 다양하게 발화하고 귀 기울일 수 있는 시간 위에 펼쳐질 수도 있으리라. 상실 사진이 그랬고, 그렇게 우리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살면서 마음이 아프던 날, 세상으로부터 간절하게 위로를 받고 싶던 때
나를 위로해주었던 것들은 의외로 거창하고 대단하지 않았다.
대개는 소소한 순간들이었다.”
_ 산만언니,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