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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림 Jul 15. 2021

인어지묘(人魚之墓)

인간과 물고기의 사랑이야기

이 이야기는 내가 울릉도에 갔을 때 들었던 이야기이다.


 

울릉도에 가면 독도 땅 한 번쯤은 밟아볼 수 있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어부 몇 명을 붙잡고 실랑이를 해보았지만 독도는 보호구역이라 절대로 안된다고 하였다. 희미하게 보이는 독도를 바라보며 입맛만 다시고 있는데 거나하게 취한 어부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와 대신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말문을 여는 것이 아닌가. 그 이야기 하 수상하여 여기 몇 자 옮겨보고자 한다.


 

옛날, 아주 먼 옛날 독도가 우산국이라 불리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예로부터 독도에는 수많은 바다생명들이 거처하기로 유명했는데, 그 바다생명들 중 특이한 물고기가 한 마리 있었다고 한다. 이 물고기는 바닷속 생활은 지겨워하고 늘 뭍에 대한 동경만 가득해, 먹이를 먹을 때를 제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뭍 가장 가까운 곳까지 가서 물 밖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달빛이 바다 위를 일렁이던 야심한 시간에 한 소녀가 물가로 다가온 것이었다. 그녀는 가만히 물속을 들여다보더니 물고기와 눈이 마주치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가 또 슬며시 다시 다가와 수줍게 웃어 보이지 않던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소녀의 자태에 그만 넋이 나가버린 물고기는 그녀가 사라진 후에도 한참을 얼이 빠진 채 그 자리에 머물렀다고 한다.


 

물고기가 인간을 사랑하게 됐다고 하면 우스운 일처럼 들리겠지만, 또 인간도 장미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기도 하니 그 소녀의 아름다움이 종을 초월한 특별한 것이었음이 틀림없다 하겠다. 아무튼 그녀에게 영혼을 빼앗긴 물고기는 매일 그녀를 기다렸고, 그녀가 늘 달이 뜬 어둑한 밤에야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물고기의 해 뜬 동안의 일과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어둑한 밤 그녀가 나타나면 마치 강아지가 주인을 반기듯 이 물고기도 격렬하게 자신의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자신의 언저리를 빙글빙글 돌곤 했는 데 또 그 모습을 본 소녀가 때로는 까르르 웃어주고 또 때로는 박수를 쳐주기도 하니 물고기의 애타는 사랑의 마음은 더욱 커져만 갔던 것이다. 이제 이 물고기의 소원은 뭍으로 나가보는 정도가 아니라 그녀의 품에 안겨보는 것. 그것만이 강렬한 소망이 되어버렸다.


 

한편, 우산국에는 어부 한 명이 딸아이 하나와 살고 있었는데 그 딸아이의 이름은 송화라 하였다. 송화는 여식임에도 아버지를 도와 바닷일을 열심히 하는 효녀였다. 낮에는 아비를 따라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고 저녁이면 또 아비를 도와 잡아온 물고기로 아비와 함께 저녁상을 차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토록 아비를 잘 따르는 효녀였지만 또래 친구가 없다 보니 불현듯 외로움에 빠지는 일도 종종 있었는데 실은 이 소녀의 외로움은 아비의 우려 섞인 계획이기도 했다고 한다. 송화의 남달리 빼어난 외모가 혹여 송화 스스로의 운명에 화를 끼칠 것을 염려해 아무도 살지 않는 섬으로 데려온 것이 바로 아비였던 것이다.


 

그렇게 외로운 나날을 보내던 송화가 홀로 야심한 밤 바닷가로 걸어갔던 것은 운명적인 일이었다. 유독 잠이 들지 않던 어느 날 밤,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을 따라 거닐다 보니 이윽고 바다에 다다랐고 그 바다에 비친 달을 보려 고개를 숙이다 그만! 아리따운 한 소녀를 만나게 된 것이다. 처음으로 아비가 아닌 자기 또래의 사람을 본 송화는 처음에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물러섰지만 이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조심히 물가를 바라보는데, 그 소녀 또한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총총걸음으로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간 그날 이후, 송화는 매일 밤 아비가 코를 골며 잠들기만을 기다렸다가 그녀를 만나러 가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 되고야 만다.


 

그 소녀를 만나기 전에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몰랐던 송화였다. 하얀 얼굴에 생긋 웃는 미소를 보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떨려오는 것이었다. 특히나 소녀의 눈이 좋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에서 어디서도 느끼지 못했던 깊은 외로움 같은 것도 느끼곤 했던 것이다. 소녀는 이따금 미소도 지어주고 또 자신의 이야기에 끄덕끄덕 맞장구도 쳐주었으며 때로는 박수를 치며 함께 깔깔 거려 주기까지 하였으니 송화는 그녀에 대한 마음이 커져만 갔던 것이었다.


 

송화는 소녀에게 선물이 해주고 싶어 졌다. 소녀에게 예쁜 꽃으로 만든 머리띠를 씌워준다면 더없이 아름다울 것만 같았다. 때마침 가을이라 우산국 곳곳에 꽃들이 피었고 송화는 섬 여기저기를 다니며 꽃을 꺾기 시작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송화는 한 나뭇가지의 꽃을 꺾다가 그 꺾인 나뭇가지에 그만 한쪽 눈을 찔리고 만다. 놀란 아비가 밤낮으로 송화를 간호해보았지만 끝내 딸의 눈은 돌아오질 않고 아비는 그 모습에 슬피 울다 목소리를 잃었다고 한다.


 

한참을 병상에 있다 겨우 몸을 일으킨 송화는 그 소녀가 무척 그리웠다. 하여 다시 어두운 밤 바닷가로 걸어가게 되는데, 조심스레 또 반가운 마음으로 소녀를 바라본 송화는 화들짝 놀라며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소녀의 눈 한쪽도 심히 다쳐있었던 것. 한참을 울던 송화는 다시 소녀를 바라보다 그 소녀의 눈을 어루만져주고 싶어 졌다. 조심스레 소녀의 눈을 향해 손을 뻗는데, 자신의 손이 소녀의 눈을 통과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놀랄 틈도 없이 풍덩! 소리와 함께 소녀도 송화와 함께 사라져 버리고, 그 자리는 그들이 만나기 전과 마찬가지로 그저 달빛만 일렁이고 있었다고 한다.


 

딸을 잃어 슬픔에 빠진 아비는 식읍을 전폐한 채 힘겨운 나날을 보내다 자신도 바다에 빠져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배를 끌고 바다로 나가게 되는데 그러다 두둥실 떠오른 딸의 시체를 보게 된다. 겨우겨우 딸의 시신을 수습해 뭍으로 돌아왔는데 이게 왠 걸, 송화의 치마폭 속에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송화가 바다 위로 떠오른 것이 필시 물고기의 노력 덕분일 것이라고 생각한 아비는 그 물고기를 송화와 함께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묻게 되고 그 무덤에는 사람과 물고기의 무덤이라 하여 인어지묘(人魚之墓)라 적어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또 많은 세월이 흘러 그 아비조차 사라진 그곳을 지나던 어부들이 이따금 몸의 절반쯤 위로는 소녀의 모습을 하고 또 몸의 절반쯤 아래로는 물고기의 모습을 한 괴생명체를 봤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고 하는 데 아는 사람들끼리는 그 생명체를 인어라 불렀다고 한다.


 

술에 취한 어부가 다소 거칠게 내뱉은 그 이야기 속에서 난 왜인지 가슴이 절절해지는 아픈 사랑의 감정이 솟아나는 듯 해 그 마음 다스리고자 함께 술잔을 나누었는데,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원래 묵었던 텅 빈 민박집의 내 방이었다. 햇살이 짱짱해 부스스한 머리로 걸어 나와 다시금 독도 쪽을 바라보니, 삼삼한 안개에 사로잡힌 섬의 모습이 누군가를 홀리고도 남겠다 싶어 쓴웃음만 나오는 것이었다.





*나르시시즘의 신화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였다.

*인어지묘는 허구의 것이다.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다.

*여주인공 송화의 이름은 독도의 대표 식물 중 땅채송화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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