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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점휴업 Jun 27. 2021

#7 감자를 키운 건 팔할이 땅

:1시간 거리에 주말 농장이 생겼다

    9시 즈음에 밭에 도착했다. 이제 정말로 여름인 탓에 조금이라도 해가 나면 더워서 고생하지 싶어서였다. 친구들도 서둘러서 도착했다. 오늘은 드디어 감자 수확하는 날이라 부랴부랴 부푼 기대를 안고 도착했다. 밭갈이가 8월 초에 예정되어 있어서 이제 슬슬 작물을 정리하는 중이다. 조금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 밭에 있는 작물은 어느 정도 먹어 치운지라 수확할 것은 거두고 밭도 정리한다. 오늘은 그래서 쌈야채를 따고 쑥갓은 모두 잘라 버리고 특황작물도 수확하고 마지막으로 감자를 캔다.

    일단 오자마자 쌈야채부터 챙긴다. 가끔 가족에게 쌈야채를 나눌 수 있는 나와 달리 친구는 자신에게 할당된 쌈채소를 처분하기 위해서 무료 나눔으로 당근까지 해야했다. 이제 솔직히 숙제로 느껴지기 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야채 소비량이 어마어마한 우리집에서는 금방 먹어치운다. 오늘은 밭에서 먹을 수 있는 쌈야채는 모두 우리집 독차지가 되었다. 혼자서 먹으려면 정말 부지런히 매 끼니 먹어야 하는 양인지라 친구들 도울 겸 엄마 칭찬도 받을 겸 쓸어 담았다. 다른 밭을 보면 정말로 생장 속도를 못 따라잡아서 상추가 작은 덤불처럼 대가 올라온다. 물론 우리 밭도 올라오기는 했다만 매주 열심히 뜯어먹은 탓인지 키가 작다. 덕분에 구충제도 챙겨 먹었다.

오늘도 무성한 쌈야채 여러분과 잡초들

    쑥갓은 저번에 수확하고 난 다음에 페스토를 만든 일기를 쓴다는 게 정신없이 바삐 지나가 버렸다. 일단 쑥갓으로 페스토를 만들긴 했다. 올리브유, 쑥갓, 치즈, 아몬드를 넣고 믹서기에 갈면 끝이다. 나의 요리 부심으로 인해서 레시피 없이 마음대로 닥치는 대로 냉장고를 털어 넣었는데 아주 간간하게 되어버렸다. 핑계를 대자면야 회식을 마친 밤에 페스토를 만들었던 것 같다. 적당히 알딸딸한 상태로 늦은 시간에 마트에서 아몬드를 사 와서 갈았다. 생각해 보니 이웃들이 늦은 시간에 굉음을 들었을 듯한데 이제야 깨달았다. 집집마다 조금 나눠 주던가 사과의 쪽지라도 붙여 둬야겠다. 우야든동 그날의 나는 난데없는 감성에 젖어서 믹서기가 위잉하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은 복잡하고 소음은 일정하니까 말이다. 친구가 집으로 맥주를 사들고 온다기에 비스킷 같은 과자에 발라 먹었다. 앉은자리에서 그 친구는 자신이 쑥갓을 두단 정도 먹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곧 밭갈이할 때가 되어 그런지 자꾸 이랬으면 저랬으면 하게 되는데 쌈야채는 일단은 잘 심은 것 같다. 하지만 생각보다 잘 자라기 때문에 조금 덜 심거나 종류를 다양하게 했어야지 싶다. 밭일 같이 하는 친구가 로메인은 또 다른 것이라며 밭갈이 지나서 심자고 한다. 정말이지 쌈야채와 잡초는 먹느냐 안 먹느냐의 차이뿐이다. 로메인 과연 괜찮을지? 쑥갓도 밭에 꽃이 피고 매주 신기하게 똑같이 그만치 자라 있었다. 쑥갓을 먹어본 경험이 없다면 누가 봐도 그것은 잡초다. 향 나는 잡초! 이번 주는 내가 감당할 쌈야채가 무척 많아 뜯어 오지는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쑥갓은 더 이상 주재료가 될 레시피를 찾지 못해 모두 베어 냈다. 바질도 잎이 싱싱해서 특황작물 전담하다 시피 하는 친구가 수확했다. 물론 나는 감자에 정신이 팔려 신경 못 썼지만 그 친구가 잘 먹어치우겠거니.

사진에는 씨알 좋은 감자만 있지만 작은 감자가 훨씬 많았다. 더 솎았어야 되려나 싶다.
감자를 수확하고 모아 보니 심었던 양의 3배 정도로 불어난 듯하다

    밭에 올 때마다 정성 들여 다시 만들어준 고랑에서 감자를 뽑아냈다. 지난주에 잎이 말려 있어서 걱정이기도 해고 감자꽃이 핀 줄기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불안했다. 줄기 바로 아래에 크게 매달린 감자도 있었지만 가장자리로 밀려나서 자란 녀석들도 있었다. 모든 감자가 마트에서 보는 것처럼 크게 영글지는 않았는데 작은 감자는 또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노지에서 키웠던 작물들 모두 향이 강했는데 밭에서 키운 감자는 또 맛이 어떨지. 캐내는 내도록 아주 큰 지렁이도 있고 나름 공부한 답시고 봤던 블로그에 나오는 익충 해충 모두 만났다. 멍들어서 짓무른 감자 주변에는 이미 개미들이 모여 분주히 뜯어가는 중이었다. 민망하게 새삼스럽지만 정말로 흙에서 이 곤충 저 곤충이 다 이 감자를 노리기도 하고 키워주기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한 일이라고는 제 때 와서 흙을 올려 주고 순을 솎아주고 하는 정도였는데 햇빛만으로도 양분을 모아 맺었다는 게 새삼 대단히 여겨진다. 친구 말로는 자리가 조금 더 위쪽이었다면 볕이 잘 들어 더 실하게 영글지 않았을까 했다. 좋았어, 다음 집중 작물은 아랫목으로 모시도록 하자.

수확도 마치고 얼기설기 쟁기로 긁어둔 밭. 쟁기로 내리치면서도 아직 남아있는 감자가 많았다.

     우리 밭은 감자랑 쑥갓까지 걷어내고 나니 꽤 휑해졌다. 사진에 보이다시피 아직 다른 밭은 한창이긴 하다. 시간이 생겼으니 친구들과 밭갈이를 마치고 심을 작물의 모종을 만들면서 이번 달을 보내기로 했다. 상반기를 마치는 때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괜히 싱숭생숭하기도 했다. 밭에 처음 왔던 날을 생각했을 때는 감자가 얼마나 나겠어에서 시작해서 열무김치 담그고 쑥갓 페스토도 만들고 매주 쌈야채를 먹느라 허덕였는데 이제는 감자를 어찌할지 고민한다. 일주일에 호흡이 생기는 것도 친구들과 수다 떨 이야기가 있는 것도 좋다. 어릴 때는 어른들 모이면 주식, 부동산 이야기하는 게 그렇게 지루할 수가 없었는데 내가 그 나이 즈음의 어른이 되었다. 그 이야기해서 좋을 때도 있지만 매일 자극적인 이야기에 질릴 때도 있는데 텃밭이라니 즐거운 스몰토크 화제이지 않은지? 그래서인지 어딜 가나 텃밭 이야기로 시작하곤 한다. 한 달 동안은 베란다에서 모종 만드는 이야기를 쓰겠지만 밭을 퍽퍽 내리치면서 느끼는 흙냄새라도 맡으러 와야지 싶다. 

    어차피 이 밭이 내 땅이 아닌 것은 알지만 밭갈이 이후가 기대되는 게 이제는 정이 붙어서인가 보다. 처음 왔을 때 곱게 정돈되어 있는 줄도 모르고 씨만 부렸었는데 이제 그 정돈된 상태를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직접 돌도 골라내고 피도 뽑아서 다음 작물을 잘 심을 생각을 하려니 손 떼라도 탄 기분이다. 늘 새것을 쓰는 것보다 어설퍼도 내가 수선해서 마음도 주고 시간도 주듯이 원흥역 근처에 이 밭에는 그런 흔적이 남아있는 기분이 든다. 으이구 이렇게 꽃, 산, 밭 사진 프로필 사진으로 하는 중년이 된다.

고수 꽃을 꺾어서 친구가 만들어준 어설픈 꽃다발

    밭일을 함께 하던 특황작물 친구 말이다. 그 친구는 곧 멀리 떠난다. 참 그 친구도 그 친구인 게 언제 이런 꽃다발을 또 만들어 줬담. 왠지 친구의 한결같은 구석을 보면 그게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징글징글할 때도 있는데 오늘은 전자였다.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면서 삶을 가꿀 때 맘처럼 안되어서 욕이 좀 나와도 화분 하나 사놓는 여유가 이 친구에게 꼭 머물렀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 친구는 어차피 내 블로그를 열심히 본다고 하니 그 친구를 위한 선물처럼 적어 본다.

    다음 작황은 아마 김장을 목표로 하지 싶은데 또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할 예정이다. 게 중에 꽤나 식물 덕후인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어떻게 이리저리 알려 줄지 기대된다. 다음 포스트는 아마 내가 감자를 어떻게 먹을지에 대한 내용일 텐데 나도 기대된다. 모종도 좀 찾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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