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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점휴업 May 29. 2021

#6 쑥갓이 주인공인 요리는 없다

:1시간 거리에 주말 농장이 생겼다

밭에 가는 날에 날이 흐리면 운이 좋다. 땡볕에서 일을 하는 것보다야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과 함께 밭으로 나섰다. 쌈채소가 일주일에 한 번씩 수확하러 가면 어림잡아 15인분 정도 나오는 듯하다. 정말이지 다음에 밭을 한다면 어느 정도 감당 가능한 양을 심어야겠다는 생각을 매주 한다. 밭을 함께 시작한 친구들은 혼자 살거나 함께 사는 1명 정도가 있어서 아무리 열심히 먹어도 쌈야채의 성장 속도를 따라 잡기가 어렵다. 본가 식구들이 밭에서 가까이 사는 덕에 함께 가서 수확을 해 우리 농산물을 먹어 밭을 살리는 일을 돕는다. 가족 모두 꽤나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인데 엄마가 밭에 야채 뜯어다 줄까? 하는 말에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시지 않는 걸 보면 정말로 맛이 좋은 게 분명하다. 오늘도 부끄러워서 하셨지만 3명이 2끼는 충분히 먹을 양을 뜯어 가셨다. 이 밭을 가꾸는 일이 나와 내 친구들에게도 즐거운 일이지만 엄마와 아빠도 작게라도 집에 베란다 텃밭이라도 해볼까 하시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된다. 한번 먹으면 마트에서 파는 쌈야채는 어유~ 연해서 뭐 먹는 기분이 안나~ 하신달까나.

오늘도 무성히 자라 있는 쌈채소

친구들이 도착해서 가족들과 머쓱하게 인사를 나누고 돌아간 뒤부터 밭일을 시작한다. 몇 번 왔다고 이제는 대충 일을 나눠서 하게 되었다. 일단은 잡초를 뽑아주고 특황작물은 나누어서 심어 주거나 상태를 살핀다. 쌈야채도 수확하고 오늘은 감자를 솎아 주었다. 그리고 쑥갓 수확을 하는 날인지라 그것도 빼먹지 않았다.

오늘의 주인공 쑥갓이다

쑥갓 수확은 친구 한 명이 도맡아 했다. 쑥갓 수확은 어찌할지가 고민이었는데 20센티에서 30센티 정도 자랐을 때 대가 더 억세지기 전에 수확을 해서 먹는 게 맛이 좋다고 한다. 어차피 우리는 7월 초순에 가을걷이를 신청해둔 탓에 가을걷이 전까지 심어둘 작물은 정하지 않아 모두 뽑아 버리지는 않고 잘라서 수확하기로 했다. 말인즉 다다음주에는 이 사진과 똑같은 사진을 또 찍을 수 있다는 뜻이다. 분명 좋은 일인데 매번 밭에 나는 식물로 식단을 꾸리려니 골몰히 생각해 본다. 쑥갓은 도대체가 어찌 먹을지가 고민이다. 쑥갓은 주인공인 일이 없다며 군소리를 했는데 우리도 그렇지 않냐고 웃어 넘겼다. 쑥갓도 아마 파는 양으로 치자면 인당 2단씩은 챙겨간 듯하다. 이번 주는 내도록 집에서 요리를 할 수가 없는 사정이라 잘 씻어 냉장고에 잠시 보관해 두려고 한다. 물론 그러면 꽤나 시들듯 해서 쑥갓으로 페스토를 할 요량이다. 김치 게임이라고 아는지? 야채 이름 + 김치를 검색해서 검색 결과를 없는 야채를 말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말인즉 한국인은 초록색 풀만 보면 김치로 담가 버리는 무서운 습성이 있다. 열무김치는 지지난주에 지겹도록 담갔기 때문에 이번은 서양인 김치 격이 아닌가 싶은 페스토에 도전할 것이다. 얼추 서양인은 초록색이면 페스토로 만들어 버리지 않나 싶기도 하다. 쑥갓은 신기하게 따자마자는 향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음식점에서 먹는 쑥갓은 꽤나 웃자란 녀석들인지 대가 단단했는데 우리가 수확한 녀석들은 조금은 유들유들했다. 친구가 입에 넣어줘서 한입을 먹었는데 쑥갓 향이 진하게 퍼졌다. 쑥갓 페스토는 꽤 재밌을 듯해서 요리를 할 때 따로 일기로 기록해야겠다.

솎아준 감자. 미용실 다녀온 양 정갈해 보이다니 단단히 미쳤다 나도.

서론이 길었다. 감자 이야기를 하겠다. 역시 감자에 꽂힌 사람에게 본론은 따로 있다. 비닐 멀칭을 하지 않은 탓에 우리 감자는 잡초도 많이 나고 실제로 뽑아줘야 한다. 그리고 왜인지 역시 나의 과한 애정 탓이겠지만 올 때마다 고랑이 눈에 선명하도록 정리해주고 두둑도 올려주고 그 과정에서 전체적으로 밭을 또 갈아엎어준다. 지렁이를 사서 풀려던 계획인데 이 정도면 내가 지렁이가 하는 일의 조금은 해주는 듯하다. 이제 감자를 뒤적이면 벌레가 꽤 보인다. 해충인지 아닌지 보려고 사진을 찍어 두었는데 하나하나 살펴 보고 있다. 개미도 무척 많아서 이 밑에는 또 어떤 세상이 있을라나 몰라서 아쉽다. 감자를 처음 심었을 때를 생각하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자랐지 싶고 기특하기 그지없다. 

감자가 정말로 열리고 있다보다 두근두근

내 성격이지만 시킨 것은 그대로 한다. 2대에서 3대 정도 남기고 솎아줘야 씨알이 굵게 난다는 말을 듣고 정말로 그대로 비실비실한 녀석은 솎아 내었다. 몇 번은 대충 뽑고 있었는데 옆 밭의 어린이가 하는 말을 듣고 열심히 뿌리까지 뽑았다. 그 친구가 하는 말인 즉 잡초를 뽑을 때에 뿌리까지 뽑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또 난다면서 본인의 아빠에게 핀잔을 하는데 내가 뜨끔한 것이다. 그래서 감자도 솎을 거라면 야무지게 뿌리를 살려 뽑아야지 해서 힘주어 뽑기 시작했다. 게 중에는 사진처럼 감자가 맺혀 있는 순이 있었다. 놀랍게도 정말로 감자가 열리나 보다. 그리고 뿌리도 자세히 살펴보면 신기한 것이 나는 분명히 숯가루 묻힌 감자 반 알을 심었는데 어느새 뿌리가 저렇게 자랐는지. 오늘따라 유달리 팔불출과 같이 말하는데 밭에 한번 가보시면 이해를 할 것이다. 저렇게 뽑은 버릴 순을 버려두었는데 다른 밭에 오신 분이 '어머나 감자다' 하셨다. '가지실래요' 했더니 그것을 가져가서 밭에 심으신 듯하다. 그 뒤로 그분이 오가시면서 우리 밭의 잡초를 말없이 뽑아 주셨는데 신기했다. 팬데믹 이후로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는 일도 친절을 주고받는 일도 나 같은 외향인은 꽤 그리웠는데 오늘도 조금의 온기를 채집해 돌아왔다.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비 오는 중인 밭. 뒤로 우비 입고 일 하는 분들도 계시다.

나의 학창 시절 기억 중에는 농활이 있다. 어른들이 주시는 막걸리는 꽤나 많이 먹고도 그다음 날에는 (아마 지금 생각 해보니 도움이라고는 일절 되지 않았겠다만) 밭일을 했다. 여름이라 비가 갑작스럽게 오는 날이 있었는데 공기에 온습함이 몸에 켜켜이 쌓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까지는 아니라 한들 밭에서 일하다가 비를 맞으니까 기분이 좋았다. 친구들과 추억을 까먹으면서 수다를 떨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믹스커피라도 한잔 마실 것을 깜빡했다. 비가 긋기를 기다리는 건 왠지 나에게는 낭만적인 느낌이 든다. 사실 나는 비가 언제 그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편의점에 가서 비닐우산을 산다거나 아니면 비를 맞고도 발걸음을 재촉하는 일이 잦다. 비를 피하면서 긋기를 기다리는 건 왠지 얼추 이 비가 멈출 것이라는 걸 예감한다는 거니까. 그리고 설령 금방이 아니더라도 기다릴 수 있다는 의미니까 나에겐 왠지 여유로움과 같이도 느껴진다. 다른 분들이 작업하는 걸 구경하며 잠시 기다렸다. 

애플민트랑 쑥갓을 같이 챙겨 왔다. 뒤로 보이는 쌈야채 봉지에는 역시나 이번 주 내내 먹을 분량이 들었다

이제는 무얼 해야 하는지 조금은 더 알아서인지 친구들과 크게 헤매는 법이 없이 금방 일을 하고 돌아왔다. 밥을 먹고 집에 오니 또 산떠미처럼 씻을 야채가 쌓여있다. 예전에 SNS에서 누군가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야간 시간에 식당에서 설거지만 하는 일을 구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뒤로 나도 잠깐 아는 곳에서 그런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릇이 뽀득뽀득해지면 물론 손목이야 아프지만 마음을 씻는 기분도 들었던 것 같다. 이제 밭에 다녀오는 그러니까 일주일에 한 번은 라디오를 켜고 집에서 야채를 씻는 시간이 그런 시간이 된 것 같다. 머릿속이 아니라 손끝에 집중하는 그 감각이 좋다. 오늘은 날이 흐려 그런가 어쩐지 차분하게 마무리.

아차 그리고 지난번에 담갔던 열무김치 말이다. 아주 대단히도 맛이 없다. 놀라울 것도 없는 것이 열무는 억세고 아무래도 열무 혼자서 깊은 맛을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보다. 하지만 내 인생 처음으로 담군 김치라니 괜히 또 의미 부여하게 되어서 이래저래 먹어 보려고 하는 중이다. 팀장님에게도 한그릇 드렸는데 그저 웃기만 하시는 걸 보니 팀장님 입맛에도 안 맞는 것 같다. 그래도 내가 담근 김치인데 음식물 쓰레기 신세는 면하게 하기 위해서 시판 냉면에 올려 먹기 시작했는데 '그래 이거야!' 싶다. 역시 오늘도 피할 수 없는 MSG

열무김치를 소생시키기 위한 시판냉면 응급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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