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거리에 주말 농장이 생겼다
아무래도 이번 주가 선선하게 일할 수 있는 마지막일 것이다. 며칠 비가 내리더니 미세먼지 없이 햇빛이 쨍하다. 4월 10일에 파종을 처음 했으니 이제 6주가 다 되어간다. 3주 전부터 쌈채소 뜯어먹는 재미가 들린 우리는 이번에는 쌈채소 담아 올 용기를 바리바리 들고 왔다. 집에서 챙겨 올 때는 너무 큰 용기를 고른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지만 항상 밭에 도착하면 언제나 그 용기는 작다. 그래 역시 사람이 용기는 언제나 크게(?) 가져야 하나보다. 비가 왔으니 꽤 자랐겠거니 했지 이렇게까지 무성하게 자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 밭만 무성한 게 아니라 다른 밭도 온통 야단이었다. 다들 한아름씩 수확을 시작하는 중이었고 지하철에서도 양손 가득 쌈야채 안고 가느라 고생하시는 분을 뵈었다. 지난주에 텃밭에서 6월에 잡초 뽑느라 허리 아팠다던 다른 분의 푸념을 귀동냥해 들은 뒤로 각오는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올여름은 그 이상일 듯하다. 오늘의 주말 농장 일기에는 사진이 많다. 기록을 하지 않으면 아쉬울 듯해서 밭에 갈 때마다 사진을 열심히 찍어서 딱 3주 전의 사진을 보았는데 새삼 땅과 씨앗의 힘이 놀랍다. 친구의 말로는 아무래도 밭에 최고의 비료가 우리의 불신이라고 한다. '노지에서 키우는데 그리고 친환경인데 얼마나 나겠어'라는 말을 듣고 채소가 모두 화나서 본 때를 보여주겠다고 이렇게 자라는 게 아니냐고 했다. 다음부터는 밭에서 씨앗 험담을 더 하기로 한다. 나는 감자 싹에 대고 '나는 고구마가 더 좋더라' 할 요량이다. 나의 감자에 대한 주체 못 할 애정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감자가 아니다. 오늘은 열무를 수확하는 날이었다. 평일에 잠시 다녀온 친구들이 오늘은 수확을 해야 먹을 수 있겠다고 말해 주어서 다들 부리나케 밭으로 달려왔기 때문이다.
새삼스럽게 찾아보니 열무는 봄과 가을에 싱싱하게 수확해서 김치로 담그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우리가 심은 것과 같이 상추, 쑥갓과 함께 심는다. 그래서 서울시에 씨를 줄 때에 이렇게 조합을 해서 주었구나 싶었다. 파종 3주 후부터 솎음 수확이 가능하고 겉절이나 데쳐 먹는다고 한다. 6주나 7주 즈음부터 김치를 담그거나 시래기를 만든다고 하니 찾아보지 않았는데 마땅히 해야 하는 대로 수확을 하고 식용 방법도 얼추 맞아서 신기하다. 열무 시래기를 담그면 좋았겠다만 우리는 모두 김치로 담가 버리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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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 수확은 생각보다 쉬웠다. 다행히 잡초가 자라기 전에 재빨리 뽑아 먹기로 했기 때문에 고민 없이 뿌리까지 쑥쑥 뽑으면 되는 일이다. 사진에서도 아삭아삭 하는 소리가 나는 듯한데 (아님) 무척 싱싱했다. 미취학 아동의 편식을 교정하는 방법으로 자신이 먹을 작물을 직접 재배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던데 무척 공감되었다. 클로버 모양이었던 잎이 언제 자라서 이렇게 내가 아는 그 열무가 되었나 싶었다. 야무지게 모두 먹어 버려야지.
난관은 뽑은 열무를 다듬어서 집으로 가져가는 단계이다. 흙에서 당장 뽑아서 집으로 가져가게 되면 밀레니얼인 우리는 아직은 큰 집에 살 여력이 없는지라 작은 자취방 화장실에 흙 난리가 나게 된다. 잠깐이라도 쭈그리고 앉아 흙을 털어내고 가능하다면 다듬어서 집에 가져가야 무어라도 할 수 있다. 나와 다른 친구가 열심히 고랑을 정리하고 잡초를 뽑는 동안 다른 친구 둘이 열무를 다듬느라 고생했다. 뙤얕볕에 얼마나 고생했으면 열심히 뿌리를 다듬어 놓고 흙을 털더니 그 부분을 잘라 버리는 것이었다. 공정 순서가 바뀐 듯한데 여름 밭일에 고장 난 게 분명하다.
사진에 찍힌 대야에 담긴 양은 전체 열무의 반 정도 된다. 우리는 텃밭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받은 키트에 있었던 열무 씨앗을 정직하게 다 뿌렸다. 솔직히 생각해 보면 안일하게 얼마나 나겠나 하는 마음에 되는대로 흩뿌렸다. 점점 자라면서 솎으면 나중에 먹을 게 없을까 싶기도 했고 어느 정도 솎아야 하는지 몰라서 많이 거둔 셈인데 아주 많이 거두게 되었다. 친구의 말처럼 아무래도 구충제를 다 같이 먹어야지 싶다. 김치로 담아도 너무 많을 듯해서 주변에 나눔을 할까 했는데 구충제도 함께 나눠야 할 판이다. 한번 헹구어 가져온 열무를 이제 조금 더 꼼꼼히 씻어준다. 열무를 너무 만져 버리면 풋내가 난다고 해서 머리를 감겨주는 것처럼 조심조심 샤워기로 씻었다. 씻는 데만도 대충 1시간은 걸린 듯하다. 다시는 땅과 씨앗을 무시하지 말자. 생각보다 대단하다.
열무김치를 어떻게 담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김치는 역시 소금에 푹 절여 먹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얼추 소금으로 뒤적대면 된다는 레시피도 있었다. 산 같이 쌓여있는 열무를 친구네 집에 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라 간편한 열무김치 레시피를 후딱 검색했다. 우리가 김치를 직접 담가본 적이 있을 리가 없다. 김치를 반찬으로 딱히 챙겨 먹는 편도 아니거니와 그렇다고 한들 사 먹을 일이지 김치를 담가 먹다니. 이 와중에 하필이면 적당한 멸치 액젓을 넣어서 넉넉하게 고춧가루와 생강가루를 넣으라는 마치 요리의 고수인 할머니가 알려 주실 법한 레시피를 참고했는지라 대충 만들기 시작했다.
집 밖에서 먹는 열무김치는 조금 더 새콤달콤 했던 것 같은데 어째 우리가 담근 열무김치는 정직하게 '네, 제가 열무입니다만?' 하는 맛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사이다와 굵은 고춧가루를 좀 더 뿌리고 베란다에 내놔두었다. 내일은 동치미 국물에 열무김치 올려서 소면을 빠뜨린 국수를 먹을 거다. 무척 신난다. 이게 아니라면 열무 비빔밥을 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집에 와서는 전생의 업보와 같이 느껴지는 산 같은 쌈야채를 세척했다. 구충제를 먹기야 하겠다마는 깨끗하게 세척을 어찌하는고 하니 식초를 풀어 물에 잠시 담가 두거나 베이킹 소다로 그리 하면 된다고 한다. 마침 집에 식초가 있어서 넣어 두었더니 색이 더 살아난 것 같다. 세척을 마치고 난 뒤에 모두 겉절이로 무쳐 버렸다. 한 짐이었던 쌈야채의 양이 갑자기 줄어들었다. 허망하다. 아쉽긴 하지만 쌈으로 먹으려면 아마 2주 내도록 풀만 먹었어야 했을 것이다.
사실 우리 밭에는 애플민트, 바질과 같은 특황작물 그리고 층꽃, 구절초와 같은 꽃도 있다. 원체 내가 기본적으로 감자 타령만 해서 이야기할 겨를이 없었지만 애플민트도 푸릇하게 잘 자라서 따왔다. 친구가 얼음곽에 담아서 레몬 즙을 뿌려 얼려 주었다. 사이다에 빠뜨려 먹어도 위스키에 넣고 휘저어 먹어도 꽤나 근사한 맛이 났다. 재미로 따지자면 특황작물이 더 좋다는 생각을 자꾸 한다. 다음 텃밭이 있다면 작게 작게 다양하게도 심어 봐야겠다.
안 하려고 했지만 감자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어서 결국에는 감자 이야기를 하고 넘어간다. 감자는 이제 싹이 꽤 자라났고 다음 주 즈음에는 싹을 솎아 주려고 한다. 오늘은 잡초를 제거하고 고랑을 더 파주었다. 예전에 2년 동안 애정을 주어 길렀던 화분이 아주 추운 겨울에 과습으로 모두 죽은 뒤로 나는 왠지 과습이 무섭다. 그래서 고랑을 열심히 파서 두둑을 올려 주면 싹 주변에 물이 고이는 걸 막을 수 있을까 해서 열심히 호미질을 했다. 월 초에는 밭갈이가 예정되어 있는데 감자는 파종으로부터 90일에서 130일 정도가 지나야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부디 밭갈이 전에는 자라야 할 텐데 어서 감자 앞에서 험담을 해야겠다.
마지막으로는 다음 주에 수확할 쑥갓이다. 쑥갓은 무얼로 해 먹어야 할까? 원재료에 맞춰서 해 먹을 음식을 고민하는 재미도 있는데 쑥갓은 도통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