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거리에 주말 농장이 생겼다
미세먼지가 어마어마한 주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주에 밭에 가는 게 기대되는 이유가 있었다. 일단 반짝반짝한 밭 일용 장화를 구매했으니 장비 덕을 좀 보려나 싶은 마음이랑 지난주에 친구들이 밭에서 한아름을 따서 채소 먹다 지쳤다는 말에 나도 꽤나 따오겠구나 싶은 탓이었다. 가족들이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어서 이번 주에는 밭 소개 겸 함께 갔다. 괜히 부모님에게 소개하자니 부끄러운 마음이 들다가도 '뭐야 이거 꽤나 진지하네?' 하며 신기해하시는 반응이 재밌었다. 게다가 이번 주에 비가 왔었던 덕에 다들 꽤 푸릇푸릇하게 자란지라 어깨가 으쓱했다. 솎는 겸 사실은 오늘 밥상에 올릴 먹을거리 챙길 겸 뜯어서 가족들은 먼저 집에 돌아갔다. 아무래도 엄마는 내심 벌레 먹은 열무는 안 뜯어가시는 것 같은 눈치였다. 안 되겠다. 집에 갈 때 내가 뜯어가지. 역시 야매 농부의 마음으로 보면 일단 다 입에 넣을 수 있는 풀이다. 심지어 웃거름까지 뿌려주어 잎이 아주 반질반질했다.
장화까지 신고 준비를 다했으니 오늘의 할 일을 생각해 보자. 일단 쌈 채소류 친구들은 솎아주고 고랑 정리해줄 녀석들이 있다면 다듬어 준다. 그리고 반갑게도 감자 싹이 이제 제법 커지려는 찰나라서 감자도 고랑을 정리해서 두둑을 올려 줘야겠다. 그리고 조금 이따가 온 다른 친구는 병충해를 막기 위해 심었던 메리골드가 시들어서 그것을 정리하고 바질이 한 씨앗에서 여러 싹이 나자 나눠 심었다. 층꽃과 리아트리스 그리고 이름 기억 안나는 꽃을 하나 더 심었는데 개화를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아쉬운 점이 나는 결과물이 안 나는 작업에는 도통 손과 마음이 가지 않는 사람이라 감자 같이 확실한 결과물이 예상되는 작물을 선호했다. 그리고 신도시 키드답게 노지에 대한 강한 불신이 있어서 '100개 심으면 1개 나겠지'라는 마음으로 감자를 꽤나 큰 면적에 심어버렸다. 예상하건대 올해 우리는 감자로만 구성된 메뉴를 먹는 시간을 보내야 할 듯하다. 감자 옹심이, 감자 샐러드, 감자전, 감자조림, 감자칩과 튀김 등 적고 보니 또 신나네?
어차피 15평에 심는 것이라면 꽃도 많이 심고 요기조기 친구 말처럼 특화작물을 심을 걸 그랬다. 친구가 크로스 브리딩, 그러니까 어떤 작물 심을 때 같이 심으면 상성 좋은 그런 재배 방법이려나, 이야기도 했었는데 밭에 가는 다른 친구들이 어째 요 친구의 말을 참 귓등으로도 안 들어 버려서 하하.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브런치 포스팅 오늘은 올라오지 않느냐고 글의 안부까지 물어 주었으니 오늘은 특별히 이 친구의 이야기를 기록해둔다. 오늘 밭에 온 친구들은 나를 빼고는 이미 학교를 다닐 때에 텃밭을 했었다고 해서 오늘도 친구들에게 업혀 간다. 시키는 일 열심히 하는 역할로다가.
그래, 오늘은 어째 감자 이야기가 너무 적었으므로 감자 이야기에 돌아오자면 감자가 싹이 꽤 났다! 싹이 나지 않은 감자가 얼마 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정말로 어마어마하게 감자가 많이 날 것 같다. 감자 반알에 싹은 2개씩만 남기라고 오늘도 밭을 지나던 다른 분이 조언을 해주셨다. 기억해두었다가 다음 주 즈음에 솎아 주려고 한다. 두 번째 글에서도 했던 이야기였는데 감자는 결과적으로는 두둑에 심는 것이 맞았다. 첫날과 같이 호미를 쥐고 한 시간 정도 고랑을 다시 만들어 주었다. 잡초가 나는 속도가 빨라진 게 점차로 느껴진다. 뒤쪽의 다른 밭에 계신 분들이 흘리는 이야기로는 6월에 허리 아파 죽는 줄 알았다 하셨다. 그렇다 이제 잡초의 계절이 다가오는 것이다. 기후변화 탓이겠지만 비 소식이 잦고 생각보다 날이 추워 시들어버린 모종도 꽤 있었으므로 올해 여름은 또 어떨지는 두고 볼 일이다.
시금치 싹을 사진을 찍어두지 못해서 아쉬운데 잡초인 줄 알고 뽑은 게 사실 며칠 지나면 시금치 잎이 되는 어린잎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열무도 처음에는 클로버처럼 나다가 우리가 아는 열무의 모양이 된다. 처음에 작물 심은 곳에 씨 봉투를 접어 꽂아 놓지 않으면 뭐가 뭔지도 헷갈린다. 뽑아 보면 꽤나 뿌리도 영글어서 열무가 맞긴 맞네 싶다. 5년 전 즈음에 영국 TV 방송에서 아이들이 감자를 많이 먹지만 직접 본 적이 없어서 감자를 보고 못 알아보았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라고 얼마나 다른가 싶다. 그리고 같잖은 감상이지만 나도 어린싹 단계는 끝나고 이제 모양이 바뀌나 왜 이리 마음이 소란한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아차 그리고 장화는 필수품이다. 장화를 신으니 걸을 때 팍팍 걸어도 되고 일을 마치고 세척하기도 무척 편했다.
집에 또 한아름 야채를 챙겨 갔더니 아빠가 은근히 반기시는 눈치이다. 엄마 말로는 마트에서 파는 야채는 많이 빠르게 팔아야 해서 수경 재배를 하기도 하는데 역시 노지에서 자란 녀석들은 다르다 하셨다. 아니나 다를까 상추를 처음 만졌는데 두껍다는 표현이 맞으려나 꽤 무게감이 느껴졌다. 상추를 누가 쌈을 거드는 역할이라 했는지 입에 넣어서 씹는데 싸 먹은 음식에 밀리지 않는 쫀득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내가 재배했으니 다 먹어야지라는 생각을 이래서 하는구나 싶었다. 아빠도 은근히 밭에 가고 싶어 하시는 듯한데 사실 아빠도 평생을 밭일하신 적이 없어서 우리와 같은 고사리 손이다. 집에서 밭이 가까우니 친구들과 내가 모두 가기 어려운 여름날이 있다면 소작을 주겠다 농담하니 흥하고는 자리를 떠나셨다. 하지만 난 알고 있지. 아빠는 가시게 될 것이다.
요새의 나는 그 언제보다 정직함과 올곧음에 대한 선망이 있는 듯하다. 그게 꼭 답은 아닐 수도 있지만 그게 답인 날도 있었으면 좋겠다. 주말마다 매주 어딘가에 간다는 결정이 꽤 부담스러웠는데 친구들과 함께해서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가족들도 함께 좋아해 주어서 좋다. 마음이 생각으로도 감정으로도 가득 차서 여유공간이 없는데 흙 만지고 돌아오는 날에는 빈틈이 조금 생기는 듯해서 좋다.
아차차 오늘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친구가 간간히 촬영한 영상이 드디어 올라왔다. 오토바이를 타고 밭에 오는 친구가 소싯적 편집 실력을 발휘해서 영상을 만들었다. 오토바이도 고양이도 나오니까 일석삼조다.
https://www.youtube.com/watch?v=nbmiOcqPli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