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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점휴업 Apr 29. 2021

#3 어느 게 잡초고 어느 게 감자야?

:1시간 거리에 주말 농장이 생겼다

지난 주는 내도록 비 소식이 있었다. 비 오는 날은 움직이기가 영 귀찮다. 그럼에도 요새는 비 소식을 들으면 적당히는 내려줬으면 하게 되는 것이 밭 덕분인 듯하다. 이번 주는 농장을 같이 시작한 친구들이 모두 바빠서 다른 친구와 함께 길을 나섰다. 그래도 두번째 간다고 이것저것 챙겼다. 선크림, 얼린 물과 모자도 챙겼다. 친구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에 친구의 아버지가 하시는 텃밭에 감자 싹이 난 사진을 보았다. 비닐 멀칭도 했고 밭이 꽤 커보여서 거기서 자라는 감자는 씨알도 굵을 것 같았다. 역시 이런 저런 걸 해주어야 싹이 나는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가는 길 내내 심은 상추, 시금치, 열무, 루꼴라 그리고 감자 중에 비에 쓸려 내려가지 않고 싹이 난게 몇 개나 있을까 싶었다. 애당초에 대단한 대농이라도 되는양 갖가지를 키우고 싶어했지만 사실 나는 내가 열심히 하지 않고서 어떤 결실이 맺는다는 걸 믿지 않게 된 듯하다. 내가 이 텃밭에서 뭔가를 얻으려면 지금처럼 주에 한번씩 가서는 어림도 없다 생각했달까.

씨를 뿌리고 그 봉지를 옆에 꽂아 놓는 것은 진짜로 뭘 심었는지 기억이 안 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심은 모든 식물이 족족 무성하게 자랐다. 이 계절만 지내면 잡초 뽑느라 정신이 없겠다 싶을 정도로 말이다. 씨를 한 과립씩 정성스럽게 뿌리기 보다는 와르르 모아 뿌리는 것이 비단 1개 과립의 생존확률이 낮어서 뿐만 아니라 모아 뿌리면 그 생장활동으로 인한 열이 발생하고 벌레를 또 막아 준다고 한다. 알면 알 수록 신기한 이야기가 많다. 우야든동 밭의 흙이 푸석푸석하게 말라 있었고 분명히 저번에는 소가 되었다는 마음으로 돌을 골라 냈는데 밭에 돌이 많에 느껴져서 다시 골라 주었다. 구태여 호스로 물을 뿌려도 될 것을 물뿌리개로 꼼꼼히 흙냄새가 나는 짙은 갈색이 되도록 물을 줬다. 열무는 길가에 자라는 토끼풀 마냥 잘 자라서 한웅큼씩 솎았더니 그러다가 다 뽑아 버리겠다며 친구가 말렸다. 알다시피 나는 감자에 꽤나 집착하는 중이기 때문에 감자의 상태를 확인하고서는 조금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감자는 심고 난 뒤 3주가 지나야 싹이 난다고 한다. 이제 2주가 흘러서인지 아직 싹이라고 하기에는 작게 고개만 들었다. 친구가 어디에 싹이 난거냐고 의아해했지만 역시 감자 사랑꾼의 눈으로 보면 감자가 보이는데 그 마음이 과해서 잡초 몇개도 감자로 오해한 듯하다. 고랑을 깊게 파지 않은 것이 아쉬운 것이 다른 밭을 휘 둘러보니 다들 농장을 가꾸는 게임에 나오는 것마냥 촘촘하게 고랑을 깊게도 파서 왠지 저기 누워있는 씨앗은 스위트룸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심은 감자 중에 두둑이 넉넉찮아 표면으로 노출 되어 있었다. 이 것은 이번 주에 농장에 같이 가지 않은 친구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재빨리 다시 깊에 묻어주려고 했다. 

감자 사랑꾼의 마음으로 봐서가 아니라 이것은 정말로 감자 싹이다.
별게 다 이뻐보이는 것이 뿌리는 투명하고 튼튼해보이고 싹은 청경채 마냥 영롱해 보인다. 중증이다. 

뜬금 없는 감상이긴 하지만 마음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힘 주고 하지 않아도 믿고 맡기면 이렇게 되기도 하나 보다 싶었다. 물론 감자야 최선을 다했겠지만. 다음주에 오면 싹이 잘 자라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주만큼 등이 쑤시도록 열심히 무언가를 할 필요는 없었다. 아직은 잡초도 많지 않았고 솎는 일도 금방 끝났다. 다음 주에는 도시농업과에서 문자가 와서 웃거름을 나눠 줄것이라며 받아서 뿌려주고 흙을 덮으라고 했다. 텃밭을 하면서 좋은 것 또 하나가 일단 가서 대충 헤매면 누구라도 이래저래 도움을 준다는 점이다. 팬데믹 이후로 낯선 사람에게 말 걸 일은 참 없는데 밭에 쭈그려 앉아서 머리라도 벅벅 긁으며 난감해 하면 지나가던 옆 고랑에 계시던 분이 도와 주시고는 한다. 낯선 사람과 한 이랑만큼의 거리감이 안락하다.


텃밭 이야기가 할 말이 별로 없었던 주간이라 집에서 키우는 식물 이야기도 잠깐 한다. 지난 겨울에 매우 추워서 집의 하수구가 얼어 붙어서 물난리를 치룬 일이 있었다. 그날 내가 키우던 뱅갈고무나무, 박쥐란, 립살리스, 레몬나무도 모두 함께 죽었다. 전날 추울까봐 집 안으로 들여 놓는다는 것을 일이 바빠 깜빡한 탓이다. 게다가 미안하다는 생각으로 물이라도 챙겨 줘야지 하고 물을 준게 과습이 되었나 보다. 키우던 식물이 죽는 일이 사실 별 것 아니라고들 농담처럼 말하기도 하지만 그때는 괜한 감상으로 꽤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그래도 2년 여를 키우던 식물이라 더 마음이 아팠다. 그 뒤로는 식물은 조금더 채광과 환기가 좋은 집으로 옮기기 전까지는 키우지 말아야지 했다. 그러다가 텃밭 친구 중 하나가 수세미와 리아트리스 씨앗과 압축 상토도 같이 주었다. 수세미는 꽤 높고 크게 자라는 덩쿨 식물인데 집에서 감당이 될는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싹은 틔워보자는 마음이었고 리아트리스 씨앗은 길가다가 머리에 묻어나 목에 잘못 들어가 기침나게 하는 그런 가벼운 꽃씨였다. 받았으니 심어야지 하는 맘으로 흙과 돌을 챙겨와 다시 심어 주었다. 마침 어제 씨앗을 준 친구와 수세미 흠을 보았다. 어째 물도 주고 햇볓도 주었는데 감감 무소식이라 압축 상토에 싹을 틔워 넣지 않아 그런가 했다. 수세미가 제 흠 보는 일을 알았는지 오늘 아침에 들여다 보니 싹이 나올 준비를 다했다. 식물은 참 신기하다. 말 없이 푸르르고 떠날 때고 예고 없이 사라진다.


다음 주에는 웃거름을 주고 키가 쑥 자란 감자 싹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아니 그런데 싹이 그렇게 연약한데 비료를 어떻게 준다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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