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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점휴업 Apr 15. 2021

#2 죄송해요. 여기가 길인줄 알고ㅠ

:1시간 거리에 주말 농장이 생겼다

친구들과 농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우리 밭은 원흥역 근처의 밭이다. 나는 어쩌다보니 오늘은 1시간 40분 정도 걸리는데다가 아무것도 안 먹고 가서 내심 나는 오늘 죽었다 싶었다. 후딱 햄버거도 사서 농장에 도착했다. 원흥역 근처에는 젊은 사람들과 신혼부부가 많이 사는 동네 같았다. 여기서 몇개 역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자랐지만 서울살이 이후로는 온적이 없는 동네였는지라 휘둥그레 하게 되었다. 새것으로 보이는 단정한 다세대 건물이 많이 보였고 역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니 밭에 도착했다.


밭에는 이미 꽤 많은 사람이 있었다. 먼저 도착한 친구 두명은 텃밭 선생님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농장주 2명 + 텃밭 선생님의 조합으로 운영하는 듯 싶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밭 좀 갈아본 분들이 많은 눈치였다. 우왕좌왕하는 사람 없이 공용 농기구 위치도 잘 아는 분이 대부분이다. 선생님의 집중관리 대상을 아마도 우리 같다. 오기 전에 물은 어떻게 주지부터 온갖 고민을 다 했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모두 사업자원으로 정리가 되어있어서 우리는 심고 와서 풀 뽑기만 하면 된다. 생각보다 더 체계적이고 잘 되어 있어서 좋았다.


도시 촌뜨기인 나는 처음에 저 도랑 건너편의 밭을 와작와작 밟으면서 친구들에게 왔는데 쉬는 공간에 계셨던 농장주가 그곳이 길이 아니라고 호통을 치셨다. 오자마자 힝구되어 버렸다. 하지만 몇시간 뒤 똑같은 행동을 하는 다른 사람을 보고 'ㅂㄷㅂㄷ 거긴 내 감자가 있다구 ㅂㄷㅂㄷ' 하는 걸 보니 한번만 배우면 되는 것이었던 듯하다. 쉬는 공간에는 작은 비닐하우스처럼 그늘을 만들어 주셨고 다른 가족들은 식사할 거리를 챙겨와 먹는 듯하였다. 우리는 다음에 그늘막을 가져와서 뒤에 쳐둘까 하고 이야기 했다. 신발의 먼지를 떨어낼 공간도 따로 있고 장화를 씻을 수도 있다.


농장주의 센스였겠지만 커피포트랑 믹스커피는 정말로 대박 아닌지!

밀레니얼의 수강신청 광클 덕분이겠지만 우리 밭은 일련번호가 꽤 앞쪽이라 휴식 공간 바로 앞이다. 그래서인지 농장에서 말 얹기의 고수나 어째 어수룩한 녀석들을 보면 참을 길이 없는 사람에게 우리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많은 사람들이 감자 농법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텃밭 선생님도 상세히 설명해 주셨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글쎄, 우리는 또 이래라 저래라에 꽤나 예민한 사람들이 아닌가. 그래도 길 지나가던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도 오랜만이고 실제로 우리가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전 글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감자를 심기로 했기 때문에 지극히 감자 중심적으로 이야기 해보겠다. 일단 땅을 고르고 큰 돌을 모두 제거하고 난 다음에 고랑을 판다. 그리고 감자를 고랑에 심고 흙을 덮어주면 끝이다. 이것을 고랑에 심을지 아니면 두둑에 심을지에 대해서 우리의 선생님들 사이에 의견 충돌이 있었다. 도시 농법에 대해서 배울 때에는 두둑에 심는 것이 일반이라고 하고 연세 지긋한 분들은 고랑이라고 하셨다. 일단 우리 감자는 모두 고랑에 들어갔다. 무엇이 정답이건 우리 감자는 자라야할텐데. 이미 밭에 비료 작업을 모두 해주셨고 감자는 심는데에 세심함 보다는 완력이 필요해서 쭈그려 앉아서 마음껏 땅을 헤집었다. 쟁이를 써서 고른 뒤에 호미를 본격적으로 들고 팍팍 내리쳤다. 내리친게 뭉친 흙이었어야 하는데 그냥 내리치는게 마음이 풀려서 괜히 더 팍팍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이걸 예전에는 사람이 다 해서 농사를 지었다는거지?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땅을 파면 비료 냄새가 났고 먼지도 일어났다. 낯 뜨거운 표현이긴 하지만 살아있다는 생각이 간만에 들었다. 그간 기능한다는 생각을 했지 살아있다는 실감을 하기에는 너무 갇혀 지냈달까. 광합성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아 감자 말고 내가! 


그 사이 친구들은 상추, 열무, 시금치, 루꼴라 같은 쌈채소 작물을 심었다. 기억으로는 텃밭 선생님이 줄줄이 심는 것보다 디자인을 해서 다양한 구성으로 심는게 더 재밌다고 디자인을 해보라 하셨고 친구는 꽤 귀여운 부채꼴 모양으로 심었다. 그리고 메리골드라는 꽃을 군데 군데 심어두면 그 이랑에 해충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정신차려 보니 2시간 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허리가 꽤나 뻐근했다. 이랑 3개를 마음껏 헤집었다. 오늘 미처 오지 못한 친구들도 심을 수 있게 조금은 비워두었다. 사진에서 이랑의 아랫쪽에는 감자를 와르르 심고 귀엽게 보이는 초록색은 상추 모종이다. 곳곳에 다른 쌈채소를 심었고 메리골드는 다음에 심어야겠다.

농부의 마음으로 보면 싹이 보인다 안 보인다면 그것은 마음의 문제이다
왜인지 온몸이 막국수를 원해서 다같이 먹고 식곤증에 취해있었다

처음으로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온 다음 주말에 비 예보가 있었다. 씨가 쓸려 내려갈까 고민하게 되는 예보는 처음이었다. 다음 주에도 밭을 가볼 요량인데 그 때는 그야말로 한 농부하셨던 부모님과 함께 할 듯하여 기대 된다. 


큰 기대 없이 즐겁기 위해서 무엇을 하는 감각의 소중함을 다시 느낀다. 친구들과 꽤 자주 보는 편이고 그것이 나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이유야 무엇이든 한동안 못 봤던게 아쉬웠다. 친구들이랑 같은 고민을 하고 오롯이 그것에 집중해서 햇빛 맞으며 일할 수 있어서 좋았다. 보아하니 여름이 꽤나 고비가 될 듯하고 가을이 정말 좋은 시절일 듯한데 또 친구들이랑 잘 버텨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텃밭은 같이 하지 않는 친구들도 감자전을 이미 대접 받은 양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즐거웠다. 아차 그리고 잊지 않고 장화랑 텃밭 방석은 사야할 듯하다. 역시 신발에 흙먼지가 묻으면 귀찮기도 하고 텃밭 방석이 있어야 풀 뽑기에만 집중할 수 있을 듯해서 공구 하기로 했다. 좋은 물건이 있다면 또 글로 적어 보는 걸로. 과연 다음주에 밭에 가도 계속 행복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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