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거리에 주말 농장이 생겼다
나는 어릴적부터 서울시 근처의 신도시에서 자랐다. 서울 토박이보다야 초록색을 많이 보고 자랐을지언정 서울 가기 바쁜 탓인지 진짜로 도시 촌뜨기였던 것이다. 종종 귀농을 하거나 주말농장을 하시는 집도 있는데 우리집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밭일의 강렬한 기억은 대학교 다닐 때 농활이었다. 농활은 농사 지으러 간다기 보다야 농가 입장에서도 학생 입장에서도 각기 다른 목적이 있다 보니 뛰어난 비법을 전부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되려 막걸리를 그렇게 마시고도 다음날 일하기 위해서는 역시 정신력이라는 점 같은걸 배운 듯하다.
코로나 시대 외향인인 재택 근무자는 꽤나 사람이 고프다. 사람은 어차피 이냥저냥 산다는 것을 알면서도 온갖 피드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 이래저래 지내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싶다. 최대 효율로 목적지까지 질러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다 보니 꽤나 스스로에게 박한 나는 더욱 외로웠다. 길가다가 지나가는 사람들 아니면 물건을 사기 위해 마주치는 사람에게 하는 말 한마디가 귀했다. 그러다가 언젠가 구독 해두었던 서울시청 뉴스레터에서 도시농부 모집이라는 내용을 보았다. 실로 운이라고 볼 수 있겠다. 뉴스레터 구독하고도 모두 샅샅이 읽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까 싶기도 한데다 심지어 서울시청 뉴스레터를 내가 직접 읽었다니 운이 좋았다. 꽤나 좋은 정보가 많아서 구독 하는 것도 추천한다.
https://mediahub.seoul.go.kr/newsletter/newsletterApp.do
https://mediahub.seoul.go.kr/archives/2000566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서울 근교(경기도) 농장을 임대한다는 말에 약간의 어색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주말마다 컴퓨터 보고 자기계발에 골몰한 것보다는 숨통을 틔울 이유가 될 듯했다. 내가 가진 자원중 최고는 역시 사람인데 그 중에서도 이십대 중반 언제리부터 계속 어울리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 친구들에게 득달같이 이거 할사람 해서 몇명을 모았다. 비용도 나눠서 내면 좋고 우리가 매주 갈 수는 없는 일이니까 당번을 정해 갈 수 있도록 5명이 시작해 보기로 했다.
역시 무엇도 몰라야 용기라도 생기는지 블로그를 검색해보니 우리만 모르는 꽤나 유명한 시 사업이었나보다. 후기도 많고 기대평도 많아서 밀레니얼의 수강신청 신공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강신청은 역시 직전에 대기 하면서 시계 맞추는 재미인데 아차 다른 신청자들은 수강신청 세대는 아니었나보다. 처음에 땅 60평을 신청했는데 다음 편 글에도 나오겠지만 그렇게 신청했으면 퇴사를 했어야 한다. 게중에 대학생 때 텃밭을 해본 친구가 이건 큰일 난다고 말려 주어서 15평으로 줄여서 최종적으로 신청하게 되었다.
농장 신청은 2월 1일에 하게 되었고 개장은 4월 중순이었다. 그 사이에 무엇을 심을지에 대해서 고민해보기 위해 친구들과 모였다. 내 친구들도 외향인이고 내가 농장한다는 사실에 신나서 주변에 스몰토크 화제로 쓴 것과 같이 내 친구들도 그러했다. 그렇다고 공매도를 해왔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봄여름 작물을 고민할 타이밍에 배추를 몇포기 공매도 해버린 친구 한명과 주류 판매처에 애플민트 공급라인을 잡아온 친구 한명이 있었다. 역시 이거 보라니까 60평 해야 된다고 (아님)
텃밭에 어떤 작물을 심을지 전혀 몰랐는데 우리는 일단 그래도 수확하는 재미가 있는 무엇인가를 심자는 것과 일주일에 한번 들여다 보는 걸로도 괜찮은 친구들을 고르기로 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마저도 밭에 심었다 빼고는 아직 싹을 본적도 없고 기본적으로 일을 할 때도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라 안전한 작물 하나만 할까 하는 생각을 혼자 했다. 왠걸 꽤 다양한 작물을 심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종묘상에 가서 씨를 사자는 결론이 났다. 일단 나는 수미감자를 씨감자로 사기로 했다. 농장 부지를 신청할 때 가을에 밭을 갈고 비료를 한번 더 해주는 옵션이 있었다. 우리는 이것을 선택했기 때문에 가을까지 한번 수확할 작물을 고르고 대미는 역시 김장을 위한 채소를 심기로 했다.
종묘상에 가려던 날은 결과적으로는 가지 않았다. 그리고 팁 아닌 팁이지만 안가도 된다. 이미 서울시에서 많은 씨를 주고 15평을 채우기에는 감자 + 받은 씨 정도면 충분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앞뒤 정황을 알고 안 간 것은 아니고 전날 과음과 당일 우천으로 약속을 파토냈다. 익숙해지자. 이 시리즈에서 친구들과 나의 이런 패턴이 많이 나올 것 같아서 부끄럽지만 익숙해지시라.
여하튼 씨감자는 미리 사서 차가 있는 친구네로 보내 두기로 했다. 대충 검색을 해보니 텃밭용 감자를 심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1) 감자 그대로 심기 2) 감자를 반으로 잘라 그대로 심기 3) 감자를 반으로 잘라 표면을 말려서 치유한 뒤에 심기 4) 감자를 반으로 잘라 재나 숯을 묻혀 심기 이다. 물론 변주도 가능한데 주로 2), 3)의 공정을 거치는 경우에는 싹을 틔워서 심는다고 한다. 별다를 건 없이 직사광선 피해서 서늘한 곳에 두면 싹이 난다. 감자는 직사광선을 맞으면 파랗게 변하고 인체에 해로운 무엇으로 돌변한다 하니 피하라고 한다. 이 중에서 가장 손이 덜가는 4번으로 할 계획이었다. 친구 혼자서 할 수는 없으니 밭에서 하려고 했지. 친구가 받아서 서늘한 베란다에 의도치 않게 둔 덕에 싹눈이 났고 그래서 우리는 4)대로 심게 되었다. 친환경 농법을 지양하기 때문에 비닐 멀칭은 농장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농장에 있는 까만색 비닐로 땅을 덮어둔 그것을 지칭한다. 내가 감자에만 꽂혀있어서 주로 감자 이야기인데 상추 모종과 기타 등등 씨앗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편에서 다루자. 노지에서 곧바로 싹을 틔우기에는 오염의 위험과 속도에 있어 문제가 있어 주로 모종으로 심는게 좋은 듯하지만 밀레니얼은 그런걸 모른다. 게으르기 때문에 우리는 감자와 숯가루를 싣고 농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