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영이는 어느 학교 다녀요?' ‘그 동네 학교 분위기는 어때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도 모르게 우무쭈물거리게 된다. 특수학교를 다니는 것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왜 다녀야 하는지 구구절절 사연을 읊는 것이 너무 번거롭기 때문이다. 학교 문제로 이사를 했다고 하니,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자녀 교육에 꽤 열을 올리는 엄마로 보였을 텐데, 그들에게 전해 줄 지역의 학습정보는 내게 없으니 대충 대답을 하고 대화 주제를 바꾸게 된다.
일반학교, 특수학교, 대안학교, 홈스쿨링, 유예 - 여러 선택지를 앞에 두고 몇 달을 고민했다. 유치원과는 달리 한번 입학하고 나면 옮기는 것도 쉽지 않고, 특수학교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서 떨어지는 아이들도 많고 나중에 전학 가기는 더 어렵다고 하니 결정이 쉽지 않았다. 일반학교 도움반에서 특수교사로 근무하는 친구, 오랫동안 아이를 가르치고 계시는 언어치료 선생님, ABA소장님, 유치원 담임 선생님은 물론이고 도움반을 운영하는 주변 일반학교까지 일일이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했다. 모두들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셨지만 결정은 결국 부모의 몫. 차라리 내 일이라면 결정이 쉬웠을 텐데 아이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하니 좀처럼 마음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를 향한 객관적인 시선과 판단력은 흐릿해져 갔다. 대략 주변 사람들의 조언은 두 가지였다.
'일반학교에서 비장애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사회성을 기르는 것이 좋다' vs '사회성이라는 게 같은 공간에 함께 있다고 길러지는 것이 아니고, 아이에게 적합한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이 좋다'
내적 갈등이 심해져 옴짝달싹 못할 때, 불현듯 국민학교 시절(그때는) 같은 반이었던 도움반 친구 얼굴이 떠올랐다. 그 친구는 항상 교실 맨 뒤에 혼자 앉아있다가 도움반에 가야 하는 시간이 되면 스르르 사라졌다가 또 어느샌가 교실로 돌아오곤 했다. 누구도, 그 친구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냥 교실 구석에 존재하는 의자처럼 괴롭힘이나 놀림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우리와 함께 있었지만 있지 않았던 그 친구의 쓸쓸한 얼굴이 떠올라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딱히 못된 아이들이어서가 아니다. 고만고만한 미숙한 어린아이들에게 그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왜 아무도 우리에게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나와 다른 친구를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성숙한 어른으로 자랐을까?
그 친구가 떠오르자, 내 생각은 분명하고 간결해졌다.
"외로운 학창 시절을 보내게 하고 싶지 않아. 자신에게 맞는 편안한 환경에서 사랑을 많이 주고받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 이 안에서 멋지게 성장해서, 몸이 불편한 친구의 휠체어를 끌어주며 함께 걸어갈 수 있다면 성공이다."
물론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한다는 30년 전의 기억이고 지금은 통합교육환경도 많이 좋아져서 장애인식 개선에 대한 좋은 프로그램도 다양해졌다. 뉴스를 보면 장애/비장애아동의 부모들이 다 함께 적극적으로 나서서 장애에 대한 세미나를 열거나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참여하는 학교가 소개되기도 한다.
하지만 절대다수에 속한 소수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여전히 부족한 게 현실이다. 교육환경이 그때보다 좋아졌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수업이 끝나면 운동장에 모여서 고무줄놀이, 다방구를 하고 놀던 그때보다 놀이의 감수성은 낮아졌고,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 노래를 잘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것처럼 그 아이의 특징이 아니라 우열의 기준이 되는 것도 변하지 않았다. 초등학교부터 여유 없는 빡빡한 일상과 치열한 경쟁에 내 몰린 어린아이들에게 나와는 다른 약자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구하는 것도 어쩐지 미안한 일 같았다. 우리의 교육이 핀란드처럼 남과 경쟁을 하지 않는 교육으로 변화하지 않는 이상, 느린 내 아이가 그 안에서 상처받을 게 뻔해 보였다. 혹시 상처를 받게 되더라도 극복하고 나면 별일 아니라고, 너는 그 안에서 더 많이 성장할 거라고 어린 아이에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경쟁은 경쟁을 낳아 결국 유치원생까지 경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설득시켰다. 학교는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한 교양을 쌓는 과정이다. 그리고 경쟁은······, 경쟁은 좋은 시민이 된 다음의 일이다. - 에르끼 아호, 핀란드 전 국가교육청장
물론 엄마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비장애아이들의 발달 곡선 끝자락에라도 닿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고, 종종 뉴스에 나오는 통합교육이 잘 이루어지는 학교를 찾아, 도시생활을 접고 이사를 갈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걸 포기하고 낯선 도시로 떠났는데 생각한 만큼의 유토피아가 아니면 어쩌나? 그리고 이렇게까지 일반학교에 목멜 필요가 있는가? 진정 아이 때문인가, 남들의 시선 때문인가?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가 수업 도중,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도 '시끄럽다'가 아니라 '지금은 수업시간이니까 쉿! 조용히 하자'라고 웃어줄 수 있는 조금 여유 있는 환경이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특수학교를 선택했다. 그리고 오래 다니지는 않았지만 노래를 좋아하는 게 기특한 일로 여겨지는 지금, 이 환경에 만족한다.
그곳이 어디든 '아이가 행복하게 잘 지낼 수 있느냐' 그게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