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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바람 Jun 23. 2018

16. 취미의 발견

"준영이 시지각 집중문제가 여기 다니는 아이들 중에서 제일 심각해요. "
"준영이 엄마, 진짜 정신 바짝 차려야돼요"

몇 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치료 피드백을 받는 상담시간.

치료센터에서도 병원에서도 ‘고생했다’ ‘많이 좋아졌다’는 긍정적인 말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런 채찍질에 내가 크게 상심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나는 ‘좀 더 기다려봅시다’ ‘크면 좀 나아질거예요’ 라든가 하는 애매한 책임회피성 표현이 더 싫었다.   

아이에 관해 그리고 엄마인 내가 해야 할 것에 대해 객관적이고, 솔직한 이야기를 듣는 게 더 편했다.

물론, 듣는 순간은 마음도 아프고, '도대체 더 이상 무슨 노력을 더 하라는거야' 하는 짜증스런 생각도 나지만.......


눈맞춤도 안 좋고, 집중이 많이 떨어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느린아이들이 다니는 곳에서도 제일 안 좋다고 하니 마음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준영이는 사람의 눈을 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달릴 때도 앞을 보지않고 옆을 보면서 달렸고, 책을 볼 때도 곁눈질로 보곤했다. 눈을 고정시킬 수도 없고, 문제가 있는 건 알았지만 딱히 해결 할 수 있는 방법도 막연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정신적.육체적.경제적으로 지쳐가고 있었지만 다시 한 번 마음의 고삐를 붙잡았다. 혹시 내가 눈치채지 못한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소아안과를 찾아가 진료를 받았지만 사시증상은 없다고 했다.   


고민을 거듭하던 내게, 특수체육 선생님은 아이스 스케이트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아무래도 빙판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려면 선생님한테 집중을 할 수 밖에 없고, 운동을 하다보면 신체협응능력도 좋아질테고 여러모로 도움이 될 듯 했다. 그리고 스케이트에 숨은 재능을 발견해서 선수로 성장하면 더 없이 좋겠다는 엄마의 (검은 욕심)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이 일에 있어서는 어찌나 소심함이 앞서는지.


‘빙판위에서 안하겠다고 발버둥치다 날에 베면 어쩌나’

‘아직 어린데, 발목에 무리가 가서 키가 안 자라면 어쩌나’

걱정인형이 된 것처럼 매일 불안했다.  


5살, 그렇게 기대와 불안을 안고, 빙상장 등록회원 중 가장 막둥이로 스케이트를 시작했다. 준영이는 순순히 낯선 스케이트화를 신었고, 모자를 절대 안 쓰는 아이라 안 쓴다고 떼부릴까 걱정했던 헬멧도 아무렇지 않은 듯 썼다.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스케이트를 배우는 게 싫지는 않은 듯 했다.  

5살, 빙상장 막둥이로 어르신들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던 시절


워낙 동작모방이 잘 안되는 편이라, 배우는 속도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몇 배로 느렸다.  

잘 하지 못해도 즐거워하고 무엇인가를 배우려는 모습만으로도 기특하고 대견했다. 시간이 흐르니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빙판위에 혼자 섰고, 어느 순간 무서운 지 한쪽 날만 밀며 타기 시작했고, 몇 달이 지나자 두 발을 밀면서 속도를 내어 타기 시작했다


유치원을 다니면서부터는 스케줄이 맞지 않아서, 방학특강으로만 짧게 배우기 시작했는데, 잊지 않고 더 숙련된 자세로 즐기니 몸으로 습득한 경험은 오래도록 기억한다는 말이 진짜였다.

이제는 아이스링크를 청소하는 브레이크타임에도 들어가고 싶다고 빼꼼히 링크안만 바라본다.    

빨리, 링크장에 들어가고 싶은 준영이


그리고, 종종 자신이 스케이트 타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여주면 스케이트 타고 있다고 말하며 즐거워한다.  게다가 아이스 스케이트를 터득하고 나니, 배우지 않았는데도 인라인나 롤러스케이트는 바로 타기 시작했다. 몸치인 엄마를 도와줄 만큼 잘 타서 이제 내가 준영이에게 의지를 해야 한다.


처음타는 롤러스케이트도, 인라인도 씽씽씽


아! 성공했다! 준영이가 좋아하는 취미가 생겼어.


엄마의 검은 욕심이었던 숨은 재능은 없었고, 스케이트를 한다고 아이의 시선처리가 확 좋아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는 준영이가 신나게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벅찬다. 때로는 주책맞게 감격의 눈물이 흐를때도 있다. 자신만의 취미가 있다는 건 삶을 풍성하게 하는 밑거름이 될 테니까.


준영이가 혼자서 자립을 하고, 직업을 갖고, 이웃을 사랑하는 멋진 청년으로 클 수 있도록 나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할 것이다. 지금도 아파트 입구부터 집 찾아가기,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살 때 계산해보기, 집안일 도와주기 등 다양한 연습을 한다. 하지만 성인이 되었을 때, 자립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하고, 어느 정도 셈도 할 줄 알아야 가능하다.  내 노력과는 별개로 생각만큼 자라지 않아서 학교를 졸업한 이후, 취업을 못하고, 자립을 못할 수도 있다.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내 지난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고 낙담하지 않고 아이와 삶을 즐길 수 있도록 차근차근 준비해야겠다 생각했다.


 성인이 된 준영이의 빈 시간이 외롭지 않고, 의미 있는 시간으로 채워졌으면 좋겠다. 그 소망을 위해 다양한 취미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부지런히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쉽지는 않다. 스케이트를 가르치는데도 정말 많은 분들의 노력과 배려가 필요했었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강습하는 스포츠센터도 거의 없고, 있더라도 비장애 아이들이 거의 없는 시간에 이루어져서 시간을 맞추는 것도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가 폭넓게 주어지면 좋겠다. 행복추구권은 장애가 있든 없든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하니까.


어느 새 엄마보다 더 취미가 많아진 아들

삶을 사랑하고 즐길 줄 아는 청년이 되기를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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