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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평 Apr 08. 2017

세계 건축의 흐름과
한국 건축의 현재(2)

2. 사회적 건축가, 건축가의 사회적 책무


일단은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글을 써가고 있지만...

이것을 정리하면 꽤 힘든 일이 될 거라 생각한다.


스케일이 너무 거대해서 설명이 부족하거나,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쉬울 거라고 생각한다.

단 한 명의 건축가를 다루고자 하기 때문인데, 오늘의 글의 주인공은 2016년 프리츠커상을 수상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이다.


칠레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

그의 프리츠커상 수상은 굉장히 복잡다단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단 프리츠커상은 대대로 작가주의적 건축가들을 선정하여, 수상의 영광을 안겼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러한 경향에서 벗어난 '사회적 건축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종이 건축을 통해서 난민들에게 잠시 몸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 일본 건축가 '시게루 반'이나 지역적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는 중국 건축가 '왕슈'가 그러한 인물들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칠레 건축가가 바로 올해 프리츠커상 수상자이자 현재 베니스 비엔날레의 총괄 감독인 '알레한드로 아라베나'이다.




Alejandro Aravena



'알레한드로 아라베나'가 뭐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고?

TED에서 Alejandro Arvena의 강연은 사회 참여적 건축으로 매우 유명하다. 우선 그의 강연 내용 중 일부를 옮겨본다.




중산층 가족이라면 약 80평방미터 정도의 집이 적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주택 시장에서 80평방미터는 자금적인 부담이 되고, 결국엔 40평방미터의 주택을 선택하게 됩니다. 저희는 시장 원리에 따라 40평방미터의 집을 만들기보다, 80평방미터의 주택의 반을 짓어서 제공하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작은 집이라고 하지 말고 큰집의 반이라고 문제를 바꿔 말했을 때 중요한 점은 어느 쪽 반이냐 하는 겁니다. 공적자금을 쓴다는 점도 생각했습니다. (...) 노동에 참여하고 일을 분담하는 겁니다. 저희 설계는 빌딩과 주택의 중간쯤 되는 것이었습니다.


Santiago De Cali (by Alejandro Aravena), 그의 건축은 사용자의 적극적인 건축행위로 완성된다.


설계는 다르지만 원리는 같습니다. 기본 구조를 주면 거기서부터 사람들이 만들어 나갑니다.


설계의 목적은 "3S" 해악인 규모, 속도, 희소성을 이해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서 사람들 스스로 건축할 수 있는 능력을 열어주는 겁니다. 사람들 스스로 건축할 수 있는 능력을 쓰지 않는 한 매주 백만 명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올바로 설계하면 슬럼이나 빈민가는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유일한 해결책일 수 있습니다.




2010년 칠레에 있었던 리히터 규모 8.8의 지진과 쓰나미를 아실 겁니다. 저희는 남부에 있는 콘스티투시온 재건을 위한 요청을 받았습니다. 저희는 100일, 즉 3개월 동안 모든 것을 설계해야 했습니다. 공공건물부터 공공장소, 도로선, 교통, 주택과 주로 미래의 쓰나미로부터 도시를 보호할 방법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건 칠레의 도시 설계에서는 새로운 것이었고 몇 가지 차선책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재앙이 있던 지점에는 시설금지였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큰 장벽을 세우는 겁니다. (...) 하지만 일본에서 보여준 것처럼 자연의 힘에 저항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무모한 방법이었습니다. 주택건설 과정에서처럼 저희는 지역사회를 해결하는 과정에 참여시켜야 했고 참여적인 설계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참여적인 설계가 히피적이거나 낭만적이지 않다는 걸요. "모두 함께 미래 도시를 꿈꿔 봐요"같은 그런 게 아니란 걸요. 사실은 심지어 올바른 방법을 찾으려는 가정들과 함께 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로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찾으려는 것입니다. 잘못된 문제에 제대로 답하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은 없습니다.


Elemental(by Alejandro Aravena), 강물의 범람을 막기 위해 숲을 조성하고 저렴한 주거를 위해 미완성의 주택을 제공한다.


우리 정체성인 도시의 시작은 붕괴된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강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강변이 사유재산으로 되어 있어서 공공의 접근이 불가능합니다. 저희는 그래서 세 번째 대안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저희 방법은 지형적인 위험에 맞서서 지형적인 해결을 하는 겁니다. 도시와 바다 사이에 숲이 있는데 그 숲이 자연의 힘을 거스르지 않고 마찰을 주어 힘을 분산시킨다면 어떨까요? 숲이 빗물을 분산시켜서 범람을 막는다면 어떨까요? 그것이 공공장소의 역사적 빚을 갚고 마침내는 강가를 누구나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참여적인 설계의 결론으로 이 방법이 정치 사회적으로 인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비용이 문제였습니다. 4천8백만 달러요. 그래서 저희는 공공 투자 계통에서 조사를 했습니다. 알고 보니 똑같은 장소에서 세 개의 프로젝트가 세 부서에서 서로의 프로젝트를 모른 채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총합이 5천2백만 달러였습니다. 설계에서 통합의 힘이 도시의 부족한 자원들을 더욱 효율적으로 쓰게 해줍니다. 그것은 돈이 아니라 협동입니다. 그렇게 해서 저희는 4백만 달러를 절약했고 현재 숲이 공사 중입니다.


발췌. Alejandro Aravena, TED 강연, 내 건축 철학이요? 공동체와 함께 만드는 거죠.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질문을 던지다.



앞서 1편에서 건축이 가진 '영속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은 건축의 특정한 속성에서 시작된다. 한 번 지어지면 허물 어질 때까지 건축물은 도시 한편에 실재로서 존재한다. 도시를 구성하고, 사용자의 삶을 규정하고, 지역 주민들의 활동 영역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건축을 처음 접하는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장소성'과 '맥락'이다. 주변의 건축물과 어울려야 함은 물론이고, 건물이 지어짐으로써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용자는 건물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도시 속에서 이 건축물은 어떠한 역할을 담당하는지를 배우고, 계획한다. 그것이 설정되고 나면 시작하는 것이 디자인이다. 물론 역할과 디자인이 연결되면 더 좋은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사조에 큰 영향을 받은 교수들은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라고 이야기하고, 근대 이후의 사조에 영향을 받은 교수들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라고 한다.


정해진 답을 답습하는 것이나, 끊임없이 새로운 것 모두 학생들을 괴롭힌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배운다. 결국에 학생들이 찾는 답은 평, 입, 단면의 건축도면과 디자인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 행위가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강한 자의식으로 만들어진 건축물만이 남게 된다. 학생들은 기성 건축가들이 '작품'에 가까운 건축물을 계획하기 위해서 어떠한 방식으로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지,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생기는 고충들을 들으며 성장한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계획안이 얼마나 경제적인지, 이러한 디자인을 만들었을 때 주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만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나(우리라고 하지 않겠다. 분명히 이 와중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도모하는 젊은 건축가들이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는 점점 건축 철학, 미학, 작품성과 같은 건축 내부의 논리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아라베나는 이러한 나의 의식을 깨뜨리는 도끼와 같은 건축가이다. 'Think-tank' 가 아닌 'Do-tank'는 단지 단어만 바꾼 것이 아니라, 그의 건축을 통해서 보여주었기 때문에 더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문구 중 하나이다.


건축계가 전문 직능에만 관심을 쏟는 행태는, 스스로의 지위를 보전하는 방편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철저히 고립시켜가는 과정이다. 건축이 삶에 직접 관여한다는 말은 흔히 하는 주장이지만,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정작 무관심하다는 사실만큼 지독한 어불성설이 있을까.


아라베나는 최근 베니스 비엔날레의 총괄 기획자로 '전선에서의 보고'라는 주제로 각 나라의 문제를 확인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전시를 시작했다. 이 주제가 특별한 것은 우선 그는 건축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건축을 도구화하고, 건축으로 비건 축적 이슈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묻는다.


"건축가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다른 건축가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만한 문제들을 다룬다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도시에서 작동하는 힘들, 이주의 문제에서 불안정, 빈곤, 공해, 인종차별과 같은 문제들은 건축의 영역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넓게는 사회에 관심을 이슈들이죠. 우리는 이와 같이 중요하지만 비 - 건축적 이슈에 참여하여 우리의 지식을 적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알레한드로 아나베나


최근에 <제인 제이콥스 :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이라는 영화 스터디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와이드 편집장의 말이 굉장히 인상 깊었는데, 도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크고, 직접적인 힘은 바로 '민원'이라는 것이다.  건축 전문가들이 사는 곳에 관심을 가지고 민원을 넣는다면, 도시가 더 좋은 곳으로 바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행정가/공무원의 성과가 민원의 해결과 만족도에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리고 그러한 민원이 실제로 건축가들과 시공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굉장히 설득력 있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해보지 못한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다.


건축 웹진을 읽으며, 해외 건축에 어떤 디자인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어떤 큰 프로젝트가 진행되는지, 어떤 계획안이 당선되었는지는 관심 있게 보면서, 정작 내가 살아가는 곳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었던 것이다. 물론 어느새 부턴가가 '정주'의 개념이 사라진 나의 삶에도 큰 이유가 있겠지만 말이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은 관점을 거치는 것이 힘의 기준이 되고, 새로운 객관성의 지표가 된다는 말이다. '참여'의 개념에는 다음의 믿음이 깔려있다. "해석의 다수성이 곧 힘(Kraft)의 징표"라는 것, 그리고 동일한 사물에 대해 "더 많은 눈, 더 다양한 눈을" 가질수록 어떤 개념이 더욱 완전해질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객관성'을 획득하는 과정이라는 것.


하지만 이러한 시도 또한 아나베나의 시도에 비하면 굉장히 소극적인 일이다. 이러한 시도를 하고 결국에 건축으로 실현시킨 것은 우리나라의 건축가들이 사회/정치적 시도에 소극적이었던 것에 비해, 아라베나가 더 적극적으로 시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프로젝트 진행 중에 여러 단체가 비슷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정 정도의 제정을 마련했다는 것을 파악하고, 단체들 간에 교섭자의 역할을 자처하여 수재민들의 거주 공간 마련을 위한 공적 자금을 마련했다.


건축가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조율자 등으로 많이 묘사된다. 건축에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과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좋은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서 관련된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고, 총합하여, 전체적으로 계획한다. 이것이 기존의 건축계에서는 이해관계의 당사자들의 총합이었다면, 아라베나는 이해관계자의 범주를 뛰어넘어 사용자와 이용자, 지역주민까지 망라한다. 아라베나는 프리츠커 상을 받은 최초의 칠레 건축가이다. 그가 프리츠커 상을 수상함으로써, 칠레는 좀 더 이러한 프로젝트에 많은 사회적 재화를 사용할 것이고, 그러한 건축을 좀 더 합리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프로세스가 만들어질 것이다.



건축은 큰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대학에서 옳은 것에 대해서 결코 배우지 않았습니다."

-알레한드로 아라베나


삶의 무방향성은 가치 상실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은 지극히 타당하다. 오늘날 건축은 무엇을 가치로 삼는가? 방향이 명확하지 않으면 '건축의 힘'을 논하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다. 옳은 것에 대한 물음을 가치를 상정하기 위한 물음,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물음이다. 그러니 우리가 배우지 못했던 물음(무엇이 옳은가?)을 지금이라도 물어야 마땅하다.

-건축 평단 2016 봄 호. 송종열. 힘이 없는 모든 것은 휩쓸려간다.


다원성이 너무도 당연한 사회가 되었다. 진리는 사라지고 입장만 남아있는 사회이다. 빅데이터가 새 시대의 진리가 될 것 같지도 않다. 빅데이터는 결국에 사람들의 관심과 그에 대한 경향성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많은 시각을 거쳐서 만들어진 사실이 '객관성'을 담보할 것이라는 아라베나의 생각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어쩌면 이러한 생각도 '진리'라는 존재에 대한 강박 때문에 생겨나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만으로는 좋은 도시, 사회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집을 구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것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에 가깝다. 우리나라는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어떠한 주거를 제공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행정가도, 도시계획가도, 정치인도 아닌, '건축가'가 풀어야 한다. 건축가와 건축의 본질은 대중문화이며, 결국 모든 건축은 대중을 클라이언트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중립적인 방법을 써서는 안 된다. 단편적으로 중화된 공간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저 자리를 놓아둘 테니 알아서들 하라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건축 자체가 한편으로 기울어 있더라도, 그래서 건축 자체가 편향적이라 할지라도, 그 편향 속에서 작은 하나를 더 담는 것이 필요하다. 작은 한 걸음을 더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건축이 한 걸음씩만 더 나서면 서로 겹쳐지는 부분이 생길 것이고, 그렇게 겹쳐지는 부분이 쌓여 우리의 건축과 도시에서 공통된 부분을 만들 것이다.

-임성훈, 건축의 힘



Epilogue


3편에 한국 사회와 건축을 다루려다 보니;;;

결론이 이상하게 맺어진 느낌이 있네요.

뭐 어째겠습니까.

어쨌든 다음 편은 한국 사회와 건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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