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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아놀자 Oct 24. 2024

프롤로그(2)
아무래도 직업을 잘못 선택했다.

근데.. 다른 걸 하기에도 너무 늙어버렸다


첫 글  [저의 직업은.. 어중간한 작가입니다]를 올리고 나서 다음 이야기를 쓰는데 꽤나 망설여졌다. 

경험담을 써야겠다는 명분아래 

외면해 왔던 일들

잊고 싶었던 사건들

혹은 기뻤던 순간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마구 떠올랐는데.. 

'겪은 일들이 나한테나 일이지 그리 대단한 일들도 아닌데 쓴다고 달라지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보잘것없는 나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먹어서 좋은 건 

나에 대해 조금은 명확하게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었다. 


작가가 되겠다고 상처받고 힘들고 여전히 돈벌이도 제대로 못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써야만 다시 힘을 낼 수 있고 숨을 쉴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지금까지 '지망생'이지만 계속 쓰면서 버틸 수 있었다는 것. 


참나, 참 구제불능이네.. 


시나리오 

극본.. 

지긋해서 지금 이걸 쓰려고 하는 거잖아? 

그니까 써. 

써.

써. 

뭐라도 써. 


이렇게 혼자 나를 독촉하고 있던 어느 햇살 좋은 날

친한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괜찮냐?]

                                                                                                 [네.. 뭐... 계속 작업 땜에 바쁘시죠?]

[마음만 바쁨. 어여 담꺼 해야지] 

                                                                                                 [지금 뭐 쓰고 계신데요?]

[많아 ㅋㅋㅋ ]

                                                                                                 [좋네요.. ㅎㅎ]

[직업을 잘못 선택한 듯 ㅋㅋ]

                                                                                                 [아무래도 그런 듯... ]

[근데 딴 거도 못해] 

                                                                                                 [맞아요.. 늙어버림.. ㅠㅠ 지쳐도 해야 하는.. ] 


다른 누군가 나에게 "넌 직업을 잘못 선택했어"라고 말하면 화가 나겠지만 

이 길을 걷고 있는 우리는 이런 자조 섞인 농담을 자주 하곤 하는데.. 

이날 따라 유독 꽤나 직업을 잘못 선택했다는 말에 꽂혔다. 


1. 잘못된 직업의 선택.. (그땐 원대한 꿈이었겠지) 

2. 그 선택을 버텨온 시간 (꿈을 이루기 위해 달린 시간이었겠지)

3. 속절없이 먹은 나이 (나이는 누구나 똑같이 먹으니까)

4. 다른 걸 하기에도 늦었고 (마흔에 다른 분야의 신입은 현실적으로 가혹하고 진입장벽은 더 높다)

5. 지친 상태 (쓰고 있는 이 글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희망이 없어서)

6. 그래도 해야 한다... (이게 포인트)


이런 의식의 흐름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의 목차 같이 느껴졌다. 

(단! 너무 자조 섞이게 쓰진 않으려 한다)


선배는 이젠 주변에 몇 안 남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동료다. 

소위 말하는 이쪽 바닥(?)이 돌아가는 걸 이해하고 있는 사람. 

 

선배는 원래 영화감독이 되려 했고 나는 시나리오 작가가 되려 했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선배는 힘들게 영화 극본 타이틀을 얻었고, 고난의 시간이 흐르고 영화감독이라기보다 

쓰고 또 쓰는 작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여전히 어중간한 작가이자 지망생이라 불리는 게 맘이 편하다. 

우린 한 번도 제대로 쉬지도 않았고 열심히 달려온 거 같은데... 어쨌든 이 바닥에는 있잖아? 

그렇다면 잘못 선택한 건 직업이 아니라 진로 아니었을까? 


진로 進路
[명사] 앞으로 나아갈 길



선배가 괜찮냐고 안부를 물어온 건, 나의 2년간 쓰던 드라마 계약이 끝나면서 겪은 때문이었다. 

때마침, 선배도 열심히 쓰던 드라마의 제작이 날아간 후였다. (아까운 소재였다) 

우리는 분명 "영화"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었는데 "드라마"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한 만큼 우리도 변해 있었다. 


그래서 멋진 영화인을 꿈꾸며 시나리오 작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던 과거 이야기부터 써볼까 했지만 

마음을 바꿨다. 최근.. 드라마 작가가 되기로 맘 먹고 겪은 일들부터 풀어야겠다고.. 

그리고 작가라는 직업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나아가고자 했던 길을 다시 걸어보며 이야기를 쓰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로 뒤숭숭하던 그 시절로 가봐야 할 것 같다. 

(음.. 좀 싫은데 코로나..) 


덧, 

내가 시나리오 작가가 아니라 드라마 작가가 되기로 선택한 것도 잘못이었을까? 

아니다.. 작가라는 직업 자체를 선택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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