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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쉘위 Jun 13. 2024

텃밭 도둑

도둑에게도 관대함을.

지난주 아침, 텃밭에 갔더니 케일에 구멍이 뿅뿅 나기 시작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땅에 묻으러 갔다가 발견한 거라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며칠 사이 구멍이 손바닥만큼 커져있길래 한참을 들여다보며 텃밭 도둑을 찾았는데도 보이지 않아서 또 넘겼다. 그리고 그다음 날, 구멍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안 보이던 흰나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랴 부랴 검색을 해보니 케일 도둑이 배추흰나비 유충인데 이게 케일 색이랑 똑같아서 내 눈에 쉽게 뜨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 놈의 새끼들!!!!


다시 밭에 가서 보니까 그제야 보인다.


꼬물꼬물 너무 귀엽잖아.

이 놈들이 커서 흰나비가 되는 거였구먼!




케일, 양배추, 브로콜리는 벌레들이 좋아하고 부피가 큰 아이들이라 밭을 크게 잡아먹어서 나의 작은 텃밭에서는 포기한 작물들이다. 지난해부터 그린 스무디를 열심히 아침마다 해 먹으면서 즙 케일용을 인터넷에 주문해서 먹다 보니 번거로워서 올 해는 케일도 도전해 봤다. 아침에 한번 우리 가족 스무디 해 먹을 정도로 서 너 잎만 따 먹을 생각이었는데 며칠 방치한 사이에 벌레들이 다 먹어버린 게 속이 상해서 제대로 방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잎에 붙어있는 애벌레들을 보이는 데로 잡았다. 잡다 보니 꼬물꼬물 애벌레들이 너무 귀엽고 죽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젓가락으로 살살 잡다 보니 한 시간이 순삭 되었다. 시간을 잡아먹으면서 농사일을 하고 싶지 않은 나에게는 이 방법은 안 되겠다 싶어서 다른 방법을 찾았보았다.



배추흰나비는 배추, 케일, 브로콜리, 콜라비 같은 십자화과 채소를 좋아한다. 최근에 와일드 루꼴라 밭에서도 발견되었는데 와일드 루꼴라 꽃도 십자화과이다. 그래서 루꼴라 밭과 케일 밭에 배추흰나비 유충이 못 오게 방어전이 시작되었다.






꽃집에 가서 메리골드, 로즈메리를 사서 케일 밭 군데군데 심어주었다. 향이 나는 허브 종류를 흰나비가 싫어한다길래 혹시 고수 향도 싫어하지 않을까 싶어서 고수 모종을 사다가 심어주고 허브 밭에 있는 민트도 심어주었다.


메리골드 꽃 종류는 참 많은 듯, 내가 원한 메리골드는 아니었지만 꽃집에 파는 게 이거밖에 없어서 하나 사다 심었다.
부추향도 싫어하지 않을까 싶어서 부추 모종도 사다가 이랑에 흙을 채워서 심어보았다. 한련화도 먹을 수 있는 꽃이라 자리 남는 곳에 같이 심었다. 동반 식물로 좋은지는 모르겠다.

케일 밭에 로즈메리, 민트, 부추, 고수, 메리골드 꽃을 군데군데 심은지 3일 차.


벌레 덜 먹은 잎들은 다 수확하고 그래도 애벌레들도 먹고살라고 잎 몇 개를 남겨두었는데 오늘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오! 효과가 있는 건가?


무엇보다 작은 밭이 다채로워져서 보기 좋다!


 퍼머컬쳐 (Permaculture)에서는 동반식물(Companion planting)이란 개념을 중요하게 여긴다. 동반식물은 서로의 성장을 돕고, 해충을 막아주며, 토양 건강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하는 식물들을 말한다. 예를 들어, 토마토와 바질은 함께 심으면 서로의 맛을 개선시키고, 해충을 쫓아주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파마컬처는 생태적 상호작용을 최대한 활용하여 지속 가능한 농업과 정원을 만들어간다. 가능한 죽이고 없애는 방식보다는 다양한 생명체가 살고 서로에게 유익한 존재가 되는 밭이기를 바란다.


누군가에게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듯이. 어떤 존재든 혐오하고 싶지는 않다. 혐오는 혐오를 불러일으킨다. 혐오의 연쇄 반응을 의미한다. 즉, 한 사람이나 집단이 혐오를 표현하거나 행동할 경우, 그것이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혐오를 유발하거나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처럼 생태계의 세계에서도 이 혐오는 사람들 간의 갈등이나 편견이 아닌, 주로 생물들 사이에서의 경쟁과 생존 전략에 관련된 맥락에서 사용된다. 예를 들어, 어떤 종의 생물이 다른 종을 경쟁에서 배제하거나, 먹이 체계에서 경쟁적으로 접근하는 상황에서 '혐오'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밭에 풀 한 포기를 못 보고 죽이는 것도 혐오이고, 살충제를 뿌려서 벌레들을 다 죽이는 것도 혐오라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이 각자의 재능으로 역할을 할 때 빛을 발휘하고 공동체가 균형을 이루듯, 생태계에서도 생존과 번식 전략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이해하지 않고 한쪽 면만 바라보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균형과 다양성은 깨져버릴 것이다. 나의 작고 큰 우주의 텃밭에서도, 그리고 내가 속해 있는 세상에서도 균형과 다양성의 가치를 실현시키고 싶다. 그것이 나를 살리고 너를 살리고 우주를 살리는 길이라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나의 투쟁은 내가 건강하게, 나답게 살고자 하는 바람으로부터 시작되었듯이 '나의 텃밭에서도 모든 존재가 그러하기를 기도한다. 각자의 역할을 해내며 자신의 존재로 빛날 수 있기를.









우리 가족 아침 식사, 그린 스무디.


이 한잔이 내 입으로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공부가 있었는지.


아침 한잔 먹고 나면 시원하게 쾌변을 한다.

삶의 질을 좌우하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귀하고 소중한 이 케일을 감사한 마음으로

내 몸에 넣어준다.


You are what you eat.

네가 먹은 것이 곧 너이다.

그리고  내가 먹는 것도 내가 키운다.



내 땅에서 키운 건강하게 키운 아이들로

내 새끼를 키운다는 자부심.

그 자부심은 자존감을 만들어낸다.


땅을 지키고 나를 지킨다.

그것이 비록 작아도 큰 우주를 만들 수 있다.




토마토 첫 수확 날. 2024년 6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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