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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쉘위 Jun 07. 2024

쓰레기가 귀한 존재로 변신

종이박스 멀칭법



날이 점점 더워지고 있다. 풀들도 쑥쑥 자라고 있다. 지난주에는 이번 주 바빠질 것을 대비해서 밭고랑 사이사이 종이 박스를 덮어 두었다. 종이 박스를 뜯어서 물을 흠뻑 뿌려서 땅에 바싹 달라붙게 한 후에 흙을 뿌려 놓으면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고 수분을 오랫동안 머금고 있는다. 일주일 동안 밭에 물을 주지 않았는데도 오늘 아침 박스를 들춰보니 땅이 촉촉하게 젖어있고 공벌레, 톡토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퇴비 간을 따로 만들어 놓기는 했지만 밭고랑 사이사이에 아침으로 먹는 과일들의 껍질들을 묻어놓으면 일주일 사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아침마다 먹는 가족들이 먹는 바나나는 뱃속으로 가지만 바나나 껍질은 땅 속으로 동물들에게로 간다. 이제는 한별이도 지렁이 밥 주러 밭으로 가는 게 일상이 되었다. 땅 깊은 곳에서 열일 중 인지 지렁이는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다른 밭에 비해 낙엽과 풀 이불, 종이 박스로 수분이 뺏기지 않게 보호해 준 우리 밭은 겉 이불들을 걷어내 보니 촉촉했다.  일주일 전에 덮어놓은 종이박스도 분해가 되어 흔적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계란 껍데기뿐만 아니라 계란 종이 박스도 한 달 정도 지나니 분해가 되었다. 청소기 먼지도 훌륭한 땅속 동물들의 먹이가 된다니 줘 봐야겠다.



며칠 전에 밤에 밭에 가니 뭔가 내 눈앞에서 펄쩍 뛰어가는 게 있어서 기절하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까 귀엽게 생긴 두꺼비였다. 엉금엉금 기어가는 게 어찌나 웃기던지. 지렁이 잡아먹으러 온 걸까? 윤기가 하나도 없었던 조그마한 모래 텃밭이 온갖 생명체가 살아 숨 쉬는 작고 큰 우주로 변하고 있는 과정이 신기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땅 위에서는 게으르지만 끊임없이 흙을 살리기 위한 공부는 게으르지 않게 지난 5년간 실험해왔다. 그 결과 음식물 쓰레기는 우리 집에서 귀한 존재이다. 과일껍질, 채소 자투리, 종이 박스, 커피 찌꺼기, 커피 필터, 한별이가 먹고 남은 밥. 누군가 그랬다. 음식물 찌꺼기 버리는 게 제일 싫다고. 손에 더러운 거 묻히는 거 너무 싫다고. 하지만 나는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가는 길이 제일 신난다. 오히려 남들이 버리는 쓰레기도 모아 오면 우리 집에서는 귀한 존재가 된다. 오늘도 카페에서 일반쓰레기로 버려지는 커피 찌꺼기를 챙겨 왔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것이 쌓이면 나도 이 지구에 아주 작은 보탬이 되고 있구나 싶어서 삶이 조금은 유익해진다. 그래서 나는 지렁이를 사랑한다. 쉬지 않고 일하면서 땅을 비옥하게 하고 작물을 건강하게 자라게 하고 그 건강한 작물이 우리 입으로 들어오면 내 뱃속이 편안하니까. 이것이 나의 평화의 작은 실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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