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쉘위 May 29. 2024

텃밭에서 기쁨을 감출 수 없었던 날

나는 기쁨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024년 5월 30일



며칠 전에 밭에서 새끼 지렁이를 만나고 나서부터 흥분이 가라앉지가 않았다. 내내 지렁이 생각만 나고 밭에 가고 싶어서 지렁이가 보고 싶어서 눈앞이 아른 아른 거렸다. 


내 밭이지만 내 밭 같지 않고 내 집이지만 내 집 같지 않고 여러 가지 문제로 얽히고설켜 해결되지 않은 이 집에 마음이 가지 앉아 마음만 복잡하고 무거워서 짐 같았던 집이었는데 여행을 떠나 다른 공간에서 있는데도 집에 빨리 가고 싶은 이상한 마음을 도저히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여행 중에 먹었던 과일, 음식물 쓰레기를 잔뜩 챙겨 와서 지렁이 밥으로 줄 생각에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누군가를 엄청 사랑할 때 마음이랄까.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이었다.


어제 수업 시간에 학생들은 ’ 선재 없고 뛰어 ‘ 드라마 이야기를 거품 물고 떠 들어댔는데 나는 지렁이 이야기를 거품 물고 쏟아냈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진짜 사랑하고 있구나 싶었다. 


올 해는 나의 커리어에도 한계를 두지 않고 다양한 일들을 맡으면서 실험을 하고 있지만 나의 가장 깊은 연구는 나의 작고 작은 밭 위에서 일어난다. 


공동의 땅에 구역을 나눠서 세대마다 작은 텃밭이 제공되는데 세대마다 텃밭을 가꾸는 방식은 제 각각이다. 자주 돌보지 못하는 텃밭은 몇 년이 지난 후 꽃밭으로 바뀌기도 했고 거의 대부분은 비닐을 덮어 풀 관리를 하고 있다. 나는 비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라 시골에 내려와서 작은 텃밭을 가꾸면서도 결코 비닐로 풀 관리를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여행을 하면서 파마컬처 공동체 생활과 우프를 통해 배웠던 생태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실천하고 싶었고 시골에 와서 운 좋게 지역에서 텃밭 보조 강사로 일을 하면서 배운 것들을 내 밭에서 적용해 보았다.


풀 관리를 하기 위해 비닐을 덮는 대신 풀 이불을 덮어줬다. 주변의 잡초들을 뽑아서 흙이 노출되지 않게 덮어주면 잡초들이 햇빛을 받지 못해 잡초가 덜 나고 땅이 굳지 않고 포슬포슬하게 수분을 유지한다. 


올 해는 낙엽도 모아서 밭에 뿌려놓았더니 며칠 동안 집을 비우고 물을 안 줘도 땅이 촉촉하다. 과일 껍질이나 채소 다듬은 찌꺼기들도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가끔 한별이 똥이나 오줌도 밭에서 해결한다. 


마을에 소장님이 그만두셔서 풀관리가 안된다고 다들 불편해하던 요즘, 시간 될 때마다 오다가다 풀을 뽑았더니 보시는 분 들마다 애쓴다고 칭찬도 해주시고 먹을 것도 주셨다. 그리고 그 풀들은 다 우리 밭에 풀 이불이 되었다. 5월 한 달 부지런히 땅을 살리기 위해 부단히 도 애썼다. 그 결과 오늘 바질 모종을 심기 위해 풀 이불을 걷어내니 흙을 만져보니 포실 포실 하고 공벌레들이 가득 있었다. 아! 기쁨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뭔가 엄청난 보상을 받은 것 같은 성취감!


검은 비닐로 채워진 밭 한편에 낙엽과 풀로 뒤 덮인 땅을 보고 뭐라고 하면 어쩌지 내 심 걱정돼서 몇 년간 눈치를 보며 소심하게 밭 관리를 했다. 그런데 4년 만에 처음 만난 지렁이를 보고 이제 더 이상 눈치를 보지 않고 내 방식대로 마음껏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올해 지렁이 분변토를 섞어서 알이 부화한 건지, 지렁이가 어디서 온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이제 건강한 밭을 위해 본격적으로 지렁이를 키우는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To be continue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