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의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통해 바라본 우리나라의 문화에 대하여
얼마 전 방탄소년단의 정규앨범 3집인 'Love Yourself: Tear'가 발매된 지 한 달이 채 안되어(2018.05.18 발매) 차트에 진입하자마자 2018년 6월 2일 차 기준 빌보드 200 차트의 1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기사가 등장했다. (참조: https://www.billboard.com/articles/columns/chart-beat/8458037/bts-love-yourself-tear-first-k-pop-album-no-1-billboard-200)
상기 Billboard 기사에 따르면, 이는 2006년 이후 외국어로 된 앨범 중에서는 12년 만에 앨범 차트 1위에 등극한 것이며(12년 전 1위를 한 앨범은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불어와 영어가 부분적으로 혼합된 Ancora) 같은 라틴어 기반이 아닌, 한국어라 하는 전혀 다른 형태의 언어가 현존하는 최대 음악시장에서 No.1을 찍었다는 것은 꽤나 유의미한 사건일 수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지난 5월 21일 개최한 2018년 BBMAs(Billboard Music Awards)에서 보여주는 Fake Love 떼창을 유튜브를 통해 바라보며, 나는 국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기존에 한국 외부에 거주하는 다양한 지인들로부터 BTS의 인기는 전해 듣긴 했지만, 두 눈으로 수만 명이 나온 지 사흘밖에 되지 않은 한국어 노래를 떼창 하는 모습을 보니, 실로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궁금하신 분들은 잠시 두 눈으로 확인을 해보도록 하자.
방탄소년단은 앨범 차트 1위는 물론, 싱글차트에서도 진입하자마자 10위를 차지했는데, 아마도 한 주 한 주가 지나감에 따라 그 순위는 올라갈 것이고, 이는 지난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같이 얼마나 오랫동안 차트에 머무느냐가 관전 포인트로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방탄소년단의 기록적인 인기는 과연 오롯이 그들의 능력만으로 된 것일까. 나는 이러한 현상을 문화적인 관점에서 한번 바라보고자 한다. 물론 필자는 땅파고 공구리치는 건설엔지니어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관점이라기 보다는 그저 우리 사회 어느 아재의 관점임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문화라는 것은 정의하기가 매우 어렵고도 다양하다. 문화(文化)의 사전적 의미는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사회 구성원에 의해 향유되는 물질적, 정신적 소득을 말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의식주를 비롯한 음악, 미술, 문학, 연극, 영화, 학문, 종교, 제도 따위를 모두 포함한다. 여기서 특별히 다수의 사람들이 향유하는 대중문화의 경우는 필연적으로 자본의 논리가 개입된 것인데, TV와 라디오, 인터넷과 같은 매스미디어의 출현으로 파생된 상품 문화의 특성이 존재한다.
자본주의가 태동하기 이전에 문화라 함은 본디 귀족들만 향유할 수 있는 전유물적 특성이 존재했다. 근대 유럽의 클래식 음악가들만 생각해봐도, 대부분 절대왕정 시기의 궁정 교향악단과 같은 곳에 소속되어 있으며 생계를 유지해 나갔다. 어떠한 조직에 소속되지 않더라도, 상당수의 음악가들은 귀족의 보호와 후원을 받아먹고사는 종속관계였다. 다음은 베토벤 위키백과에 나와있는 일부분이다.
베토벤 이전까지의 음악가와 귀족간의 관계는 종속관계였다. 바하, 헨델, 하이든, 모짜르트 등등의 작곡가들도 역시 귀족 슬하에 있던 귀족의 보호와 후원을 받아 먹고 사는 종속관계였다. 하이든도 에스테르하지 가문 소속의 음악가였지만 에스테르가문의 후계자가 워낙 음악에 관심이 없던 탓에 말년이 돼서야 에스테르하지 가문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모짜르트도 귀족과의 종속관계를 벗어나기 위해 아르코 백작에게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까지 겪은 끝에 결국 종속관계에서 벗어났지만, 그 덕분에 후원을 받지 못하여 가난한 말년을 보내게 된다. 모짜르트의 말년 작품들이 더 성숙했던 이유는 귀족과의 종속관계에서 귀족의 요구대로 작곡했던 틀을 벗어나 좀더 자신의 감정이 반영된 영향이 큰 이유였다.
주지하다시피 자본주의와 함께 태동된 대중문화의 경우는 이러한 예술과 왕족/귀족과의 관계를 허물어트리기 시작했는데, 이는 음반 판매 혹은 공연수입, 저작권 수입, 광고 활동 등을 통해 스스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대문이다. 한데 이런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경제기반이 조성된 국가에서 가능한 것인데, 한국의 경우는 그러한 환경이 잘 갖추어진 나라 중의 하나이다.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좁은 내수시장을 탓하곤 하지만, 이는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해서 그런 것이지 전 세계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꽤나 큰 시장이다. 다음의 지도를 잠시 들여다보자.
상기 지도는 1995년 The Handbook of International Economic Statistics에 등장한 것인데, 23년이 지난 현재 한국의 경제 면적은 당연히 더 커졌을 것이다. 한국은 전 세계 206개 국가 중 수출 순위 6위이며, GDP는 11위이며, 국가신용등급은 OECD 회원국 35개국 중 14위 수준이다. 이쯤 되면 한국의 내수시장은 탓할 것이 아니며, 나아가 한류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구 상에 몇 개 없는 대중문화 시장 국가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방탄소년단의 사례로 가자면, 방탄소년단의 금번 앨범은 분명히 완성도 높은 앨범이라고는 생각되나,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과거 한류가수들에 비해 드라마틱하게 뛰어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빅뱅이나 샤이니, 투피엠이나 2NE1과 같은 가수들을 생각해보면, 이들이 결코 방탄소년단에 비해 처지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BTS의 음악을 낮게 평가하자는 게 아니라, 이들은 이미 수준이 높아져 있고, 전 세계 마켓에서 이미 대중성을 드러낸 한류라는 기반 위에서 빌보드 1위를 한 것이지, 이들 개인적 재능만으로 된 것은 아니란 생각이다.
사실 BTS의 제작사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인 방시혁 씨만 보더라도, 이 분은 한국 대중음악의 중흥기를 이끈 인물이기도 하다. 제6회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 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한 방시혁 대표는 JYP엔터테인먼트에서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박진영, GOD, 비, 백지영, 박지윤, 김건모와 같은 다양한 가수들의 히트곡을 작곡한 분이다. 사실상 한국 대중음악이 본격적으로 상업성을 갖추며 독특한 시장을 형성하게 된 90년대 대표적인 음악가였다.
90년대부터 시작된 한류의 열풍은 2000년대 아시아에서 2010년대 세계화에 이르게 된다. 2009년 원더걸스는 미국에서 Nobody로 빌보드 Hot 100에 진입하게 되고, SM엔터테인먼트는 2011년 파리와 뉴욕에서 SM타운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으며,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2012년 전 세계적인 히트를 치게 된다. 음악뿐만 아니라 올드보이나 설국열차의 경우는 외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었으며, 주몽과 같은 사극도 범아시아권에서는 널리 시청된 드라마이다. 한 번은 터키 이스탄불 길거리를 걷고 있는데, 초등학생 아이들이 "소서노! 주몽! 대소!"라고 또박또박 한국어를 건네어 깜짝 놀란 적도 있다.
결국 BTS가 빌보드 정상을 차지한 것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지난 반백년 간 경제성장을 해 온 한국의 성과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이고, 이러한 흐름은 단박에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전 세계 반도체,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건설 등 다양한 시장에서 한국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듯이, 이제는 대중문화의 세계에서도 그 존재를 무시하기 어려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앞서 링크한 BTS 인터뷰에서도 보이듯이, 이들은 꼭 굳이 영어로 인터뷰를 하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노래도 영어 가사로만 만들지도 않는 것과 같이 말이다.
이렇게 한국어를 말하는데도 시장성이 충분히 입증되었다는 것은,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매력도가 상승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사실 아무리 좋은 노래라 할지라도 데바나가리(देवनागरी) 문자 기반의 힌두어나 아랍어(اللغة العربية)와 같은 노래가 한국에서 히트할 리 만무하다. 어디까지나 해당 국가 혹은 언어에 대해 약간의 호감은 존재해야 하는 것이고, 이러한 호감은 오랜 기간 형성된 경제적 문화적 산물일 것이다.
나는 하는 업무가 해외건설공사다 보니 주로 제3세계 국가들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이러한 나라를 돌아다니면, 꽤나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경제발전에 대해 물어보곤 한다. 그리고 인도나 베트남, 남아공과 같은 나라에서는, 그저 막연히 한국과 같은 선진국에 살아서 좋겠다고 하는 분들도 자주 마주칠 수 있다. 얼마 전 남아공에서는 호텔에서 서너 분이 삼성 갤럭시폰을 가지고 나에게 수리를 해달라고 한 적도 있었는데, 어떤 이들의 눈에는 한국사람이라 하면 휴대폰도 척척 고치고 보이밴드와 같이 춤도 능숙하게 추는 줄 알기도 한다.
물론 한국이 이만큼 경제적 문화적으로 성장해 왔지만, 내부적으로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미 우리는 반만년 역사 속에서 단연 가장 발전한 국가의 형태를 이룩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굳이 고구려나 발해와 같은 과거를 들추지 않더라도, 작금의 한국은 백 년, 천년 후에도 세계 역사책에 기록될 만큼 존재감이 뚜렷한 국가이다. 아마도 올해 집계될 일인당 국민소득은 3만 불이 넘어갈 것이다. 인구가 5천만 명인 국가 중에서 국민소득이 3만 불이 넘어가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미국, 일본, 그리고 유럽의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부디 이렇게 외형상으로 괜찮은 나라가, 내적으로도 괜찮은 나라로 변모해 나가길 기대해 본다.
BTS가 한국어 음반으로, 빌보드 앨범 차트는 물론 싱글차트까지 1위를 차지한다면, 그때쯤엔 국뽕에 거나하게 한 번쯤 취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한국어로 떼창 하는 수만 명을 보며, 그 떼창을 하기 위해 한글로 된 가사를 읽으려 노력하는 팬들을 생각하면, 지하에 계신 세종대왕님도 흐뭇해하지 않을까 싶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만드신 한글이,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배워보려고 노력하는 문자가 되는 사실을, 그분은 예상했었는지 모르겠다. ㅎ
*배경 사진 출처: https://www.billboard.com/video/bbqabtsalbumbreakout-84583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