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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Jul 08. 2018

서울선언, 김시덕, 열린책들, 2018

내가 서울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2000년, 그러니까 밀레니엄 시대가 개막할 즈음이었다. 아니, 이 책에서 정의하고 있는 대서울(Greater Seoul)로 따지자면 1994년의 인천 생활부터 시작했다고 봐야겠다. 우리가 생각하는 현재 서울의 바운더리, 즉 605.25 km²의 서울은 따지고 보면 그리 긴 역사가 아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사대문 안 서울이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서울의 경계였으며, 이는 식민지기에 군면 통폐합, 행정구역 개정 및 개편을 통해 영등포, 성동구 등으로 경계를 넓혀갔고, 현재 서울의 메인스트림이라 할 수 있는 강남구를 비롯한 양천구, 노원구 등은 1963년에 이르러 행정구역 개편으로 서울이라는 하나의 도시로 묶이게 되었다.


저자는 이처럼 넓어진 서울의 경계를 설명하며 경기 인천에서 서울로 출퇴근/통학하는 사람들도 모두 서울시민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으며, 서울의 역사는 사대문 안 왕족이나 양반계급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들의 것임을 강조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600년의 서울 도읍 역사를 지나치게 왕실과 양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데, 추천사를 작성한 건축가 황두진 선생의 말과 같이 공화국, 그러니까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체제의 국가에서 이런 시점은 올바르지 않을 수 있음을 지적한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삼문화광장이라는 단어를 제시한 것이었다. "삼문화광장은 멕시코시티에 있는 틀라텔롤코(Tlateloco) 광장의 다른 이름인데, 이 곳에 서면 아스텍 시대, 에스파냐 식민지 시대, 그리고 현대의 건축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기에 <세 문화의 광장 Plaza de las Tres Culturas>라고 한다." (p.46, 리디북스 기준) 사실 서울은 물론 다른 역사가 오래된 도시들은 이렇듯 서로 역사적 지층이 다양한 문화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꽤 많은 사람들은 과거의 것은 소중하고 현대의 것은 값어치가 비교적 떨어지는 것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저자는 여기서 다소 결을 달리하여 우리가 변화시키고 있는 서울에도 큰 의미를 부여한다.


많은 사람들이 유럽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유럽 각국 수도의 고풍스러운 유적 및 주거형태를 칭송하고, 아파트 일변도인 서울을 비난한다. 하지만 이전 여러 포스팅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나는 이러한 견해와 결을 달리한다. 인구 1천만 명이 모여사는 집적도시(Integrated City) 서울은, 그렇게 재개발과 재건축을 통해 꾸준히 건폐율을 개선해 나가지 않으면 모두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어려워진다. 현재 서울 마포구 아현동이나 공덕동 일대를 가게 되면 마포래미안푸르지오와 같이 신규 아파트 단지들이 많이 들어선 것이 보이는데, 겉에서 보기에는 그저 아파트 숲과 같이 보이는 이 동네의 항공사진을 보면 상당히 울창한 숲으로 변모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 항공사진을 들여다보자.



좌측은 재개발되지 않은 지역이고, 우측은 재개발되어 래미안 공덕 2차 아파트가 들어선 곳이다. 이 아파트 단지의 건폐율은 17%에 불과한데, 쉽게 이야기해서 1,000평의 땅에 170평만 건물을 올리고 그 외 면적은 도로나 녹지로 활용한다는 말이다. 좌측에 재개발되지 않은 곳은 아마도 제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분류될 것인데, 위성사진으로 보면 아마도 건폐율 상한선인 60%를 꽉꽊 채워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녹지의 비율은 적고, 밀집한데 반면 용적률은 낮아 삶의 쾌적성은 떨어지게 된다.


매년 초 봄이 되면 서울의 미세먼지가 늘 이슈가 되곤 하는데, 이렇게 밀집되어 녹지가 부족한 곳에서는 미세먼지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 아울러 재개발 재건축을 통해 이렇게 멸실주택을 만들며 더 양질의 신규주택이 출현하게 되는데, 이러한 공급을 통해 서울의 주택 가격도 상대적으로 다른 대도시에 비해 지나친 상승폭은 제한적으로 유지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재개발을 통해 해당 지역 일대를 완전히 들어 엎게 되면 과거의 흔적이 한 번에 사라지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그 과거의 흔적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에 대해 주목해야 하는데, 여기서부터는 다소의 이견이 발생하게 된다.


작년에 나는 아내와 홍콩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어린 시절 홍콩느와르에서 늘 보였던 구룡성채가 보이지 않아서 다소 당황스러웠다. 구룡성채 대신 그곳에는 63 빌딩보다 높은 병풍과 같은 신규주택들이 즐비했다. 물론 그 홍콩느와르 영화를 자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홍콩느와르가 딱히 늘 아름다운 결말을 낳지는 않는다. 주로 당 시대상을 보여주듯 비극적인 결말을 자주 보여주는데, 그렇듯 구룡 성채의 기억은 아름답지만은 않으면서도 기억하고 싶은, 물론 홍콩인들에게는 더욱더 그러한 곳일 것이다.


홍콩 정부는 구룡성채를 재개발하면서 공원을 하나 만들었는데, 이름하여 구룡채성공원(九龍寨城公園, 까우룽짜이씽공원, Kowloon Walled City Park)이다. 이 곳에 가보면 아래와 같이 예전 구룡성채의 모습을 미니어처로 마련해 놓았는데, 아름답던 그렇지 않던 과거의 기억을 이처럼 유지해 나가는 것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출처: 나무위키


현재 서울의 경우 개포 주공 1단지 및 4단지, 그리고 반포주공 1단지가 재건축 중에 있는데, 서울시는 근현대 문화유산 보존의 일환으로 일부 동을 헐지 않고 박물관으로 만들어 재건축조합으로부터 기부채납을 받기로 했다. 호불호가 있겠지만, 나는 이것이 과연 괜찮은 선택인가에 대한 의문은 들게 된다. 뭐 서울시 전체적인 관점에서 주공아파트 한 동 정도를 유지하는 것은 역사의 기록 측면에서 타당할 수는 있지만, 이것이 단지마다 한 개 동씩 계속 박물관을 만든다면 과연 그것을 유지 보수하는 비용은 어떻게 감당할 것이며, 과연 박물관으로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시설을 이용할지도 의문이다.


차라리 홍콩의 구룡채성공원과 같이 시민들이 쉴 수 있는 조경시설을 만들고, 그 안에 일부 과거 재건축 전의 유적을 전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여하튼 그래도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궁궐도 아니고 대통령 사저도 아닌 20세기 후반 고도성장기 시기 일반 시민들이 거주하던 아파트도 유적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유적이라 함은 어느 시대 일부 특권층만 누렸던 것을 기억하는 것만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생활했던 것을 후세에 남겨주는 것도 포함될 것이다.


책은 그렇게 서울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다양한 서울의 모습을 나에게 일깨워 주었다. 사실 이 책이 의미 있는 이유는, 이 책 자체에 쓰인 글이나 사진보다, 방법론적 측면에서 도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준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나는 인도의 뭄바이시에 거주하고 있는데, 이 책을 읽은 후부터는 주변을 바라보는 시각도 조금은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휴일에 유적이라고 명기된 곳만 찾아보고, 유적이 아닌 것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면, 이제는 유적과 현재 살아가는 인도인의 모습 모두를 흥미롭게 지켜보기 시작하고 있다. 그렇게 현재의 인도인들도, 어떻게 도시를 변화해 나가는지 잘 지켜보고 기록을 해 둔다면, 아마 30-40년 후에 다시 이 곳을 찾았을 때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휴일을 맞이하여 주변 동네 탐방을 잠시 해 보았다. 탐방을 하다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어 사진을 찍어봤는데, 이전 포스팅인 '카스트제도를 통해 바라본 하층민 보호정책의 역설 https://brunch.co.kr/@aboutheman/285'에 등장하는 암베드카르 박사의 초상화이다. 해당 포스팅에서 전술한 바와 같이 이 분은 인도 공화국 초대 법무장관을 지내고, 하층민 보호정책 법안의 기반을 닦은 불가촉천민들의 우상과 같은 존재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 사진을 찍은 장소는 그러한 불가촉천민들이 모여 거주하는 곳이며, 이들은 암베드카르가 세상을 떠난 지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저렇게 사진을 걸어놓고 기억을 한다. 사실 이런 암베드카르 박사의 사진은 뭄바이는 물론 인도 전역 여기저기에서 보이는데, 이러한 독특한 분위기를 기억할 수 있는 것도 도시를 들여다보는 소소한 재미일 것이다. 과거 무굴제국이나 영국식민지기와 같이 지배층을 중심으로 서술된 역사도 이 인도아대륙의 역사이겠지만, 인도 공화국이 세워진 이후 독특한 제도를 만들며 카스트제도를 바꿔나가는 역사의 흐름도 분명 인도아대륙의 중요한 역사의 일부분일 것이다.


저자는 책 말미에 "사람들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잊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함으로써 역사에서 지워 버리는 일을 태연하게 저지르고는 합니다."라며 우리에게 일침을 날린다. 우리 모두가 조선왕실의 후손이 아닌 만큼, 조선 양반의 역사도, 평민의 역사도, 노비의 역사도 다 우리 역사의 일부분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조선시대 노비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다시 한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이고, 현대 대한민국 공화국의 역사에 있어서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만의 역사가 아닌, 우리 오늘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역사도 어떤 형태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오늘도 나는 걸으며 과거와 오늘을 오버랩하며 깊은 상념에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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