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이라는 열정
양준일은 댄스 가수이다. 그런데 그에 대해 말할 때면 노래와 춤 보다 다른 것을 더 떠올리게 된다. 고민 상담이나 그의 어록들과 책과...
그는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노래하고 춤을 춘다고 말한다. 그래서 노래 가사를 중요하게 여기고, 맞춰지고 짜인 안무가 아닌 그때그때 노래와 상황에 맞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춤을 춘다.
같은 노래라도 절대로 같은 춤을 추지 않는다. 아마도 그는 절대로 그렇게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미리 만들어 놓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그의 무대를 보면 마치 뮤지컬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몸짓으로 표현하고 노래로 표현하고 표정으로 표현하는 그의 말이, 그의 생각들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노래마다 갖고 있는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들을 그는 다양한 방법으로 전달한다. 그래서 그를 보면 노래하고 춤추는 스토리텔러라는 말이 딱 맞는단 생각이 든다.
내 안에 무언가가 가득할 때 그것을 표현하고 싶어 진다. 어떤 방법으로라도 표현하고 싶고 타인에게 전달하고 싶어 진다. 말하고 싶고 들어줄 사람을 찾게 된다.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려면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끓어 넘쳐야 한다. 그래야 어떻게든 그 생각을 풀어낼 방법을 고민하게 되고, 전달할 방법을 찾게 된다.
글의 다양한 종류와 장르 역시 그렇게 생겨났을 것이다. 누군가는 소설로, 누군가는 시로, 누군가는 동화로, 누군가는 에세이로... 서로 다른 형태의 글을 쓰게 되는 까닭 역시 자신 안에 담긴 것들에 알맞은 형식을 찾다 보니 그렇게 다양한 표현 방법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만약 아무것도 말하고 싶은 게 없다면, 내 안이 텅 비어 있다면 아무것도 쓰기 힘들다. 충분히 털만큼 털어내고 나면 더 이상 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은 곧 열정이라는 말과도 통한다. 재능과 열정 중에 어떤 것을 택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그건 바로 열정이다. 열정이 있다면 그는 원하는 것을 계속할 수 있는(글을 계속 쓸 수 있는, 노래를 계속할 수 있는,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지만 재능만 있고 열정이 없다면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에세이를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 양준일에 대한 덕질에 대해서 쓰기로 한 것이다. 지금 나에게 가장 큰 열정이고, 그것이 이 글을 지속시키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에세이는 30편을 완성하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어쩌면 더 쓰게 될 지도? 할 말이 이리 많은 줄 몰랐다)
하지만 가끔 지나친 뜨거움 때문에 이 글을 이어 나가기 힘들 때도 있다. 글은 꽤 냉정하고 차가운 장르이다. 자신을 객관화시켜야 하고, 상황에 너무 빠져 있어서는 글을 쓰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그 뜨거움에 데이지 않으려고 식을 때까지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지 않을 때도 있다.
글을 쓰다가 종종 자주 매번 슬럼프에 빠지게 되는 제일 큰 이유가 바로 이 열정이 사그라들기 때문이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가 가장 활활 타올랐던 것 같다. 밤이고 낮이고 머릿속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모든 정신과 마음이 그곳에 집중된다.
그러다 보면 재미있는 일들도 경험한다. 내가 만든 주인공이 머릿속에 나타나 수다를 떨기도 하고, 눈을 감으면 내가 상상한 장소로 이동하기도 한다. 그곳을 거닐면서 내가 만든 인물들을 만나고 골목골목을 헤매기도 한다. 완벽한 몰입과 집중의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덕질도 그런 비슷한 집중과 몰입이 일어난다. 그곳에서 열정이 생긴다. 활활 타오르는 뜨거움을 느낀다.
사실 어른이 되면서는 모든 것이 담담해지고 차분해지고 시큰둥해진다. 새로울 것도 없고, 신기한 것도, 호기심도 없어진다. 열정이나 뜨거움도 사라진다.
어릴 때는 모든 것들이 새롭고 신기했다. 눈을 뜨면서 아침을 맞는 것 자체가 신비롭고 즐거운 일이었다.
처음 접하는 것, 처음 하는 일, 처음 겪는 일, 처음 보는 것 투성이었다. 그것이 때로는 두렵고 무섭기도 했지만 재밌고 신나는 것도 많았다. 그래서 가슴이 뛰고 매일매일 더 신났다.
그때의 그 가슴 뛰던 날들을 기억하곤 한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아서 서글프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그럴 수 있다는 것, 아직도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일이 있다는 걸 다시 경험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처음 동화를 쓰면서 새로운 세상을, 새로운 사람을 만들고 만나는 일은 놀라웠고, 참으로 가슴 뛰는 일이었다. 그리고 다행히 여전히 그렇다. 물론 그때와는 조금 다른 형태로 느껴지긴 한다. 이건 마치 어릴 때 느꼈던 느낌과 어른이 되어 느끼는 느낌이 달라지는 것과도 비슷하다.
덕질을 하면서 나는 그 떨림과 설렘을 다시 또 겪고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닳아지고 둔해지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더 깊은 곳에 숨어 있던 것이 닳아진 사이로 다시 드러난다. 내 안에는 내가 모르던 것이 더 많다. 매우 진하고 강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지금 느껴지는 이 느낌은 어릴 때, 젊을 때 느끼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더 깊숙하고 무겁고 천천히... 이 열정을 뜨겁게 느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스타 역시 그렇다는 게 참으로 반갑고 기쁘다. 그 역시 청년의 열정과는 다른 성숙된 열정을 가진 사람으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그는 함께 잘 익어가자고 말한다.
그가 젊지 않아서, 그가 불이 붙었다 쉽게 꺼지는 사람이 아니라서, 많은 고난과 고통의 삶을 통과하며 얻은 것들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서, 그 안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이 담겨 있는 사람이라서, 그럼에도 밝고 환한 순수한 웃음을 웃는 사람이라서 그래서 참 좋다.
오늘도 이 뜨거움을 가슴속에 조용히 묵직하게 느끼면서 그 따뜻함에 언 손을 녹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