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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Feb 17. 2022

문이 열리네요

비유의 장인

“억지로 문을 열어서는 안 된다. 그 아이가 스스로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려라.”

청소년기 아이와의 문제에 대한 고민에 대해 양준일은 이렇게 답을 한다. 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질문자가 아닌 상대방에, 아이에게, 약자에게, 어려움에 처한 대상에게 초점을 맞춘 답이다. 이 말을 들은 부모들은 생각하고 반성할 수밖에 없다. 내가 그동안 아이의 마음과 처지가 아닌 내 마음과 내 기분에 중심을 두고 있었구나.


양준일은 종종 팬들의 고민 상담을 해준다. 그는 유튜브 ‘재부팅 양준일’에서 ‘양준일의 직끔상담소’라는 코너를 진행했다. 팬들이 메일로 보낸 고민 내용을 읽고 그 자리에서 법정 스님처럼 즉문즉설 형식으로(그는 미리 대본을 미리 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함께 일하는 스텝들이 당황하곤 한다. 하지만 그는 즉답 형식으로 바로 그 자리에서 고민에 대한 답을 풀어낸다) 고민들에 대한 상담을 해왔다. 그는 팬들에게는 거의 가요계의 법정 스님과도 같다.

일 년여 동안 다양하지만 누구나 겪을 법한 고민들이 나왔고 그의 상담으로 많은 사람들이 답을 얻거나 혹은 위로를 받았다.


나만 그렇지 않다는 것, 시선을 조금 달리 하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는 것, 나에게 집중하지 않고 상대를 돌아보라는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은 양면이라는 것...

그는 거기에서부터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간다.

아이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부모의, 직장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직장인의, 남편이나 시댁과의 갈등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이별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의 아픔과 고민에 대해서...


그가 제시하는 해답은 선명하고, 지혜롭고, 핵심을 정확히 꿰뚫는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많은 경험을 했다고 해서 그런 상담을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양준일을 덕질하는 것은 단순하게 텔레비젼에 예쁜 모습으로만 등장하는 가수를 덕질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는 책을 쓴 저자로, 상담을 하는 상담소장으로,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가수로... 다양한 모습으로 팬들을 만난다.


그는 말을 할 때 비유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비유의 장인이다. 그것은 자신도 말했듯이 어렵고 난해한 철학자의 말들을 자기에게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소화한 뒤 다시 말하는 것이라서 그럴 수 있다. 또한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쳤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많은 노래들의 노래 가사를 통해 배운 것일 수도 있고, 노래 가사를 써오면서 터득한 것일 수도 있다.


20여 년 전 그가 쓴 노래 가사 중 ‘빨래를 걷으러 기차 타고 떠났어’라든지, ‘또 다른 감자가 되었어’라든지... 그리고 최근 노래의 가사들을 보면 그의 취향이 꽤 문학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래 가사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도 가수였으니... 결국 가사는 시이고, 문학이니까.

제한된 짧은 글 안에 감정과 이야기와 의미와 생각을 어렵지 않게,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게 쉬우면서도 아름답게 담아내는 것이 노래 가사이다. 정말 좋은 노래들은 단순한 듯하면서도 깊이 있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가사에서 비유의 사용은 필수적이다.    


글을 쓸 때도 이런 비유가 얼마나 잘 쓰이는지가 중요하다. 적절히 신선하고 낯설면서도 재미있는 비유를 얼마만큼 잘 쓰느냐에 따라 글의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비유를 잘 쓰는 작가를 떠올리자면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생각난다.

처음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읽으면서 놀라왔던 것은 바로 그만의 독특한 비유들 때문이었다. 그는 우리가 전혀 쓸 것 같지 않은 매우 현실적이고 낯선 비유를 매우 적절하고 자유롭게 자주 썼는데 사실 그 시기의 무겁고 진지했던 우리나라 소설을 읽다가 일본 소설에서 그런 식의 가볍고 재치 넘치는 글쓰기는 처음 보았기에 매우 놀랍고 신선했다. 드디어 언문일치가 이뤄진 듯한 느낌?이라면 너무 과장됐을까.


하루키가 쓴 비유 중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몇 가지가 있다. 마음을 차분하게 하기 위해서 냉장고 속 차가운 오이를 생각한다라든지, 매일매일 쌓인 눈을 치우듯 꼭 해야만 할 일들을 해치운다든지, 가운데가 빈 도넛처럼 무시무시한 허기가 느껴진다든지, 어느 봄날 우연히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난다라든지...

지금도 그 비유들을 떠올리면 어쩌면 그렇게 적재적소에 알맞고 독특한 비유를 만들었을까 생각한다.


적재적소에 적절하게 쓰인 비유는 힘을 발휘한다. 온몸으로 와닿게, 이해하기 쉽게 상황이나 의도를 전달할 수 있다.


인생은 막힌 도로를 운전하는 것과 같다... 섰다 갔다를 반복하니까. 그러니 섰을 때 짜증을 내지 말고 기다려라... 시들어진 꽃에 물을 주니 다시 피어나는 것처럼 내가 다시 피어나고 있다... 아침에 세수를 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처럼 다시 시작하면 된다... 가족은 잠수함 같아서 물이 새어 들어오면 함께 침몰한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을 수 없기에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을 안다고 할 수 없다...수영장 벽을 잡으며 물 마시며 수영을 배우는 것처럼 이별에 익숙해지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그러면서 다른 사람을 토닥일 수 있게 될 것이다...(비유의 장인답게 말을 할 때마다 비유가 쏟아져나와 다 기록할 수가 없다)


그의 비유들은 자기 인생에서 터득한 것들이다. 평소에도 스스로 자신의 삶에서 사용하는 것들이기에 진정성이 있고 어렵지 않다.


특히 나는 그의 비유들 중 문에 대한 비유를 좋아한다. 두들겨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문을 억지로 열어서는 안 된다, 문이 열리고 다시 뛰게 되었다, 문이 닫히지 않게 붙잡아 준다, 뒷문으로 모르게 들어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나의 문을 열고 초대한다...


그의 열린 문 안을 슬쩍 들여다본다. 그곳으로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딛는다. 그가 자기 문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그 문을 열어주어서 참으로 감사하다. 그의 초대를 받아들이면서 오랫동안 닫혀있던 나의 문도 살짝 열어본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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