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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Feb 12. 2022

나와 나

낯섦의 재미

종종 내가 쓴 글을 볼 때마다 낯설다. 내가 쓴 게 맞나? 나의 문장들이 낯설다. 종종이 아니라 사실 거의 매번 그렇다. 그래서 내가 써 놓고도 수십 번씩 읽어본다. 잘 쓴 글이든 엉망인 글이든 이런 글을 쓴 내가 나는 신기하다.


노트북 안에 담겨 있을 때보다 인터넷에 올리거나 혹은 활자로 인쇄되어 나왔을 때는 그 낯섦이 더 심해진다. 그래서 일부러 어딘가에 업로드해 놓고서 보기도 한다. 그 낯섦을 즐긴다. 노트북 화면으로 보는 것과 핸드폰 화면으로 보는 것도 다른 느낌이 든다.


다른 작가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런 약간의 자아 분리(?) 같은 상태가 글을 쓰는 데 있어서는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초고는 흔히 쓰레기라고 한다. 그래서 초고를 쓴 뒤는 한동안 다른 일을 하면서 자기가 쓴 글을 잊어야 한다고 한다. 시간이 좀 지난 뒤 다시 보면서, 내 글이 아닌 남의 글처럼 보이면 그때서야 퇴고의 단계라고 본다. 지나치게 자신과 글이 밀접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그래야 잘못된 것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나는 좀 유리한 건가? 내 글이 항상 남의 글처럼 보이니 말이다.


양준일은 가끔 자신이 무대에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춘 영상을 보면서 신기해한다. 남의 무대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낯선 자신을 바라본다. 나는 그때마다 내가 내 글을 볼 때의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데 이러면 한 가지 문제(?) 생긴다. 내가 쓴 내 글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은 나와의 대화였고, 이야기는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동화를 쓰다 보니 그 '나'는 어릴 때의 '나'를 뜻한다. 어린 내가, 지금의 내가 재미있게 읽을만한, 읽고 싶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다른 누구도 만족시키기 힘들 거라고 생각하며 글을 쓴다.


양준일 역시 자신이 자신을 만족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자신의 영상을, 자신의 무대를, 자신의 노래를 즐긴다. 물론 팬들을 생각하며 부르기도 하지만 결국 그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노래하고 춤을 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러면 그 결과가 어떻든 크게 상관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즐겁고 내가 행복하니까. 내가 만족되고 나에게 충족된다면 다른 누가 뭐라고 해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일차적으로 스스로가 스스로를 만족시킨다면 그다음으로 그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선물로 줄 수 있다.

글을 쓰고 책을 냈을 때 나는 선물을 만들 수 있어서 행복했다. 누군가에게 자랑스럽게 건네줄 수 있는 선물...

선물을 고르는 일은 힘들다. 무엇을 어떻게 주어야 할지 매번 선물을 줄 때마다 망설이고 고민을 한다. 그럴 때는 내가 좋아하는 걸 줘야지. 그렇게 생각하면 쉽게 풀린다.

마찬가지로 글도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걸 줘야지라고... 혹시 맘에 안 든다면, 싫어한다면 그래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다 해도 괜찮다. 적어도 나는 만족했으니까.


유튜브에 내 콘텐츠가 없으면 심심해,라고 투덜대던 양준일의 말을 듣고 웃었지만 사실 나도 그렇다. 내 글이, 내 책이 없으면 심심하다.

모든 것은 나에게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기준이 낮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적어도 나에게 만족된다면 꽤 괜찮을 거라고 믿는다.


자신을 만족시키려면 적어도 내가 나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럴 수 있으려면 자신을 객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유튜브 재부팅양준일에서 양준일은 '나와의 대화'를 시도한다. 자신을 둘로 나누어 자신이 자신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한다. 그전에도 느끼고 있긴 했지만 그것을 보면서 그가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언제나 상황에 휘둘리거나 감정적이지 않고 냉정하고 이성적인 판단력을 잃지 않는 것도 역시 그런 능력 덕분일 것이다.


글을 쓰는 일도 끊임없이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과정이다. 나를 알고 나를 글로 풀어놓고 밖에서 다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일... 그래서 글을 쓰다 보면 과거의 나보다 조금씩 더 성장하고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글은 힘이 있다. 글을 통해 치유와 힐링의 힘을 경험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온갖 소문과 험담과 세찬 바람이 부는 연예계라는 세계를 어린 시절 호되게 겪었던 양준일이 다시 그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혼자가 아닌 가족과 함께. 아직까지도 계약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그를 보면서 묻어두었던 나의 트라우마도 느껴져서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담담하게 자신을 객관화시켜 내려다볼 줄 알고, 상황보다 더 진실한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의지하고 있는 그를 보면 안심이 된다. 시간이 흐르면 흉터는 남지만 상처는 치유된다. 여전히 돌을 던지고 여전히 다시 돌아가라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있지만 다행히도 그는 그것에 휘둘리는 여리고 힘없는 청년이 아니다. 많은 시간을 돌고 돌아 돌아온 그의 단단함과 강인함과 평온함에 나의 불안마저 가라앉는 느낌이다.


순간순간에 몰입하여 최선을 다한 뒤에는 편안하게 우리는 우리의 낯설고 다른 모습을 즐길 수 있다.

덕질에 빠진 나를 내가 낯설게 바라보는 일은 꽤 재미있다. 재미있는 놀이에 빠진 아이를 보는 것 같다. 밥 먹으라는 엄마의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놀이에 푹 빠져 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오늘도 나는 그런 나를 내가 흥미롭게 바라본다.

덕질 덕분에 세상이 조금  더 재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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