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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Feb 20. 2022

덕질어

초급에서 중급으로

덕질 3년 차에 접어들자 이제 덕질 용어들에 조금은 익숙해졌다. 처음 덕질을 시작했을 때는 무슨 외계어를 접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느 분야에서든 나름의 전문 용어가 존재한다. 그 말들을 익히고 익숙해지고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단계가 되면 전문가(?)가 되었다고 나름 자부할 만하다. 아직 전문가는 아니고 초급쯤 들어선 기분이랄까...


덕질의 세계에서만 통용되는 단어들이 있고, 그리고 새롭게 생성되는 단어들이 있다. 언어의 일반적인 특성이 탄생, 성장, 소멸이듯이 덕질어 역시 그런 것 같다. 검색만 해봐도 어마어마한 덕질 용어 사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참에 다시 '덕질 용어 사전'과 '덕질 십계명'을 주욱 살펴보았다. 음... 아무래도 그동안 나도 모르게 실력이 꽤 향상된 듯하다. 70~80%는 이해가 되는 걸 보면 말이다. 역시 언어는 꾸준함이 중요하다.


어느 무리에서든 자기들만 통하는 언어가 있다. 이걸 은어라고 부른다. 비밀스러운 말들.

어릴 때는 암호 만들기를 좋아했다. 한글 철자와 숫자를 매치시켜 숫자로 암호 편지를 쓰기도 하고, 한글 철자의 순서를 뒤로 밀려서 쓰기도 했고, 거꾸로 쓰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아이들은(요즘엔 초등학교 때부터?) 욕을 자신들만의 은어를 삼기도 다.

 

요즘에는 핸드폰과 인터넷 라이프에 익숙한 아이들은 더 쉽게 더 다양하게 더 변화무쌍하게 자신만의 은어들을 만들어 낸다. 신조어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사라지고, 연령대에 따라, 무리에 따라 통하는 언어들이 엄청나게 다양해졌다.

핸드폰은 언어의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매우 빠르고 다채롭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현재의 문자와 언어는 과거의 문자와 언어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앞으로의 세대에게는 종이 위에 쓰인 글자는 마치 우리가 박물관에서 옛 파피루스 종이에 쓰인 상형문자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겠지 싶다.


그러니 이럴 때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작가라는 위치에서 종이책을 보고 있자면 마치 사라져 가는 마지막 인류의 유산을 붙잡고 있는 씁쓸한 느낌이 든다.

가끔 미래에 종이책은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종이책을 내는 수많은 출판사들은(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꽤 느리고 아직도 구세대 유물에 목을 매고 있는 듯한) 형편이 어렵다고, 잘 팔리지 않는다고 아우성을 한다.

종이책을 사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소수의 종이책 마니아들, 학습용으로 추천도서로 책을 읽어야만 하는 학생들, 그리고 책을 쓰고 싶어 하는 예비 작가들과 책을 쓰고 있는 작가들... 구매자들은 점점 한정되는 것 같다.


그런 반면에 영상과 사진과 함께 문자와 언어들은 엄청난 속도로 수많은 사람들의 손 안에서, 손 안의 핸드폰 안에서 찬란한 불꽃을 피우고 있다.

나는 종이책의 운명에 대해선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박물관에 들어가게 될지도 모르고, 소수의 마니아들을 위한 특별한 제품으로만 남을 수도 있고, 아날로그와 환경 등에 관심이 있는 몇 사람들만 관심을 가질 수도 있고, 추억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물건이 될 수도 있고, 학습용 가치로만 남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사람들의 손안에 남을 것임은 확실하다. 손 안의 작은 화면 안에서 책은, 문자는 살아날 것이다. 살아남는 것을 뛰어넘어서 기존의 종이책 이상의 커다란 힘을 발휘할 것이다.


덕질어에 대해서 이야기해야지 하다가 어느새 책 이야기로 넘어가 버렸다. 뭐 이렇게 흐르고 저렇게 흐르는 게 글이니까.


다시 덕질의 세계로 돌아가자면, 양준일은 청소년기를 미국에서 보내는 바람에 그의 언어는 꽤 예스럽다. 부모님으로부터 배운 언어들이기에 지금의 우리에게는 마치 할머니가 말할 법한 그런 단어들? 세련되고 고급스럽고 이국적인 외모의 그가 구수한 옛 단어들을 말하면 그의 매력은 배가된다. 그 부조화가 즐거움을 준다. 그래서  팬들은 종종 '준일어 사전'을 정리해 공유하기도 하고 따라하기도 하며 즐거움을 누린다.

한글이 익숙치 않은 그는 철자를 종종 틀리게도 쓰고, 아이같이 어색하게 쓰기도 하지만 그런 미숙함을 덕질러들은 신선한 매력으로 받아들인다.


언어를, 문자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재미있는 건 없다. 딱딱하고 엄숙하고 엄격한 권위를 깨뜨리는 재미가 있다. 틀리면 절대 안 된다고 배웠던 철자를 문법을 깰 때의 속 시원함. 목적 없는 이런 무용한 장난, 이런 놀이에 몰입하는 덕질. 그럴 땐 굳어졌던 뇌가 말랑해지고 시원해지는 기분이 든다.


이제는 덕질어 중급 1단계 정도는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덕메(덕질 메이트)와는 말이 꽤 통한다. 마치 중고생들이 모여서 자기들만의 은어로(남학생들의 경우엔 대부분 게임용어, 여학생들의 경우엔 욕?) 대화하는 것처럼 덕질러들이 모이면 덕질어로 대화한다. 덕메와 함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떤다. 우리만의 덕질어로.

덕질, 덕체, 덕질러, 덕통사고, 덕심, 덕력, 덕메, 덕계,입덕, 성덕, 휴덕, 탈덕, 덕업일치, 덕밍아웃, 덕계못, 늦덕, 씹덕, 즐덕, 어덕행덕, 초덕, 덕후 등등...(덕이 들어가는 단어만 모음)

덕질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매우 흥미로운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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