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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Feb 22. 2022

알맞은 나이

딱 좋은 때

나는 꽤 늦은 나이에 등단을 했다. 어릴 때부터 작가의 꿈을 꾸지 않았다. 나의 꿈은 언제나 막연했고, 때론 거대했고, 관심 있는 건 뭐든지 다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매일매일 다른 일곱 가지 일을 하며 살겠다는 꿈을 꾸기도 했다. 책 읽는 걸 좋아하고 글 쓰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작가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글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본격적으로 꾸기 시작한 것은 거의 서른이 다 되어서였다.

그리고 운이 좋아(?) 마흔 즈음에 동화로 등단을 했다. 제가 나이가 좀 많아서요...라고 하자 출판사 편집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아니요. 딱 좋은 나이예요!

맞다. 딱 좋은 나이였다. 


30대까지는 내가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다. 가장 나이가 많다고 느꼈던 때는 서른을 막 넘어가면서였다. 내가 서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으니까(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기절하겠지). 서른 중반쯤 되니 거의 노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껏 중 가장 내가 늙었다고 느꼈던 나이였다.

지금 다시 돌아보면 나는 항상 딱 좋은 나이였다. 그걸 모르고 살았다. 오히려 나이가 더 들면서는 지금이 정말 딱 좋은 나이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양준일이 '슈가맨' 프로그램으로 다시 사람들 앞에 나타났을 때 그의 나이는 오십이 되었을 때였다. 사람들은 시간여행자라고 부르면서 그를 데려왔지만 그는 유튜브 영상 속의 팔팔하고 젊은 이십 대가 아닌 오십의 중년이 되어 있었다.


그는 젊을 때의 꿈은 아주 오래전에 버렸다고 했다. 모든 사람들이 거부하고 싫어했던 자신의 진짜 이름과 정체성을 숨기고 V2라는 이름으로, 억지로 운동을 하고 단백질 파우더를 먹어가며 외모까지 변화시키면서 세 번째 앨범을 냈지만 결국 또다시 실패를 했다. 그 뒤 그는 더 이상 노래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젊을 때의 뜨거웠던 열정과 꿈을,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올인했던 그 꿈을 접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뒤의 삶을 다시 추스려 시작하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댄스가수였던 그가 20여 년이 지나 50살이 되어 다시 댄스가수로 활동할 것이라는, 그게 가능할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미국에서 서빙을 할 때 가끔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왜 계속 가수 활동을 하지 않느냐고 묻곤 했다고 한다. 그러면 그는 한국에서는 50대에 댄스가수를 할 수 없어요,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그는 다시 그 꿈을 펼칠 기회는 영영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이렇게!


그가 다시 우리 곁에 와서 댄스가수로서 활발한 활동을 시작한 지도 어언 3년 차로 접어들고 있다. 코로나로 활동하기에 어려운 시기에도 꾸준히 새 노래를 발표하고, 새 앨범을 발매하고, 콘서트를 열고 있다.

그를 보면서 많은 팬들은 잃어버린 젊은 날의 꿈을 되새긴다. 너무 멀리 왔고,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던 젊은 날의 열정과 꿈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아직 늦지 않았다고, 어쩌면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고, 어쩌면 지금이 딱 좋은 때인지도 모르겠다고... Maybe...


오늘 인터넷에서 100세가 넘은 노학자의 이야기를 읽었다. 인생에서 계란 노른자처럼 가장 밝고 환하던 시기가 언제였냐는 물음에 그는 65~75세였다고 답했다.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는 나이였다고...

평균수명도 늘어나고 관리만 잘한다면 건강으로도 외모로도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시대가 왔다. 30대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나이였지만 40대부터는 어린 나이이다. 뭐든 시작하기 딱 좋은 나이이다.


새처럼 나비처럼 가볍게 무대 위를 날아다니는 양준일을 보는 게 즐겁다. 무대 위의 그는 다시 찾은 새로운 꿈을  날개처럼 활짝 펼친다. 마치 잃어버린 날개옷을 뒤늦게 되찾은 선녀처럼...

뒤늦은 덕질이지만 지금이 덕질을 하기 딱 좋은 때라는 생각이 든다. 내 스타의 꿈이 실현되는 매일매일의 과정을 함께 통과하며, 그와 함께 나의 꿈을 다시 떠올릴 수 있어서 행복하다.

묻어두었던 오랜 꿈을 다시 꺼내 꿈꾸어볼 수 있을 만큼의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지금이 덕질을 시작하기 딱 좋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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