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미니멀리스트
가장 잘 못하는 일 중 하나가 버리기이다. 모으기라든지 쌓아놓기라든지 안 버리기를 하라면 일등 할 자신이 있는데 버리기는 참 힘들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서 나이만 많아지는 게 아니라 물건도 점점 많아진다.
옷장을 열면 옷이 한가득, 신발장엔 신발이 한가득, 책장엔 책이 한가득, 서랍엔 볼펜이 한가득. 그중에서도 유난히 집착하는 물건들은 갈수록 배로 증식한다. 양말, 수첩과 노트, 색연필류 등...
한동안 미니멀리즘이 참 멋있게 보였다. 책도 여러 권 읽고, 다큐도 보면서 마음을 다지곤 했다. 그래, 한 개를 사면 두 개를 버리자. 설레지 않는 건 버리자, 일 년 이상 쓰지 않는 건 버리자, 하루에 한 개씩 버리자.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근처도 가기 힘들었다.
나는 맥시멀리스트라는 걸 인정하기로 하면서 마음이 좀 편해졌다. 그래 물건이 중요한가? 맘이 편한 게 최고지 뭐 그렇게 다시 원위치로.
글을 쓸 때는 버리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실에서 못 한 걸 글에서는 해 본다. 최대한 단순하고 간결하고 정확하고 담백하게... 쓸모없는 문장이나 표현은 지우기. 꼭 남겨야 할 것만 남기기. 그게 나의 글쓰기 모토이고, 창작 수업을 할 때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이다. 문장도, 내용도, 단어도 그렇게 써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물론 지금 내가 그렇게 쓰고 있냐? 묻는다면 그렇다고 당당히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런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추구한다. 물건은 못 버리더라도 문장은 버릴 수 있다.
양준일은 가수다. 하지만 그가 한 말들은 노래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렸고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고 있다. 그가 반복해서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버리기! 그것은 그의 과거의 삶에서 그가 살아왔던 여정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가 미국에서 청소하고 서빙을 할 때 매일 쓰레기를 버렸다고 한다. 식당에서 하룻동안 나오는 쓰레기 양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알기로는 미국에서는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다 하던데 그러니 쓰레기 버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매일 쓰레기를 버리다 보니 마치 자신도 쓰레기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미국에서 아무런 기술이나 경력도 없이 간신히 잡은 일자리. 평생 그 일을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을 테고, 아이는 자라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도 없었을 테고... 매일 반복되는 쓰레기 버리는 일에는 미래의 희망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쓰레기를 버리면서 끊임없이 자기 머릿속에 차오르는 좋지 않은 생각들을 함께 버려야 했다고 했다. 우리가 모르던 과거의 생활에 대해서 물었을 때 그는 그렇게 말한다. 끊임없이 매일 머릿속 생각을 버리며 살아왔다고...
그는 마치 수련을 하듯 반복되는 힘든 그 과정을 통과했기에 빈 공간에 새로운 희망을 담을 수 있었고, 과거의 자신에게 발목 잡히지 않고 새로운 현재의 나를 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머릿속에 너무나 많은 생각들을 담고 산다. 지나간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련, 누군가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 나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착각, 오지 않은 일들에 대한 걱정과 근심...
이러 저런 것들이 빈 공간 없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으면 새로운 것을 담을 공간이 없어진다. 편견과 선입견만 쑥쑥 자라난다. 지나온 자신의 경험에 대한 자신감과 자랑으로 가득해지면 그것들이 눈을 가려 앞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된다.
그는 말한다. 경험을 버려야 한다고,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고. 우리는 누구도 타인을 안다고 착각하지 말자고.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지 않았기에 그의 삶은 내가 알 수 없는 거라고.
수많은 쓰레기를 버리며 자신의 머릿속 쓰레기를 버렸던 그이기에, 수많은 더러운 바닥을 닦으며 사랑에 대해 생각한 그이기에, 그러면서 터득한 삶의 이야기와 삶의 지혜를 가진 그이기에 같은 노래를 불러도 그가 부르면 다른 가수가 부르는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노래나 춤은 흉내 낼 수 있다 하더라도 누구도 그의 삶과 생각을 흉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팬들은 그를 독보적인, 유일무이한 가수라고 부른다.
문득 '강아지똥'이란 동화로 알려져 있는 동화작가 권정생이 떠오른다.(어쨌든 나는 동화작가니까) 그는 아픈 몸으로 교회 종지기로 일하며 움막 같은 집에 홀로 살면서 작고 버려진 외롭고 쓸쓸한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동화로 썼다.
'강아지똥'이 바로 그의 대표작이다. 쓸모없고 하찮고 소외된 강아지 똥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렇게 구박받고 천대받던 강아지똥은 결국에는 빗물에 온몸이 부서지고 마침내 꽃으로 피어난다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똥 그것도 강아지가 눈, 쓸모없어 보이는 똥은 권정생 작가 자신의 모습이다. 너무나 힘든 삶을 통과해 왔던 그이기에 사람들은 그의 동화를 따라 쓸 수는 있겠지만 그의 삶을 따라 살 수는 없겠다는 말을 한다.
양준일은 자신이 뒤늦게 다시 인기를 얻게 된 것이 더 좋다고 한다. 스토리가 있는, 삶의 철학이 녹아있는 노래를 할 수 있기에 늦은 나이에 시작하는 게 더 좋다고 말한다.
노래나 글이나 그림이나 혹은 다른 어떤 일이나... 결국에는 어떤 삶을 사는가와 같은 말이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떻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하고 있는지가 곧 지금 내가 하는 일로 나타난다. 그래서 거기에 나만이 표현하고 나만이 말할 수 있는 것이 생긴다.
오늘도 양준일 덕질을 한다. 매우 슬기롭게. 그의 노래를 듣고 춤을 보면서 그의 삶의 발자국들을 쫓아본다. 버리는 삶을 살았던, 그리고 끊임없이 자기를 성찰하며 오늘도 버리려고 노력하는...
그러면서 나를 돌아본다. 무엇을 끌어안고 있고,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 무엇을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지. 아직도 버려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이 쌓여 있는 내 주변을,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다. 물건 버리기는 실패했지만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은 버리고 싶다. 생각의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다. 조금은 헐렁하고 가벼워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