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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Feb 27. 2022

망할 권리

성공이 디폴트

누구나 실패를 한다. 실패 없는 인생은 없을 것이다. 실패를 많이 한 사람, 조금 한 사람, 큰 실패를 한 사람, 작은 실패를 한 사람... 빈도와 크기는 다를 지라도 실패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실패는 삶의 디폴트(기본값)가 아닌가. 성공은 매우 드물고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니까. 실패는 일반적인 상황이고 성공은 특별한 경우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그건 실패 뒤에 성공을 했을 경우 하는 말이 아닌가. 그건 대단한 멘털을 갖고 있어서 실패를 딛고, 실패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그 다음에 성공을 이뤘을 경우에 해당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것 역시 아주 드문 경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를 하고 나면 오랫동안 힘들어한다. 트라우마가 생겨서 섣불리 도전하려 하지 않는다. 아픈 과거를 끌어안고 살아간다. 그 아픈 과거가 현재의 발목을 잡는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말처럼 비슷한 일이 또 생길까 봐 더 몸을 움츠린다.


나름 내 인생에서의 가장 큰 실패 이후 그걸 회복하고 이겨내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상처는 회복되지만 흉터는 남는다. 흉터는 아프지는 않지만 그 흉터를 만질 때마다 다시금 아련한 아픔이 느껴진다.


양준일은 과거의 이야기를 하면서 "나도 음반을 내고 가수를 하고 싶었다. 치킨집을 내고 망하는 것처럼 나도 가수를 하고 망할 수도 있지 않나. 나도 망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일을 시도하고, 최선을 다하고, 그럼에도 망할 수도 있다는 것. 그걸 알면서도 시도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도전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려면 그걸 이겨내고 견뎌낼 강한 멘털이 필요하고, 가진 것을 모두 잃어도 다시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너무 낙천적이고 긍정적으로만 생각을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내가 한다면 성공할 거야... 남은 그렇더라도 나는 잘 할 수 있어... 그런 무모함이 있기에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잘될 거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다가 실패를 겪고 망하고 나면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탓하고 세상을 탓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실패가 더 많고, 더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종종 그걸 잊어버린다.


문제는 실패 이후이다. 자신의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것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 그것을 지나온 뒤 어떻게 변하고 달라질 것인가... 그 이후의 태도가 실패를 '성공의 어머니'로 만드는 씨앗이란 생각이 든다.

사실 모든 일에서 결과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성공이든 실패든 결과에만 의미를 둔다면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버리는 셈이다. 실패 이후의 태도에 따라서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 그 실패를 성공이라 부를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이야기를 만들 때는 필수적으로 주인공의 욕망을 설정한다. 절대반지라든지, 왕관이라든지, 보물이라든지 등등.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을 보여준다. 자신의 내면과 갈등을 겪기도 하고, 적대자를 만나기도 하고, 장애물을 만나기도 하고...

수많은 과정을 거쳐서 마지막에 다다른 주인공은 깨닫게 된다. 자신이 진짜로 얻은 것은 자신의 욕망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것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얻은 보이지 않는 가치들임을... 사랑이라든지 용기라든지 이해라든지 배려라든지 우정이라든지...

그것을 얻으러가는 여정에서, 그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많은 것을 얻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그것을 간과한다. 결과만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그가 원하는 걸 얻었대? 그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얻지 못했어. 그러니 나는 실패한 인생이야...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것이다. 나는 실패했지만, 내가 원하던 것을 손에 넣지 못했지만 그걸 위해서 노력했던 과정 동안 나에게 차곡차곡 쌓인 것이 있다는 것을... 내가 원하던 것은 아니지만 다른 더 많은 것들이 나에게 남았다는 것을.


다시 노래하고 춤추는 양준일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그가 다시 가수가 되었고, 다시 인기를 얻었고, 다시 젊은 날에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었기에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때로는 그렇게 그가 얻은 것들, 인기와 유명세를 질투하고 빼앗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래서 종종 안티와 악플 그리고 악성 기사들이 나타나 그가 가진 것을 빼앗고 싶어한다.(막상 그들이 얻을 것도 하나 없으면서 말이다) 그의 성공을 저지하려 한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다시 돌아오는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해서 그는 벌써 많은 것을 얻었다.

그는 소중한 가족과, 서로를 사랑하고 돌봐주는 팬들을 얻었고, 힘겨웠던 삶을 이겨내고 원하던 곳에서 살 수 있는 기회와, 디자인된 대로 자기답게 살 수 있는 일자리를 얻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지나온 모든 과거들이 다시 소중하게, 가치 있게 살아났고, 그가 겪었던 고통들이 아름답게 승화되었다. 그것으로 그는 충분히 성공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이런 아름다운 가치들을 획득한 그의 모습은 진정한 돌아온 영웅의 모습이다. 그런 가치들은 감히 어느 누구도 그에게서 빼앗을 수 없다.


우리는 외면적으로는 종종 실패했을 지라도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을 잃지 않는다면 분명 그 과정을 통과하며 얻은 많은 것들이 내 안 어딘가에 쌓여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성공했다고 말해도 된다. 우리는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있는 것을 벌써 획득했다.

그러니 세상의 진짜 디폴트는 실패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성공인 것이다.

 

양준일은 일찌감치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말했던 '망할 권리'라는 것은 실패를 말하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성공'을 말하는 것임을 이제서야 알 것 같다. 그는 이미 그것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도 그것을 가지고 있다. 우리들은 보이지 않는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다. 과거의 수많은 (외형적)실패를 통과해 지금 여기에 내가 이렇게 서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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